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치앙라이] 예수가 우시다(Jesus wept...)

정안군 2017. 4. 9. 14:56

 

 

 

 

설교자 : 위치얀 짠험(Wichian Chanhom) 목사

 

마태복음 21장 9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그들의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조상들을 해방시킨 기념일, 즉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갑니다.

유월절은 유대 백성에게 특별한 기념일입니다.

유월절 기간 중에 그들은 구운 양고기와 무교병(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과 시금치, 과일과 포도주를 먹었습니다.

유월절은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자신의 몇 명의 제자들에게도 배반 당하고, 부인 당하고, 고문 당하고, 처형을 당할 유월절 속죄양으로 예수살렘에 들어 갈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는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소심한 군중을 부추겨 예수를 처형하라 요구하게 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 가기 전, 예수는 두 제자로 하여금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도록 합니다.

그는 나귀를 타시고, 구세주가 오심을 기대하는 군중들에게 다가 갑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심은 부드럽고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왕으로 그의 백성에게 오심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구원, 평화와 영생을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백성들에게 가져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반대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제사장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나 사두개파 사람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들은 사람들은 군중들이 신성모독을 하며 소란을 일으켜 로마 권력에 도전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들 종교 지도자들의 본심은 만일 예수가 군중들의 신뢰를 얻으면 그들의 권위나 특권이나 이득이 줄어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은 비천하고 어리석고 죄에 빠져 살며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유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임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받아 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예수가 우신 이유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 파멸을 가져 올 지도자들의 무지 때문에 우십니다.

예수가 우신 것은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기 동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예수의 동정과 슬픔과 비통이었습니다.

 

1. 예수는 사람들을 불쌍이 여기셔서 우셨다.

그 자신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것을 예수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끄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에서 배제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이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완고함과 거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이 임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그 사람들과 구별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며 주일 예배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에 잘 차려 입고 잘 꾸미고 오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월요일부터는 주일의 꾸밈새와는 반대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2. 예수는 백성을 위한 슬픔 때문에 우셨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구세주이자 왕이심을 알았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환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대적 했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경쟁 상대가 못 되었고 그들의 사악함으로 위기가 필연적 결과가 됩니다.

 

3. 예수는 백성에 대한 슬픔으로 우셨다.

예수께서는 구원 받기를 기다렸던 백성들이 구세주를 배척하는 것을 보시고 슬프셨습니다.

대신 그들은 세상의 방법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군대나 병사나 전쟁이나 무기나 피흘림이나 권력 투쟁이나 정치적 우월성을 기대했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눈물이나 불행은 무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망치려 하는 그들의 사악함이나 좋지 않은 욕망을 버리지 못함에 많이 슬퍼하셨습니다.

현재 대다수 하나님의 사람들은 태도나 행동에서 구약이나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몇몇은 더 악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예수가 지금 다시 오셔서 우리의 믿음 없음과 열매 없음과 바리새나 사두개인들과 같은 위선을 보신다면, 예수는 우리와 우리 삶을 불쌍하게 생각하시고 틀림없이 우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가 우시는 것을 듣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더 우리의 신실하지 못함 때문에 예수가 더 우시도록 할 것입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