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삶의 리듬(Rhythms of Life)
설교자 : 차이펀 빤야(Chaiporn Panya) 목사(Assistant Dean of Church Relations)
시편 40편 1 - 3절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우리들이 아는대로, 음악은 다른 리듬으로 연주할 수 있고 각각의 음악은 특별한 방법으로 듣는이에게 감동을 줍니다.
우리의 삶도 그 자신의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장 박동을 오르락 내리락하게 하는데 우리의 삶도 그렇게 합니다.
우리의 맥박이 심장박동기에 직선으로 표시되는 것은 우리가 죽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감정의 기복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가 시편 40편 1 절에서 3절을 주의해 읽으면, 아마 다윗왕일 수 있는 시편 기자 삶에서의 회상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삶은 성공과 실패로 점철되어 좋을 때와 나쁠 때, 행복할 때와 슬플 때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삶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1. 기다림의 시간(The Time of Wating) (1절)
기다림은 일련의 느린 음악과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인 원 언어에서 이 말은 근심, 초조나 지루함이 아닌 '희망과 인내의 기다림'을 뜻합니다.
또한 앞선 37, 38, 39편에서 기다림의 중요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37 : 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38 : 15)'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39 : 7)'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시편 기자는 긍정적이고 희망 어린 태도를 보여 줍니다.
희망은 우리 삶을 위한 추진력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삶의 목표가 없어서 삶이 비참하게 되어 몇몇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망은 조심해서 보여야 합니다.
부정적인 야망은 재앙으로 이끌 수도 있고 이끌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도박으로 부자가 되려는 희망은 그 사람을 도박 중독자가 되게 해 결국 빚으로 끝납니다.
범죄나 사기로 부자가 되려는 희망은 그 사람을 결국 범죄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적절한 방향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다윗왕에게 그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며 그의 호소를 들어 주시길를 바랐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들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계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와 하나님은 샌드위치와 같이 늘 함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는 우리 부모가 늘 우리 가까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십대에 우리는 연인이 늘 가까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이룬 지금은 우리의 자녀가 늘 가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 들었을 때에는 지팡이가 함께 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 15 : 4 - 5) 말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삶의 리듬은 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서로 돌봄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하여 정해져야 합니다.
2. 구원의 시간(The Time of Salvation)
구원은 흥분된 템포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2절)
'끌어올리시고'라는 말은 빠져가는 사람을 잡아끄는 행위를 말합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더 수렁에 빠져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수렁 - 문제에 빠져 있어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면 우리를 끌어낼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은 '주를 찾음'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개를 숙이면 볼 수 있는 것이 오직 진흙일 때 고개를 들어 주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끌어올리시는' 모습은 우리가 우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잡아끄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 올린 손과 팔을 하나님이 잡아 끌어 올리실 때는 정말 흥분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우리 두 팔을 올리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의 말씀에 완전히 복종한다는 표시입니다.
3. 기쁨의 시간(The Time of Joy)
이는 평온하고 느긋하고 평화로운 템포의 음악입니다.
2절에서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미끄러운 진흙에서 나와 반석 위에 발을 두었습니다.
이 부분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반석'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의 삶을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벧전 2 : 4)라 말하며 예수는 반석이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라는 모습은 예수 앞에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두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가 우리 옆에 서서 우리를 붙잡아 주심으로 인해 우리는 넘어지거나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3.1. 기쁨을 표현하는 찬양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3절)'
오랜 기다림과 구원의 기쁨을 맛 본 뒤에 비로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고통스런 마음이 하나님께 찬양드리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우리 삶의 굴곡과 싸우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새 노래'는 새로 다가 올 기쁨을 말합니다.
고통스런 경험을 이긴 후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할렐루야'는 '야훼를 찬양하라' 또는 '주님을 찬양하라'를 뜻합니다.
3.2. 찬양의 이득
기쁨의 표현과 덧붙여 찬양은 다른 이득이 있습니다.
찬양은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깊은 근심에 빠져 있을 때조차 우리가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그들은 우리 믿음을 봅니다.
우리의 찬양을 통하여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을 공경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삶을 내어 놓고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찬양은 우리 삶을 위한 하나님의 복주심입니다.
특별히 고통 가운데에도 찬양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음악은 다양한 템포로 연주됩니다.
우리의 삶도 다른 템포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증거는 기꺼히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것입니다.
찬양은 고난을 이겼다는 표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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