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Love : ความรัก)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전도사 낫타퐁 춤씨리(Nuttapong Chumsiri)
요한복음 3장 16 - 17장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평화가 여로분 모두와 함께 하길 빕니다.
오늘은 대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들레헴의 초인 붉은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 초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의 출생지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선택하신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때부터 대단하지 않았던 마을은 전 세계 도처에서 방문자들이 찾는 역사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 가기 전 예수의 복음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초를 ‘베들레헴의 초’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기뻐합니다.
그것 중에는 대부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치앙라이의 삼륜차 운전수들에게 선물을 주려 하는 것도 있습니다.
더한 것이 오늘 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려 합니다.
몇 년동안 우리는 성전 공사 가운데 있어서 조용하고 우리만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새해를 맞게 될 것입니다.
휴식, 다시 만남이나 가족과의 여행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삶을 즐길 때, 다른이들과 함께 하거나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려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사랑, 관대함, 도움이나 구원의 소식을 다른이들과 나눕니까?
크리스마스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예수가 인류를 속죄하기 하고 평화를 회복시키려 태어 나셨다는 것입니다.
희생의 화신으로서 예수는 복과 사랑은 모든 이에게 주셨고, 다음과 같이 이기심 없는 주심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주는 것은 지위나 종교에 상관없습니다.
시간이나 계절에 제한이 없습니다.
나이는 그 행위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는 것은 지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주는 행위가 부족함을 채웁니다.
금의 가득한 자루는 금 같은 마음에 견줄 수 없습니다.
기쁨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무엇이든 관계없이 다른 이들과 나눌 때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닌 가합니다.
오늘의 설교는 요한복음 3 : 16 - 17절과 사도행전 20 : 33 - 35절에 기초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시고 우리 신자들이 동료 인간을 위해 해야 할 희생의 시간으로써 크리스마스의 중요성을 비춥니다.
1.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
요한 3 : 16절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인류를 사랑하셨는지 명확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으나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심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도록 그의 아들을 보내심은 가장 큰 희생의 행위이며,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의 사명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구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이래로 우리가 기억해 온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를 주로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할 수 있고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을 담당하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귀함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분명해집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를 영접하도록 모든 이를 부르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삶 가운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예수는 심판하고 벌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는 진정한 사랑과 주는 것이 같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모든 것을 그에게 주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많이 사랑하신 것 그것이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유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흔히 이것 저것 하나님께 요구하며 받기를 원합니다.
매번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 주는 것도 없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 새로운 자세를 요구합시다.
바람 대신에 주기를 시작합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삶은 예수를 영예롭게 하여야 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의 사랑을 선포하며, 가까이나 사랑하는 이들과 예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2. 이웃을 위한 우리의 희생
예수 안의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가이 없는 사랑을 보여 주셨고, 우리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받는 이로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우리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고 받는 것이 완전히 다른 감정임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받는 것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행복을 주지만, 주는 것은 우리를 진실하고 지속적인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눔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아 왔나요?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아 온 것 즉, 복음이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 등을 나눕시다.
둘째,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웁시다.
주면, 사랑과 평화가 우리 마음에서 흘러 넘칩니다.
뭔가 돌려 받으려는 기대를 하며 주는 것은 잘못된 행위로 소용없고 쓸데 없습니다.
이런 씁쓸한 태도는 계속 되돌려 받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비통하게 합니다.
그리고 되돌아 온 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우리 마음은 준 것에 대한 비통과 실망감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현재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자는 영어 문자 ‘I’일 것입니다.
많은 물건의 상표는 I-phone이나 I-pad와 같이 ‘I’로 시작합니다.
사람 가운데, ‘I want’는 가장 흔히 들릴 것입니다.
‘I’는 가장 중요하거나 가장 영향력이 있습니다.
다른 단어에서 하나님(God)이 아니라 나(I)는 모든 것은 중심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를 이해하여야 하고, 나와 의견을 같이 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원하면, 누가 우리를 사랑할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른 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면, 누가 우리를 막을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기대한다면, 누가 우리에게 그것을 보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른 이에게 관용을 보이기 원한다면, 누가 우리를 막을까요?
우리가 받기를 원하면, 누가 우리에게 줄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른 이에게 주기를 원한다면, 누가 우리를 막을까요?
우리가 이해를 원하면, 누가 늘 우리를 이해할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누가 우리 편에 설까요?
우리가 늘 최상의 것을 바란다면, 누가 우리에게 그것을 제공할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른 이에게 최상의 것을 주기 원한다면, 누가 우리 의도에 반대할까요?
우리는 모든 것의 중심에 우리 자신을 놓았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날마다 커지나요?
우리는 다른 이가 우리를 이해하도록 기대하나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주는 의미를 더 이상 알지 못하고 필요보다 욕구에 의해 삽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우리 삶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 우리 자신이지 하나님인지 -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에서 확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불확실’, ‘불안정’,과 ‘애매모호’일 것입니다.
명성과 부가 우리를 천국에 데려다 줍니까?
권력과 지위가 우리에게 구원을 줍니까?
이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구원, 은혜, 복, 도움, 관용이나 복음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뭔가를 이웃과 나누었나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즉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가 여러분을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아멘.
뱀발)
제천 화제로 인해 좋은 목사님이 그만...
정말 좋으신 분이었는데.
크리스마스의 기쁨보다는 슬픔에 잠겨 있을 교회나 가정을 생각하니 종일 많이 슬펐어요.
이럴 때는 정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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