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8

[치앙라이] 7월 셋째 주일 예배

정안군 2018. 7. 15. 19:00

 

 

 

 

 

 

아침마다 새로우니(New every morning ใหม่อยู่ทุกเวลาเช้า)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담임목사 쁘라쏭 분웡(PrasongBoonwong)

 

예레미야애가 3 : 21 - 31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매일 이 땅을 걸으면서 삶은 꽃밭이 아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행복한 날은 슬픈 기간으로 바뀝니다.

타이 속담에 늘 좋일 일 일곱 번, 나쁜 일 일곱 번을 만난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최악의 기간 중에도 예수는 우리에게 쉴 곳을 주셔서 보호해 주십니다.

혹독한 시간 뒤 우리가 삶 중의 각 단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우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애가 3 : 21 - 31절입니다.

이 장은 예언자 예레미야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되기 전인 기원전 586년에 쓰여졌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과 그의 백성들이 받을 고통 때문에 아주 슬펐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통 가운데 아주 작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의 백성들이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기도와 죄의 고백의 중요성도 깨닫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도 삶 중에 혹독한 시험을 만났을 때 고통 중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와 삶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게 합니다.

내일이 아직 오직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삶 중의 두 가지 중요한 단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 봅시다.

 

1. 하나님을 따르는 초기 단계

애가 3 : 27절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를 봅시다.

‘멍에를 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훈련시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배울 뜻이 있음을 뜻합니다.

멍에를 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겸손히 다시 태어나기, 재난 중에 자기 통제가 되도록 훈련하기와 주 안에서 믿음과 인내를 가질 것과 같은 많은 부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어떤 목적으로 우리 어깨에 올려 놓은 멍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워지는 때에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한 믿음을 튼튼히 하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태도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 영양을 줍니다.

몇 사람은 그 멍에가 너무 무겁다고 불평을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화를 내거나 책망을 하기까지 합니다.

사실상 멍에는 하나님이 우리 어깨에 올려 놓은 특권입니다.

각 사람에게 적당한 크기와 무게입니다.

우리의 멍에가 가볍거나 무겁거나 크거나 작거나 우리는 그것에 감사를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늘 위안을 주고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23절에서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이는 아침마다 우리가 눈을 뜨는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 사랑, 자비가 우리에게 내릴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2. 우리의 일상 생활

예레미야 예언자는 그의 주변에서 죄와 고통 가운데 작은 희망의 빛을 봅니다.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우리 모두 자신을 낮추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복과 음혜의 선물을 세어 보며, 일상 생활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꾸준한 사랑을 경험해 봅시다.

눈은 우리를 지켜 보시고 귀로는 우리의 기도를 늘 들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늘 계시니 하나님과 함께 자신감있게 걸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우리 죄가 속해졌음을 믿는 우리는 예수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에 영생을 증명하는 예수의 몸 일부가 되었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굳게 믿으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약속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되었습니다.

‘The Steadfast Love of the LORD Never Ceases(주님의 변치않는 사랑은 끝이 없네)’라는 찬송가는 22 - 23절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주님의 변치않는 사랑은 끝이 없네.

그의 사랑은 끝나지 않네.

아침마다 새롭게 아침마다 새롭게

크셔라 그의 사랑, 오 주님, 크셔라 그의 사랑.

 

우리 모두는 이 친송가에 익숙하리라 믿습니다.

‘변치않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고대 히브리어(chesed)의 번역으로 이는 정직, 선하심, 충성과 자비와 관련이 있습니다.

‘mercy(자비)’라는 단어는 구약 성서에 246 번 이상 나오는데, 거의 시편에서 나옵니다.

이 단어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다른 이에 대한 인간의 자비를 말합니다.

 

때때로 성서는 인간의 간청에 대한(하나님의 뜻에 따른) 하나님의 응답을 언급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보시고’ 그리고 ‘들으시고’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합니다.

인간이 다른 이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 때 하나님은 그의 약속과 목적에 따라 그의 변치않는 사랑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을 기다린다면 하나님은 그의 시간과 그의 목적에 따라 확실히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 가족이든 교회 신자든 학교 급우이든 아니면 사회의 낯선이들에게까지도 변치않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변치않는 사랑이 매일 우리에게 내리고 같은 방법으로 다른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우리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목소리를 높여 주를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해 봅시다.

‘The Steadfast Love of the LORD Never Ceases(주님의 변치않는 사랑은 끝이 없네) 찬송을 두 번 반복해서 불러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