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8

[치앙라이] 7월 넷째 주일 예배

정안군 2018. 7. 22. 15:15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I will praise the Lord as long as I live ข้าพเจ้าจะสรรเสริญพระเจ้า ตราบเท่าที่ข้าพเจ้ามีชีวิต)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전도사 낫타퐁 춤씨리(Nuttapong Chumsiri)

 

시편 146 : 1 - 10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3. 너희는 힘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께서는 그의 양된 우리들을 주의 전에 불러 주셔서 귀한 말씀을 듣게 하시고 영적 전쟁과 삶의 모든 문제에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음악 절기인 이 달을 기념하여 교회 많은 신자들이 예베 중에 음악과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 찬양은 신자의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사실, 우리는 음악의 달 뿐만 아니라 매일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부분은 무엇입니까?

가장 명확한 답은 주 찬양과 주께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 감정 즉 춤과 노래와 같은 말과 행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정성으로 그래서 습관이 될 정도로 하나님을 찬양을 해야 한다고 성서는 강조합니다.

시편 146 :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이는 우리가 살아 숨쉬는 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시편 103편에서 다윗 왕은 하나님이 그의 삶 중에 하신 위대한 일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끝없는 은혜를 보여 주셨으니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셀 수 없는 큰 일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우리 죄를 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를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속해 주셨다는 것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악함을 지워 주셨으니 마음 속에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편 103 : 11)’라는 말씀을 새기고 주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 우리가 주를 찬양하고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우리가 주를 찬양하고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시편 92 : 1 -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매일 새날을 찬양과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에게 좋은 것이라 성서는 말하므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신 누가복음 17 : 11 - 19절을 생각해 봅시다.

10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았고 예수는 이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을 보이라 말합니다.

그들은 가서 나음을 받습니다.

고침 받은 10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 주를 찬양하고 감사드리려 예수께 돌아 왔습니다.

15 - 16절에 의하면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라’

예수께서는 17 -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

 

형제 여러분.

나병환자의 형태는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아홉의 나병환자와 같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은 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위대한 일에 기뻐하면서도 하나님 자신을 잊고 고통과 고난이 올 때까지 감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까?

우리는 그런 감사에 대한 무관심 속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요.

 

아니면 한 사람의 나병환자처럼 하나님께 돌아 와 찬양하며 주께 감사를 드렸나요?

예수께서 다른 아홉 나병환자에게 물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지 않게 되기를 빌어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혼란 속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어야만 하고 그가 우리에게 하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힘을 주셨으니 우리는 늘 그의 은혜와 그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은 우리 신앙과 믿음의 고백 수단이다.

무엇이 벌어지든, 신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감사와 찬양 그리고 모든 문제를 주께 맡김으로 신실하게 굳게 서야만 합니다.

디모데후서 1 :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의 삶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한 두 명을 살펴 봅시다.

 

첫째 사람은 다윗왕입니다.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이 말씀은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또 다윗이 왜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업적에 대해 증언을 했는지 이해하게 합니다.

시편 37 : 25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병사들에게 쫓겼습니다.

사울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이 기름 받은 자임을 알았기에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두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그에게 닥친 환경에 상관없이 그의 모든 걱정 근심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를 짓거나 실망시켜 드리거나 아니면 그에게 복종하거나 영광을 돌리거나 많은 기회가 우리 삶 가운데 주어 집니다.

세상의 짐이나 욕망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막지 않도록 합시다.

대신 모든 기회를 매사에 감사하며 찬양하는데 사용합시다.

 

둘째 예는 바울과 실라입니다.

사도행전 16 : 25 - 35절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손과 발이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영적으로 속박당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고 다른 죄수 앞에서 큰 소리로 찬양했다고 말합니다.

한밤중에 지진이 있었고 바울과 실라에게 채워졌던 속박은 풀어졌으며 감옥 문은 열렸습니다.

그래도 바울과 실라는 그 사태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감옥에 머물렀고 그것이 경비병들을 놀라게 하여 그들이 예수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에 대한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든 우리는 주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으면 그가 우리를 놀라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2 : 9절을 기억해 봅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

 

이 두 이야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문제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늘 알려 줍니다.

그러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를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대략 60%에 해당하는 첫 번째 그룹은 행복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역경을 만났을 때에는 그를 잊는 사람들입니다.

대략 25%쯤이 해당되는 둘 째 그룹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 오지만 답을 얻으면 흔적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그룹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단지 크리스천의 15% 정도입니다.

 

우리는 세 번째 그룹인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우리는 수적으로는 낮을 수 있으나 질적으로는 높습니다.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립시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단지 달콤한 은혜에만 주께 감사드리는 크리스천이 되지 않도록 학업 중이나 일터에서나 모든 생활 중에 이 말씀이 살아 있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주가 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리기 충분하게 강해집시다.

 

아멘.

 

뱀발)

이 달이 음악의 달이라 찬양하는 순서가 좀 많았습니다.

그냥 얼굴 부조하는 사람의 모습이 많아 보이긴 했어요.

그리고 병아리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는데, 이건 왕님 생일이 가까워 그를 기념하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가진 많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