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8

[치앙라이] 보름달 아래서

정안군 2018. 9. 25. 10:25

 

어제는 추석 한가위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교민 한가위 잔치가 해피시티에서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 그리고 경품.

많이 즐겁고 재미진 날이었네요.

 

총회를 겸했기 때문에 교민회장 선거도 있었는데, 선거는 올해도 작년 회장이 그냥 계속하는 걸로 끝.

참 쉽죠 잉?

 

대충 거주민들의 수를 놓고 볼 때 아번 행사에 참가한 가정이 30여 가정이었으니 비슷한 정도의 가정이 참석하지 않은 것 같네요.

여기 교민들의 구성은 너무 단순합니다.

여기서 순수하게 사업하며 거주 하는 분은 대여섯 가정, 그리고 나처럼 화이트 핸드는 극히 소수이고 나머지는 밋찬나리(มิชชันนารี) 즉 선교사입니다.

대충 짐작을 해 보면 밋찬나리 가정은 5 ~ 60 가정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짐작도 너무 막연한 짐작이라서 정확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시애미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는.

참고로 밋찬나리는 영어 미셔너리에서 온 말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내 현재 직업인 화이트 핸드 즉, 백수를 사전에서 찾아 보니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네요.

‘한푼도 없는 처지에’ 이 말이 뼈를 때리는군요.

힝 ㅠ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교민회는 선교사와 일반 사람들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있다 하네요.

정교 분리가 잘 안 되어 그런지 아님 너무 강조해서 그런지 나는 잘 모릅니다.

사실 정교 분리가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오래 전에 이미 판정이 났는데, 이걸 자기 형편에 맞추려니 사단이 벌어지나 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호 성인이기도 한 성인 암브로시우스 이래로 한 동안 교회 권력이 황제의 군력을 능가하게 됩니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은 내 능력 밖이니 궁금하신 분은 네이버 지식인을 이용하거나,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명작인 로마인 이야기 14권,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시길.

아무튼 이 시기 이후가 문명의 암흑기라는 중세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은 또 바뀌고 교황의 권세는 세상 권력인 왕 앞에 굴복하게 되지요.

그러던 중 교황의 교회에 반기를 들고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등장하게 됩니다.

개신교가 주장한 여러 가지 중에 핵심적인 것이 ‘만인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아래에서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얼마나 멋진 사건입니까?

 

태국의 교회에 가니면서 느끼는 것이 담임 목사의 위상입니다.

태국 교회 안에서 담임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 목사가 가지고 있는 수퍼 파워가 없습니다.

교회의 공식 대표도 신자 대표인 장로이고 그냥 목사는 설교만 담당하는 정도.

한국의 당회장이라는 제도에 익숙했던지라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사실 이게 본래 개신교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지요.

 

당연히 태국의 교회는 대형 교회도 없으려니와 담임 목사 세습이라는 기상천외한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또 여기서 설교를 들으며 가톨릭이 이교라든가 이단이라든가 하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회 소식을 전하는 한 매체에서 우리나라 대형교단으로 알려진 곳의 총회에서 가톨릭을 이교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는 정말 깜딱 놀랐습니다.

가톨릭이 이교라.

이교는 기독교 유파가 아니라 불교나 힌두교처럼 다른 종교라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가톨릭, 동방 종교회, 개신교를 망라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일부에서 신교인 개신교를 기독교로 표현하고 구교인 가톨릭을 천주교로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죠.

 

세상 기준으로도 이런데, 가톨릭을 이교로 정하라니.

아무리 자기 엄마가 싫기로 내 엄마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나요?

요즘, 우리나라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정말 가관인 게 많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킬 가치는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게 지킬 가치가 아니라면?

애고,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땡.

 

다만 이건만은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0 : 45절에서 하신 말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셨다.

이것이 예수 복음의 본질이고 선교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이 땅 태국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선교사가 태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리 믿고 싶네요.

 

오래 전 동요가 생각납니다.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제일인 척하면 꼴지된다는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높아지려하면 낮아진다는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이웃에게 주면 내 것 된다는

요건몰랐지 요건몰랐지.

 

이게 사실 성경의 요약입디다.

 

아무튼 머리 아픈 이야기는 이걸로 끄~~~~~~~ㅌ.

 

한가위 행사가 끝나고 나오니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었습니다.

사실 달만큼 세상 이치를 쉽게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른다는 것.

찼다고 생각할 때 기울기 시작하고 완전히 비우면 채워지기 시작한다.

 

생자필멸, 회자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