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행복은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아서 원없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 점이 타국에서의 아쉬움이죠.
한동안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정약용 선생의 형님이신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 유배 중에 지으신 책을 저자가 다양하게 내용을 꾸며 내놓았습니다.
다섯 권이나 되어 한 동안 읽는 즐거움이 컸네요.
자산어보라고 알려졌지만 현산어보라 읽는 게 맞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라서 자산어보라 하지 않고 현산어보라 했습니다.
어떤 대사이든 그냥 흘려 보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정약전 선생은 그 당시 천한 것이라 여겨지던 어부들과 교류를 통해 귀중한 지적 재산을 유산으로 전하셨습니다.
그것이 흑산도라 하는 당시 최고의 험지에 귀양 오신 분의 처지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대단합니다.
나는 주위의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사는지 되돌아 보게 합니다.
옛날 짧은 군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참이 제대를 할 무렵이면 추억록이란 것을 후임들이 만들어 주는데, 대개는 한 마디씩 쓰는 게 고작이었죠.
들어 온지 얼마 안 되는 처지라 잘 알지도 못하는 선임이었는데, 생각을 해 보니 별로 써 줄 내용이 없어 가곡한 소절을 써 주었습니다.
기약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 산위에 흰 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
아, 돌아오라
아, 못오시나
오늘도 해는 서산에 걸려 노을만 붉게 타네.
이걸로 그 날 내무반이 뒤집어졌습니다.
역시 먹물을 달라도 뭔가 다르다.
너니까 이런 멋진 글이 나오지 우리들이 이런 멋 있는 글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냐고.
생각 밖 반응이라 이건 그냥 가곡 한 소절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최고 고참님 하신 말쌈.
이런 노래가 있어?
암튼 이후 그저 공부만 했던 먹물이라 모든 게 맹탕이라고 여겼던 부대원들은 나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사건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사는 경남 거창에 가다가 잠시 지례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김천시 지례입니다.
거기서 놀란 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해장국 값이 4,900원이라 너무 싸서 놀랐고,
두 번째로는 맛이 너무 없어서 놀랐고,
세 번째는 동네 입구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놀랐습니다.
메타세쿼이아는 아니고 측백나무 같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측백나무라 치고.
지례는 흑돼지가 유명한 모양이던데, 차라리 그것보다는 입구 나무들의 모습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매일 보며 살면 얼마나 대단한지 잊고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례 사시는 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측백나무 가로수를 잘 보존하고 더 넓게 심어 소중한 자산으로 삼으시라고요.
나무는 예뻤는데 그 아래 간판이나 무분별한 주차 차량 때문에 가로수길과는 어울리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는 말과 함께요.
나에게 지례는 흑돼지보다 측백나무가 더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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