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20

[치앙라이] 1월 셋째 주일 예배

정안군 2020. 1. 19. 18:20

 

 

 

2020년의 크리스천((Christians of 2020)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전도사 낫타퐁 춤씨리(Nuttapong Chumsiri)

 

마태복음 4 : 18 - 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19 : 20 - 22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우리 대부분은 새해를 위한 목표를 설정하셨고 몇몇 분은 이미 이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을 시작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목표는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놀라운 기술의 시대로 들어선 2020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크리스천 사역의 목표는 영적인 것보다는 상업적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2020년의 크리스천’이나 ‘기술 시대에서의 크리스천’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우리를 우리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부르시는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강조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예수를 따르려고 그의 직업과 가족을 버렸던 예수의 ‘잠재적’ 제자인 어부입니다.

둘째는 예수를 따르려는 의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소유했던 부자입니다.

이 사람을 바탕으로 나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세 가지와 해서는 안되는 세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해야 할 세 가지.

첫째로 하기 - 하나님 따르기.

예수께서 어부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주저없이 응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예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의 길을 잘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늘 그의 뜻을 따르고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리스천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도록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기 - 하나님을 신뢰하기

하나님을 따르고 그의 뜻에 복종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려야 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 부터 떼어놓으나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면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합해집니다.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는 회복될 것이고 우리는 늘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신뢰하는 것은 생각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고 특별한 방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삶 가운데 일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하는 지금,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며, 교회 활동에 의지를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를 신뢰하면 매일 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우리 삶 중의 변화는 즉시 눈에 띠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 삶을 조심스레 성찰해 보면 사실 전체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생산적이 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하나의 표시입니다.

 

셋째로 하기 -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기.

여기서 나는 영적인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은 우선 앞서 해야 할 두 가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따르고 그를 신뢰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고 성숙해 질 것입니다.

영적 성숙은 우리가 좀 더 예수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 과정을 이끌어 주셔서 우리의 일상 생각, 결정과 행동이 주를 영예롭게 할 것입니다.

 

세 가지 해서는 안 되는 것.

삶 중 많은 경우에 우리는 주님의 지시에 반하여 하려는 것에 충분히 집중하지 않고 인간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여 마무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같은 속성을 보이지 못합니다.

부자 청년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부자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 부터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것을 할 수 없어서 슬퍼하며 되돌아 갔습니다.

세 가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이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첫째로 해서는 안되는 것 - 세상을 따르기.

하나님의 말씀은 늘 우리들이 세상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런 풍습에 저항하여야 합니다.

우리 일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파로 갈라져 있고 어떻게 하면 개인적인 이득을 얻을지 골몰하고 있습니다.

몇몇 신자들도 단지 육체적 행복이나 쾌락을 위해 그런 방법을 따릅니다.

이는 성서가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로마서 6 : 23절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둘째로 해서는 안 되는 것 - 복을 구하는 깍쟁이되기

깍쟁이는 하나님 사업에 재정 후원이나 육체적 노력을 할 의지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만일 육체적, 지적이나 경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역에도 기여하지 않으려 하면 깍쟁이가 됩니다.

더 나빠지면, 행하려는 사람을 심판하거나 뒷말을 하거나 비판하거나 흉보는 방관자가 됩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분열을 가져오기에 수치스러운 것이 됩니다.

깍쟁이는 하나님의 사업에 대해 재정 지원은 말하지 않고 육체적 노력에 의한 사소하고 값없는 기여만을 선택합니다.

같은 시간에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치품에 엄청난 지출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역을 행하는 데는 의욕이 없으나 하나님에게서 복을 풍성하게 받기를 기대합니다.

 

셋째로 해서는 안되는 것 - 영적으로 죽기

계속해서 세상을 따르고 다른 사람을 섬기거나 도울 의지가 없으면, 최종적으로 우리들은 영적 죽음을 맞게 됩니다.

마태복음 19 :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래서 24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영적 건강이나 풍성함을 돌보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의 즐거움만 돌봅니다.

영적 죽음이 시작되는 첫 징조는 세상 활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회에서 친교를 갖는 곳보다 더 큰 쾌락을 가져오는 감정입니다.

몇몇 크리스천들은 주님을 예배하러 오는 대신에 다른 장소에 가거나 SNS에 빠져 사진을 올리는데 열중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영적 생활에 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물 공급이나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나무처럼 되어 곧 마르고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우리 신자들은 우리 삶 가운데 세상에 속할 것인지 아니면 주께 속할 것인지 분명한 목표를 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여러분은 일을 그만 두고 교회에서 봉사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따르고 신뢰하고 자라지 않으면 세상의 길로 벗어나기 쉽게 되고 주기는 싫어하고 받는 것에 열심인 자가 되고 결과적으로 혹독한 영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늘 명심하여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