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 : 37-40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설교자 : 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원로목사)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일예배 때마다 신앙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악명 높은 자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실제로 예수를 사형시킬 마옴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무리들이 예수를 끌고 로마 총독의 관저로 가서 총독에게 직접 고소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의 집인 총독 관저에는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는 진행하면서도 율법은 지키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몇 가지 심문을 하더니 예수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보았고 유대인들이 있는 관저 밖에 나가 "나는 그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18:38)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의 집권층이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소했던 사건을 보고 그들의 고소와 반대로 생각했다는 것은 그에게 일말의 양심과 정의감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보통 정치인들은 힘 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데 말입니다.
또 빌라도는 마침 유월절이라 갈릴리를 다스리는 분봉왕 헤롯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예수를 선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그에게 보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음모와 다르게 예수의 편을 들어 줄 위인이 못 되었습니다.
헤롯은 빌라도가 자기에게 위임하긴 했지만 예수를 석방시키지 않고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빌라도에게는 예수의 문제는 정말로 골치 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여우같은 헤롯왕도 그를 석방시키지 않고 자기에게 돌려보냈으니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죄 없는 예수를 놓아줄 묘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에는 한 사람의 죄수를 놓아줄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의 원성을 사는 죄수인 흉악범 바나바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석방시킬까 너희가 택하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분명히 죄 없는 예수를 놓아주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바나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급히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마 27:19)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방인인 로마 총독의 부인이었지만 마음이 착하고 선한 일을 추구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꿈에서도 이런 꿈을 꿨을 것입니다.
이런 좋은 아내를 두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는 상당한 양심과 도덕성과 정의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 정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고소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유대 무리들이 거의 미친 것처럼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만일에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를 죽이지 않았다가는 분명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았습니다.
당시 총독 빌라도의 위치가 로마제국에서 정치적으로 그렇게 공고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와 원로원에서 그를 그렇게 신임하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소신껏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정치적인 위기가 오는 것보다는 문제가 되고 있는 이 한 사람 예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자기가 살아남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심과 도덕성과 정의감도 있었으나 일단 자기에게 정치적인 위기가 온다고 생각될 때는 그의 양심이나 도덕성이나 정의감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의 양심과 도덕성과 정의감은 자기에게 손해가 없을 때까지였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보통 사람들에게는 양심도 있고 도덕성도 있고 어느 정도의 정의감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신변에 위기가 오면 양심이고 도덕성이고 정의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내 편의대로 내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양심과 도덕성과 정의감이지 내게 해가 된다면 다 버리고 나 살 궁리만 챙기기에 바쁩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였던 피터 드러커는 지도자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양심의 목소리를 가져야 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양심의 소리를 끝까지 내지를 못했고 백성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책임성 있는 결단을 하지도 못한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께 "네가 왕이 아니냐"(요18:37)고 비웃듯이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었기에 정치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양심적으로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도덕적으로 사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정의감으로 인권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자기에게 손해가 올 때나 자기에게 위기가 올 때나 자기의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에는 그 자리를 회피하는 비열함과 추악함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양심과 도덕성과 정의감을 가지고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의 수태고지를 들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 1:28)."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놀라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했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고 다윗의 왕위를 이을 것이요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고 그의 나라가 무궁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고 물었습니다.
이 말은 마리아가 진리 속으로 깊이 더 나아가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직 약혼자 요셉과 함께하지도 않았는데 임신한다니 또 아이를 낳는다니 무슨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말입니까.
파혼은 물론 어찌면 그 동네에서 불결한 여자로 몰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없어야 될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낳을 아들이 다윗의 왕위를 이을 아이라도 결혼한 후에 낳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필 아직 남자도 같이 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에게 어떤 고난과 환란이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이해했다거나 어떻게 활용하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도록 하고 우리를 인도하도록 하고 우리를 움직이도록 하고 주님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인도할지라도 자신을 내려놓겠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결단이 진정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순종하기로 작정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살았던 정치인 월리엄 월버포스는 21세에 영국의 하원의원으로 등원하여 노예무역과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 일생 동안을 바쳤습니다.
당시 영국의 국가 재정의 1/3이 노예무역으로 채워질 정도로 노예무역은 영국에서 포기할 수 없는 기간산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선 의원인 월버포스는 등원하자마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제출했고 의원들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초선의원으로 그를 대하며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면서 그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계속하여 도전하였으나 의원들의 협조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곤 했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영국이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붙잡아다 미국과 유럽 각 나라에 팔아 국가의 재정에 보탤 수가 있을까를 가지고 고민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이란 얼굴 색깔과 관계없이 그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는데 어떻게 사람을 강제적으로 붙잡아다 팔아 그 돈으로 국가 재정에 보탠다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자기 조국 영국에 대해서 실망하기까지 하면서 매일 기도하면서 이 제도를 고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이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나서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에게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눅 4:18-1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에게 흐려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할 일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며 돌보는 일이어야 합니다.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월버포스의 그런 뜻을 잘 아는 친구인 월리엄 피트가 그런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권유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실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데 그렇게 신앙 생활을 잘하는 의원들마저 영국 국가 재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는 정치에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정치를 때려 치우고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을 고치는 목사의 길을 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속 시원한 응답을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그의 숙부의 친구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 영국에서 존경을 받는 존 뉴턴에게 "내가 정치를 그만두고 복음 전도자로 나서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그의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존 뉴턴은 말하기를 "자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부르심을 받은 것이 중요하다네.
부름받은 자는 어디서 부름을 받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자리에서 일하면 되는 것이네.
자네는 정치하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떨까"는 말씀을 듣고 그 뒤로는 그는 정치의 자리가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동안 그 일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월버포스는 1807년도에 국가 재정의 1/3이나 차지하는 노예무역 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해방 법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친구였던 월리엄 피트가 수상으로 있을 때 당론을 어기고 그와 반대되는 연설을 함으로써 그는 그가 속한 정당의 당론이나 그의 출세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에 관심이 있었습나다.
그 당시 수상과 배치되는 연설만 하지 않았으면 그는 친구인 월리엄 피트를 이어서 영국의 수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애석해했다고 합니다.
그는 수상의 자리보다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는 사람보다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멘토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그룹은 클레팜 공동체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20여 명으로 되어 있었고 그들 가운데 존 뉴턴이나 요한 웨슬레 같은 신앙의 위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기도의 친구들의 사랑과 위로 그리고 권면이 월버포스를 그렇게 만들었고 그가 살던 시대에 상상할 수 없었던 노예무역법 폐지와 노예해방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아주 위중한 시대에 서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합니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종교계 특히 기독교 교계의 갈등이 과거에 보지 못했던 현상입니다.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힘입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종교로 성장하였으나 그 몸집에 걸맞은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지 못하여 근자에 와서는 사회에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그런 비판을 받는 이유는 하나는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상실했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이기적인 종교 집단으로 전락하여 구원의 역동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 교계의 연합 단체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정권 퇴진 운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으며 그 가운데 어떤 분은 나치 정권과 맞서 싸우다가 순교한 본회퍼를 자처하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정권이든 나치처럼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심각한 인권 문제를 일으키고 평화를 깨고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면 교회가 생명을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예수의 하신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신 일인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성기고 나눔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나라로서의 교회는 사회문제와 정치 문제에 극좌나 극우 그 어디에 치우치기 보다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외치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인권과 평화에 역행하는 세력에게는 경종을 울리고 하나님나라의 질서에 맞게 하는 이들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 월버포스처럼 양심과 정의감을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바쳐 복지 사회와 평화통일을 이뤄 내는 일꾼들을 키우고 세워 나가는 일도 해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 계시는 목사님들은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월버포스를 키운 클레팜 공동체같이 정치·사회·문화 그리고 교계의 지도자들을 키우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 19일 오전 서울 양재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에서 개최된 나라를 위한 기도 모임 설교입니다.
많은 한국 교회가 화합과 연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는데 앞장 서고 있는 시국에 존경하는 전 목사님께서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랑과 연합과 일치를 선포하는 한국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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