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유튜브로 예배를 감상(?)했다.
9시에 한 번 그리고 11시에 또 한 번.
물론 다른 교회이다.
두 번이라고 해도 컴퓨터만 켜면 되니 힘들 것은 없는데 이런 예배는 뭔가 허전해도 많이 허전하다.
우선 9시 예배.
설교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으로 하였다.
출애굽기 23 : 11 - 13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다른 이야기로 시작한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그리고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는 내용이다.
대충은 내가 대학생이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옛날 중세 유럽 어떤 동네에 신분이 높은 집안의 아들과 천한 집안의 아들이 아주 친하게 지냈단다.
어려서는 신분이 문제가 없었지만 커가면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금수저 출신 아들은 신학교에 들어가 신부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흙수저 출신 아들은 따라서 할 수 없었고 대신 그 신학교의 하인으로 들어갔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였다.
신부가 된 친구는 점점 큰 신부가 되어 큰 교회를 맡게 되었고 나중에는 큰 직분까지 올랐다.
그 때마다 다른 친구는 그 친구를 따라가며 그가 속한 곳에서 하인으로 일했다.
고귀한 신분이 된 신부 친구는 그 하인 친구를 잊어 버리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는 뭔가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고 그 뒤로 모든 것이 이상하게 잘 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를 모르고 번민하던 신부는 잠도 잘 못 자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자기 친구가 궁금해졌다.
시중들던 하녀를 불러 그 친구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마구간에서 일할 것 같다는 대답.
밤이 늦었지만 마구간에 내려가 보았으나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마구간을 담당하는 노인을 불러 자기 친구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
그는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 친구는 늘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였죠.
하루도 빠뜨린 날이 없었답니다.
정확하게 그가 죽은 것이 언제냐고 물으니 말해 주는데 자기 몸에 이상이 있던 바로 그 때였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도 그 하인처럼 평생을 내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하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
기도를 안 하는 날은 있었어도 기도하면서 내 친구의 이름을 빼먹은 적은 없었다.
오늘 9시에 유튜브를 통해 설교를 들은 교회의 담임 목사가 바로 그 친구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 친구가 자랑스러웠고 잊지 않고 기도한 내 자신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설교 말씀이 얼마나 간결하고도 은혜가 되는지.
오늘은 그것으로 끝내야 했다.
그런데 생각나는 다른 교회가 있었다.
해서 11시 예배를 시청했는데.
영 기대 밖이었다는.
대표로 기도하는 장로는 태극기 부대인지 기도 내용에 그런 것을 잔뜩 담았고.
목사 설교도 비슷한 내용으로 일관했다.
코로나를 빌미로 정부가 교회를 박해하려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시는 동성애자 페스티벌은 허용하면서 그리고 경기도는 민속촌에서 코로나 싯김 굿 행사는 허용하면서 교회는 행정력을 동원해 예배를 간섭하려 한다.
강남 술집이나 PC방은 그대로 두면서 왜 그러느냐?
(어떻게 교회를 그런 곳과 비교하는지)
또 대법원에서 남녀 성별 바꾸는 걸 쉽게 하도록 허용했다(이것이 정부와 뭔 상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이런 이야기를 교회 기도와 설교에서 계속 들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중간에 끊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이런 말보다 이렇게 설교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코로나로 인해 우리 교회가 피해가 많고 그로 인해 억울한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희생하여 코로나에서 벗어 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
왜?
예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죄 많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기까지 하셨고 우리는 그 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속죄양이 되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교회가 그 짐을 얼마든지 지겠다.
이렇게 설교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세상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
아무튼 오늘은 최고의 날이었다.
미세 먼지 한 점 없는 날.
하늘은 정말 푸르렀고 그래서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소백산 연봉까지 보였다.
버들강아지도 핀 멋진 날.
코로나 때문에 듣게 된 친구 목사의 설교와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둘 다 최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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