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네 이름에 관심이 많다.
이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님 어디서 유래했을까?
요즘엔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은 알쓸신잡이나 TMI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자기 존재에 대한 이해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
동네 이름은 원래는 순수한 우리말로 되어 있던 것이 언젠가 유식한 한자어(?)로 바뀌어 뜻 불명이나 이상한 해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많았었다.
다행히 주소가 도로명으로 개편이 되면서 길 이름이 다시 본래 이름을 찾아가게 되어 다행이 아닌가 싶다.
아들이 올 봄에 서울로 이사하면서 살게 된 동네 주변 이름에 관심이 생겼다.
근처의 지명 모래내는 전에 그 동네에서 살아 본 적이 있어 새삼스럽지 않고 이름도 워낙 해석하기 쉬워 특별하지는 않았으나, 남북 가좌동, 증가, 증산에 거북골은 어디서 유래했을 까 궁금해서 찾아 보기로 했다.
우선 가좌동에 대해 찾아 본다.
가좌동은 '가재울'에서 유래했단다.
당연히 가재가 많은 냇가 동네라는 뜻이겠다.
증가는 뭘까?
증가는 지금은 사라진 동 이름으로 증산과 가좌에서 한 자씩 따와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옛날 있던 증가동은 북가좌동에 흡수가 되었단다.
그럼 증산은 뭘까?
찾아 보면 이렇다고 나온다.
증산동이라는 지명은 ‘시루뫼’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마을 뒷산(반홍산)이 시루를 엎어놓은 모양 같다 하여 나온 지명이다.
일설에 의하면, 증산동이 한강 하류에 위치하여 장마철만 되면 온 마을이 범람하였는데, 비만 그치면 마을에 가득 찬 물이 일시에 빠져나가 마치 시루를 연상하여 '시루뫼'라고 불렸다라는 설도 있다.
증산의 '증'자는 원래 ‘시루 증(甑)’이었지만 시루는 밑이 뚫려 있어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하여 토박이가 고종에게 상소하여 갑오개혁 무렵부터 ‘비단 증(繒)’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고양 땅에서 서울시로 되었으니 부자 마을이 된 것인가?
마지막이 거북골이다.
동네에 '거북골로'도 있고 '거북어린이공원'도 있었는데 산동네에 어인 거북이 이름이 나왔나 했다.
해서 유래를 찾아 보니 화산군 이연 신도비가 출발이었다.
신도비에 대해서는 검색하면 잘 나오니 찾아 보시고.
일단 신도비는 거북이 등에 올려져 있어서 이 거북이가 동네 이름을 만들었던 것.
아들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쓰레빠를 신고 슬슬 찾아가 보았다.
이미 아들을 동반한 유튜버가 있었고 한참 촬영 중이었다.
이들을 지켜 보면서 이 신도비를 보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왕가 가문으로 묘를 조성할 때는 얼마나 거창했을 것이며 묘역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묘는 이전되었고 그 자리에 신도비와 짝 잃은 문인석 한 기만 울타리에 갇혀 있었으니.
묘가 있었을 자리는 동네 주차장이 되었고 옛날 묘역은 주택과 교회가 자리하고 있게 되었다.
옛 영광의 부질 없음이여.
그래도 동네 이름에 거북이를 남겼으니 그만하면 족하다 싶을까?
아무튼 이렇게 동네 이름을 알아 보면 가끔씩 모르던 것도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
알쓸신잡의 기쁨이랄지.
이 신도비는 일부러 찾아 갈 정도는 아니고 정 궁금하면 '화산군 이연 신도비'로 검색해 보는 정도면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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