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체온과 같은 급으로 치솟던 온도가 30도 안팎으로 순해진 어제.
어머 이런 날은 미루어 두었던 산성을 올라가야 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제법 중요한 동네마다 성을 가지고 있던 이 땅.
어김없이 이즈미르에도 산성이 있다.
버스가 꼭대기까지 간다는 건 알았지만 차를 타고 산에 간다는 것은 산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미루워 놓았었는데 요즘 아내 상태로는 걸어간다는 건 거의 미션 임파시블.
그래 버스 타고 가자고.
미리 조사를 하니 우리 동네에서는 트램 버스 버스의 조합이 나온다.
트램 거리는 가까우니 그건 생략하고 버스와 버스의 조합 OK.
이즈미르 산성의 이름은 카디페칼레(Kadifekale)
칼레는 성이니 카디페 산성이 되겠는데 역사가 알렉산더 전으로 올라갈 정도로 유서 깊은 성이다,
성 정상까지는 33번 버스가 올라가니 어디서든 이 33번 버스 노선과 접선을 하면 된다.
물론 다리가 성한 사람이나 버스로 올라가는 것은 산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걸어서 올라도 전혀 뭐라는 사람 없다.
일단 33번 버스를 만나러 갔는데 카드에 돈이 없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Help me하니 한 청년이 직접 우리를 데리고 구멍가게에 가서 충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오늘의 교훈
버스 카드 충천이 필요할 경우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시라.
기계로만 충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할 수 있다.
33번 버스는 타자 마자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가면서 멀리 보이는 이즈미르 시가지는 예쁘지만 주변은 가난한 티가 줄줄 흐르는 동네.
히잡을 쓴 할머니의 모습도 많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 같다.
그러다 아이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왔는데 버스 기사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소리를 막 지르며 아이들을 윽박지르던데 아무래도 공짜를 못 타게 하는 듯.
몇 아이는 버스를 탔다가 기사의 소리에 흠칫 놀라며 다시 내리기도 했다.
옛날 초딩이 시절 외가에서 쌀을 가지고 오라는 심부름을 수행할 때 나도 버스비가 없어서 조수에게 꽤 혼난 적이 있어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 뒤 자전거를 마스터하자 그 자전거로 쌀을 실어 나를 때 고생한 기억까지 덤으로.
성 입구에서 내리면 되었는데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정확히 몰라 그냥 타고 있었더니 성을 따라 죽 더 가서 종점이 나왔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타고 입구에서 내린다.
왔다리 갔다리 하는 동안 주변 경치 구경이 보너스.
입구에 내리니 이즈미르 시가지의 모습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아내에게 오늘 최고의 경치를 약속했는데 그 말이 증명이 되는 느낌.
그래 어느 동네에 가든 거기서 최고로 높은 곳은 반드시 올라가야 해.
이건 진리이다.
심하지 않은 경사를 따라 올라가니 제법 거창한 성문이 나온다.
승용차가 있는 사람은 이 길을 따라 올라 와 성문을 통과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다.
이 동네는 차 있으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나라인 듯.
입장료는 없다.
성문을 통과하면 바로 옆으로 성을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이런 곳도 반드시 올라가 봐야 한다는 신념으로 올라갔는데.
성의 모습은 충주 남산성 분위기와 비슷했다.
성이 산봉우리 부근을 둘러쌓고 그 안에 넓은 터가 있는 구조.
그러니까 이 성의 용도는 평소 거주용이 아니라 아래 동네에서 살다가 누가 쳐들어 오면 이리로 튀어 저항하는.
성에 오르면 밖이 잘 보일 것 같았지만 수원성처럼 성벽이 높아 제대로 보이는 곳은 이런 틈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여?
치도 있었고 이렇게 앞이 활짝 열리는 부분도 있었다.
힐튼 호텔이 멀리 보인다.
메이저 급은 아니고 더블트리라는 등급이 붙은 호텔이다.
현재 환율로 하루 10만 원 정도 하니 좀 말랑말랑한 금액이로구나.
그 앞의 호텔은 스위소텔이라 하는데 얼마나 하나 알아보니 여기는 25만 원 선.
여기는 말랑말랑하지 않고 많이 딱딱한 곳일세.
우리 아들은 이런 곳에 척척 가드만 나는 손과 발이 떨려 이런 곳은 절대 못 간다.
혹시 모르지.
아들 누군가가 이런 곳에 예약을 질러 주면. ㅎ
바로 아래에는 소박하지만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라는 이름이 붙으면 좋을 곳.
Under the pine tree,
성은 완전히 이어지지 않고 부분만 공사를 마쳐 바로 끝이 나왔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시내 구경.
멀리 쌍둥이 빌딩도 보이고 시내 공원도 보인다.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이니 성이 들어앉았겠지.
소나무 아래 카페 탐색이다.
테이블도 의자도 플라스틱 제품이었는데 우리가 앉으니 주인이 쿠션을 가지고 와서 깔아 주더라.
다른 사람은 그냥 앉아 있었는데.
외국인이라고 대접하는 듯.
노인 부부가 운영을 하였는데 거창한 것은 없고 차이와 아이란 그리고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료수 정도였다.
와이파이만 잘 되면 얼마든지 앉아서 쉬면 좋을 곳인데 그놈의 와이파이가 뭔지.
엄마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학교에서 온 것인지 아무튼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아내가 말하기를 이 동네는 뭘 물어보면 동네가 다 출동하여 알려 주려고 하는데 먹는 것에 대한 인심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이런 음식을 차려 놓은 곳을 지나칠 때 빈말이라도 먹어보라고 하는 사람이 이제까지 전혀 없었다.
하긴 인심이 더 사나운 한국에서 온 주제에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웃기는 소리이긴 하지만.
흰머리 소녀가 땅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참 예뻤다.
저런 곳에서 책을 읽노라면 무엇을 읽어도 세상 이치를 꿰뚫을 것만 같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은 그냥 절벽이다.
분위기는 좋으나 와이파이가 없으니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고 우리도 다른 곳이 궁금해 발길을 이어가는데.
분위기 좋고 경치 좋은 곳은 그게 다였다.
폼 나는 성곽과 주변 경치를 보여 주었던 퀴타히야에 비하면 에게 이게 뭐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수준.
군데군데 무너진 유적이 보이지만 이런 정도는 너무 많이 봐서 그저 그랬고.
그래도 궁금해서 무슨 유적인가 찾아보니 마스지드 흔적이란다.
마스지드는 이슬람 사원이다.
그런데 모스크와 마스지드의 차이는 뭘까?
역시 구글god
아랍어의 '마스지드'에서 유래했으며 에스파냐어의 메스키타와 프랑스어 모스케를 거쳐 영어 '모스크'가 됐다.
출처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너진 성벽 아래로 마을이 있는 듯.
당연히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기이한 건축물이 있었는데 더 놀란 것은 이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난민들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집들을 보니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 버스 기사가 아이들을 다그치던 그 장면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난민들 아이였고 돈이 없어서 버스를 공짜로 타려다 그렇게 혼이 나고 했던 것.
난민들이니 무시를 당하는 형편이고 거기에 돈이 없으니 더 무시를 당하고.
이래서 저녁 무렵에는 절대 여기를 올라 오지 말하고 하는 모양이다.
버려진 성벽과 버려진 사람들.
묘한 씁쓸함이 몰려왔다.
우리가 모르고 갔던 종점까지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여기 오는 도중 여자 처녀들 몇몇이 우리를 향해 엄마 엄마 그러면서 다정스레 불렀다.
이 처자들도 난민인 듯.
뜨겁지 않은 날씨를 보고 반갑게 찾은 카디페칼레.
내 눈이 높아진 듯 성곽은 기대 이하이었고 거기서 만난 난민들의 모습은 영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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