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투르키에 여행 계획에는 '계시록 일곱 교회를 찾아서'와 같은 것은 없었고 안디옥을 보고 나서 아라랏 산이 있는 동쪽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아내의 강력한 저항에 순응을 하여 그 계획을 연기 또는 포기하고 일단 에스키셰히르에서 지내며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하며 판단을 하기로 했는데.
그리고는 그냥 국민 코스를 따라가는 것으로 조정을 했더니 거기에 일곱 교회가 등장을 하게 되었단다.
필라델피아의 고향 알라셰히르를 시작으로 하나씩 다니다 보니 이제 마지막으로 사데만 남게 되었다.
사실 사데는 이즈미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교통편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날이 뜨겁다 보니 그 동네에서 어떻게 이동을 하며 볼 것인지가 풀리지 않는 과제였다.
유적지는 역에서 대충 2 km가 좀 넘는 거리라서 날만 뜨겁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으나 지금은 염천 시절이다.
구글맵에서 보니 아주 시골스러운 곳이던데 과연 택시가 있을까?
이리 저래 알아보니 교통편으로 기차가 있었고 일단 가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어 그냥 질러 보기로 했다.
다행히 날씨도 어제보다는 덜 덥다 하니.
어제 아내에게 사데 이야기를 했더니 귀인 찬스를 써서 승용차를 빌려 타고 갔다 오자는 말로 단칼에 거절당한 지라 오늘은 다른 장소를 말해 일단 움직이게 만들었다.
셀추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쿠사다시가 있는데 바다 풍경이 대단하다더라 그러니 그곳을 가보자.
체쉬네 바다에 반했던 아내는 쉽게 OK.
물론 사데를 가려면 알라셰히르 행 기차를 타야 했는데 그게 혹시라도 없는 경우는 그냥 셀추크를 가면 되지 하고 마음을 먹기는 했다.
셀추크 행은 10시 45분.
알라세히르 행은 10시 55분 발이라서 선택하기가 쉬었다.
일단 기차를 타려면 바스마네 역으로 가야 한다.
너무 일찍 나온 탓에 시간이 넉넉해 이즈미르 교통 카드 충전이라 해 두려고 바스마네 메트로 역으로 먼저 갔는데 연식이 제법 되신 부부 3팀이 승무원과 뭐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니 이 분들 마치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교통 카드를 어디서 사냐고 물어 오셨다.
옵티뭄 몰에 가려하는데 환승이 필요하고 그게 일회용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니 승무원과 번역기를 열심히 돌리며 대화를 하던 중이었던 것.
일단 교통 카드를 사는 곳은 내가 아니 그리고 가시자고 하고는 역으로 가서 매점에서 사게 도와 드렸다.
원래 해외에 나오면 돈에 민감해지는데 이 분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카드 구입하는 돈 몇 푼이 대단히 아까우신 모양.
내일 다른 곳에 가신다니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겠지만 사실 카드 보증금이 20리라이니 우리 돈 1000원이 살짝 넘는 금액인데.
그래서 한 부부 당 하나씩을 사셔서 같이 쓰실 수가 있는데 이즈반은 안 되니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부부 당 하나씩 사신단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고 헤어졌는데 그게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이왕 몰에 가시려면 트램 한 방이면 되는 곳으로 가시라고 말씀을 드릴 걸 그랬나 쉽고 옵티뭄에 가려면 이즈반을 타야 하는데 그건 각자 찍어야 되니 어떻게 가셨을까 등등.
하지만 내가 다른 몰을 추천했다 하더라도 말을 들을지도 미지수이고 내가 가이드로 나선 것도 아니니 도움은 다 드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거 사실 피곤한 구성이다.
누군가 리더가 있어 부부 3팀이 좋은 마음으로 외국 여행에 나섰을 텐데 이건 내가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라도 말리고 싶다.
리더는 자기 돈을 쓰면서 골이 빠지고 나머지 사람은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닐 텐데 이러면 결국 싸움이 벌어지고 잘 못하면 평생 원수로 지내게 될 수도 있는 사이가 된다.
이럴 경우는 패키지를 하던지 아니면 이동과 숙소만 함께 하고 나머지 시간은 알아서 하도록 시간 구성을 해야 한다.
아무튼 친한 벗이라든지 부부가 함께 배낭여행을 나서는 것, 이건 폭탄을 안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심하시라.
역에 도착을 하여 아내에게 사실을 말하고 오늘 사데에 가는 것 어떠냐고 물으니 내 머릿속에 이미 그런 생각으로 여기 온 것임을 알고 그렇게 하자고.
다행히 표를 사려고 줄을 서있을 때 알라셰히르 행 기차가 홈에 들어와 대기 중이었다.
역시 기차는 값도 싸다.
2시간 30분 걸리는 여행에 비용이 일인 당 26리라.
버스는 1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데 기차가 많이 돌아가긴 한다.
그래도 기차역이 접근이 쉬워 버스보다 나쁘지 않다.
앞서 떠나야 할 데니즐리(셀추크) 행이 대기 중인데 우리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여 저번에 버스로 스쳐 지나갔던 마니사를 거쳐 정확히 2시간 30분 만에 우리를 옛 이름 사데 이곳 이름으로 사르트(Sart)에 내려놓았다.
오는 도중 지나친 역이 있는 곳도 택시 구경이 힘들던데 과연 사르트에는 택시가 있을까?
오늘은 택시로 유적을 돌 테니 걱정 말라고 아내에게 말을 해 두었는데.
그런데 사르트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역은 있으되 그냥 폼으로만 있었고 그냥 전원 풍경이었다.
내린 사람들은 모두 시골집 마당 같은 역 구내를 벗어 나 뿔뿔이 흩어졌다.
역 바로 옆의 찻집.
정말 정겨운 풍경인데 앞으로 어쩌나 싶었다.
이런 동네에서 어찌 다니나 싶었던.
역전 마을 풍경이다.
이게 전부이다.
물론 대로를 지나면 작은 동네가 또 나오기는 한다만.
시간이 1시가 넘어서 일단 밥을 먹으며 생각하기로 한다.
정 힘들면 가까운 곳이나 다녀 보고 돌아가기로 하고.
구글맵에 대단한 것이 이런 촌구석의 정보도 들어맞는다.
길가에 식당이 나왔는데 실제로 그 이름의 식당이 있었다.
일단 닭고기를 밀가루 전병으로 싼 듀륌으로 주문을 하고 바로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남자에게 버스를 어디서 타야 되는지를 물었는데.
이게 기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의 시작이었다.
일단 영어가 되었다.
그리고는 몇 대화 뒤에 자기 신분증을 보여 주는데 우리가 어디로 이동을 할 때 귀찮게 했던 잔다르마 즉 군인 경찰이었다.
내 이야기를 좀 들어 보더니 일단 걱정 말란다.
자기가 다 해 주겠으니 식사나 하시라고.
이런 일이 있으면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제까지도 어떤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때 마치 옆에서 기다리듯이 도움 천사가 나타나 나를 도와주곤 했던 일.
이러니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나온 듀륌은 밀가루 전병이 너무 두터워 일단 한 겹을 벗기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집 사진을 찍으니 그것을 보고 잔다르마 친구(나보고 친구라고 불렀다)는 이 집이 맛집이라고 유튜브 화면까지 보여 준다.
글쎄다.
이 동네 사람에게는 그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란다.
식사를 마치니 이런 메모가 쓰인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이곳에는 로마 유적이 두 군데가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왔는데 이 친구가 그것도 잘 알고 있던지(하긴 이곳 사람이니) 내가 먼 곳에 있는 유적에 데려다주고 다음에 다른 유적에 안내를 할 테니 사람들에게 이 종이를 보여 주면 어디서 이즈미르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알려 줄 거란다.
아 이 친구 배려에 정말 감동 먹었다.
식사 후 특수 제작된 듯한 이들 잔다르마 벤을 타고 유적지를 향했다.
입장료 받는 곳이 있었으나 이 잔다르마들은 그냥 패스.
우리 잔다르마야.
그리고 내린 곳이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
잔다르마 친구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냐고.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이런 택시를 대절한 것보다 더 대단한 호의를 만났다.
아내에게 택시 순례를 예고했는데 그보다 더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아르테미스 신전 터가 천하의 명당이었다.
이래서 일곱 교회 가운데 사데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들 했구나.
이곳은 복구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가 안 되었는지 입장료 받는 건물도 임시 가건물이어서 허름했지만 장소만은 최고였다.
뒤의 산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앞을 보면 앞의 산이 예쁘고 이런 곳이 있구나.
이 돌들로 퍼즐을 맞추듯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나무가 있는 작은 언덕의 모습도 참 예쁘다.
아니 다 예쁘다.
이곳도 돌들이 군기가 제대로 들은 모습으로 줄을 맞춰 놓여 있다.
뒤쪽의 산이 우리나라 산들의 모습이다.
톱니바퀴인가 싶어 처음에는 어인 나사인가 싶었다.
거대한 시계 속에 들어 있던.
그런데 이건 기둥의 한 부분이더라.
이런 부분을 쌓아 올려 기둥을 만들었다.
여기는 앞산.
앞산과 뒷산의 모양이 비슷하기도 하고 많이 닮았는데 둘 다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가 최고 명당일세.
이런 표현이 그대로 나온다.
이미 올라간 기둥 그리고 올라갈 기둥.
멀리서 봐도 엄청난데,
가까이서 보면 더 엄청나다.
정말 기둥 두께가 어마어마하다.
정말 진부한 표현으로 그림 같은 경치이다.
이곳에 살던 아르테미스 여신은 정말 좋았겠다.
이 동네 사람들은 통이 컸는지 기둥도 굵고 벽의 두께도 엄청나다.
아무 곳이나 막 찍어도 다 그림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온 목표인 사데 교회 터.
신전 규모에 비해 작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러나 예배당이 지어질 때는 이 아르테미스 신전은 이미 무너져 내려 비교는 되지 않았을 터.
예배당도 한창 복구 중이었다.
함께 복구가 되니 이렇게 크기에서 비교가 된다.
작고 아담한 사데 교회.
규모를 보니 신자 수가 얼마 되지는 않았나 보다.
그러면 어떠랴.
아무리 보아도 멋진 산.
이런 곳에 사데 교회가 있었단 말이지.
교회 뒤 공간.
여기는 무슨 용도이었을까?
아무런 설명이 없어 궁금하다만 신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이용했으려고.
오늘은 우리 아내도 사데 교회 신자이다.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그래 계시록에 사데 교회에 뭐라고 나오든 후대 이곳 신자들의 믿음은 이 기둥만큼이나 크고 두터웠을 거야.
이런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한 교회가 시원찮은 신자들을 품고 있을 리가.
아내가 비교 대상이 되어 준단다.
몇 아름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이런 기둥은 여러 유적을 다녀 보았어도 처음인 듯싶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둥을 만들고 세우고 그랬을까?
시간은 넉넉하게 받았지만 기다리는 잔다르마 친구들이 미안해 걸음을 되돌린다.
이 아름다운 곳 다시 올 수 있을까?
아쉽고 아쉽다.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려 찬송도 부르고 경치도 보고 또또또.
마지막으로 전체 유적 풍경을 담았다.
사데 교회 신자들에게 자리를 내 준 아르테미스도 고맙고 신앙의 전통을 이어간 사데 교회 교인들도 고맙고.
언제 다시 만납시다.
다시 여기에 올 때에는 이 돌들이 제자리를 찾아가 있을까?
아쉬움이 가득했던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 아니 사데 교회 유적을 뒤로했다.
물론 잔다르마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려 주었고 다음 장소까지 데려다준다.
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만 가야 한다면 단연코 이 사데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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