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싸고 맛있는 돈두르마를 먹고 성으로 향했다.
도중에 학생 무리들의 열렬한 환영이 있었는데 처음 인사가 곤니치와.
곤니치와가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했으나 그런 것에 상관없는 짧은 영어 문장 폭격.
웨어 유 프롬? 코리아
워스 유어 네임?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
한 한생은 자기는 라트비아 출신이란다.
내 평생 실제로 라트비아 사람을 만나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성 입구는 녹슨 대포들이 바다를 향해 놓여 있었다.
이 성이 제정 러시아에 의해 약탈되기도 하고 포격을 받기도 했으니 실제로 사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입장료는 40리라.
성과 박물관이 세트로 있는데 생각보다 값이 싸니 구경거리도 고만고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시작되는 경사로.
고생 좀 하나 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상태는 아주 좋은 편이다.
비잔티움 시절에 세워진 것을 바예지드 술탄이 보강 공사를 했다 하는데 그 뒤에도 손을 많이 본 듯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벽에 많이 눈에 익은 아줌마가 계셨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여성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
이 아줌마 시절에 체쉬메 해전이 있었고 카프카스와 크림반도를 꿀꺽하시면서 러시아가 나름 목에 힘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
대포와 대포알.
대포알은 그냥 돌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이때만 해도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기 전이라서 전쟁이라고 해도 애교가 있다.
물론 모든 전쟁은 비참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앞에 러시아 함대가 나타났다.
좌로 15도 위로 45도.
준비된 사수는 쏴라.
배 있는 곳까지 안 나가는데요.
그래도 그냥 쏴라.
이런 성들은 나중에 폭탄이 발명되면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아니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해야 되겠군.
함정 닻도 있고 대포도 있고.
그런데 너네들은 어디를 겨누고 있어?
중간중간 공간에는 박물관이 있어 구경을 할 수가 있었는데.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체쉬메 해전에 대한 것 그리고 순수한 골동품.
여기는 해전에 대해 정리해 놓은 곳이다.
이 성은 체쉬메 앞바다에서 벌어진 제정 러시아와의 전투 현장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즈미르 역사와 예술 박물관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도 많이 있었고.
제정 러시아와 오스만 제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 중 하나인 체쉬메 해전은 대단한 결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흑해 제해권을 공유하게 되었고 카프카스를 넘겨받았으며 얼마 뒤 크림반도도 영유하게 되었다.
이때 소유하게 되는 크림반도는 나중 소련 시절 후르시초프가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주면서 지금 골 아프게 된 곳이다.
사실 러시아 쪽에서 보면 크림반도는 핏값으로 얻은 곳이니 그냥 우크라이나에게 주기는 너무 아까운 땅.
체쉬메 해전 뒤 체쉬메 성은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약탈이 이루어졌고 그 뒤에는 몇 년간 심심하면 몰려와서 성과 주변을 폭격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제정 러시아가 나름 깡패로 등장하는 세월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 전쟁의 결과로 해군력과 기술력의 부족을 깨달은 오스만 제국은 나름 힘쓴다고 해군사관학교와 이스탄불 기술 대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나섰다 한다.
그런데 얼마 뒤 폭망 하는 걸 보면 결과는 신통하지 못했던 듯.
나라든 어느 조직이든 아무리 인재가 많아도 대가리가 썩으면 별 볼 일이 없는 법이다.
이즈미르 역사 예술 박물관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분들이다.
체쉬메 해전을 책임졌던 장군들.
비록 패전했지만 사람들은 괜찮았나 보다.
우리나라 어느 동네 이름을 딴 초계함을 한 방에 보냈다는 일 번 어뢰 비슷한 것인가 했더니 포도주를 나르던 병이란다.
그러니까 포도주를 이 병에 넣어 배에 싣고 남 나라로 보냈는데 도중에 가라앉은 배도 있어 바다 밑에서 건져 낸 것들이다.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 유물과 비슷한 처지인데 그것과는 레벨이 다르긴 하다.
무려 기원전 3000 - 1200년 경의 토기란다.
아니 천 년의 세월도 엄청난데 1800년 정도를 한꺼번에 묶어 버리는 단순함.
100년을 산다 해도 180번을 살았다 죽었다 하는 세월이건만.
이런 것 보면 사람 수명이 사실 별 거 아니다.
여러 로마 황제 때 사용된 돈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나오는 황제 이름들이 낯익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있고 코모두스도 있고.
붉은 사암으로 된 상도 있었네.
이런 홍사암 석상은 보기 어려운데.
다 어디 가고 왼발만 남았다.
진짜 사람의 발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만들어졌다.
제단이란다.
로마인들은 신들에게 뭔가를 바치기 좋아했으니.
이건 비교적 최근인 18세기에 만들어진 마리아와 아기 예수 조각품.
여기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였던 그리스계 사람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니 이런 조각들이 많았을 것이다.
로마 시대 과일 그릇.
드라마 로마에 보면 시저도 집에 들어올 때 이런 것에서 사과 같을 것을 집어 먹곤 하던데 그런 용도였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귀족이나 써먹지 서민들이 사용할 일이 없었을 것.
박물관은 사실 큰 구경거리는 없다.
이런 성의 풍경이나.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지.
아무리 보아도 바다 색깔 참 곱다.
저런 산봉우리에도 올라 가면 좋으련만 이런 햇살에 저길 간다는 건 미친 짓이다.
언젠지는 몰라도 다음에 가 보는 걸로.
체쉬메 참 예쁜 마을이다.
역시 성 구경에서 제일은 바다 풍경이다.
정원에는 비잔티움 제국 시절의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는 모양이다.
발굴 조사할 때 발견된 것들 인지도.
생긴 것이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것도 있고 아주 골동품도 있는데 시차는 천년이 넘을 듯.
...
벽에 박힌 돌들도 예술품 같다.
여기서 아내가 사장 한 장 찍어 달랜다.
성의 특성상 좁은 길과 꺾인 길들이 많다.
자 이제 구경 다 했으니 밥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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