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여행 2022

[세케슈페헤르바르] 거 이름 한번 어렵다(상)

정안군 2022. 6. 28. 00:41

주일날 코마롬을 가려고 기차를 탔을 때 옆에 대기하고 있던 허름한 기차에 사람들이 가득 찬 것을 보고 도대체 어디 가는 것인데 저렇게 사람이 많을꼬 궁금해졌다.

그래서 행선지를 찾아보니 세케슈페헤르바르(Szekesfehervar 이거 다 쓸려면 명 짧은 사람 숨 넘어가니 내 마음대로 줄여서 세케로 쓰겠음)

1시간 걸리고 제법 볼거리도 있고 동네도 예쁘다고 해서 다음 행선지로 찍었다.

다만 좀 걸리는 것은 기차가 구닥다리라서 에어컨도 없으니 재수 없으면 좀 고생하겠다는 점.

하지만 헝가리 기차 시스템은 복불복이라 하니 꼭 그런 기차가 걸릴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한다.

 

아무튼 그다음 날 세케 행 기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했다.

다행히 기차는 상태가 좋았고 승객들도 꽤 많았지만 서서 갈 정도는 아니었다.

 

수확을 기다리는 밀밭.

그리고 막 피기 시작한 해바라기 밭.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해바라기 영화의 촬영을 헝가리에서 했다고.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명장면이 나올만하겠다.

넓은 평야지대에 해바라기가 꽃이 피어 노란 대지를 만들어 놓은 장면이.

중간에 Velence라는 호수가 있었는데 벌러톤 보다는 작지만 제법 컸고 그 근처에서 소풍 온 듯한 학생들과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호수 주변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잔차를 타고 있어서 꽤 부러웠다.

 

정확하게 1시간 걸려 세케에 도착을 했는데 어라 역이 상당히 현대화되어 있네.

엘리베이터도 있고 역 구내도 산뜻하고.

아마도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듯했다.

역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해도 덩치가 워낙 커서 담을 수가 없었다.

오늘같이 햇살이 무서운 날에 구시가지로 이동하려면 버스가 나을 듯해서 구글에서 얻은 대로 따라 했다.

정말 구글맵의 위력에 새삼 무섭기까지 하다.

35번이나 36번을 타면 버스 터미널 근처로 이동을 하고 거기서 내려 잠시 걸으면 볼거리가 밀집되어 있는 중심가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버스표는 기사에게 직접 돈을 내면 표도 주고 펀치에 찍어서 돌려준다.

시골이라서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모든 것에 여유가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중심가로 이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도를 보고 가도 되지만 먼저 내린 관광객이 가는 대로 따라서 가면 되니.

사실 중심가는 손바닥만 해서 헤매고 다닐 정도의 크기도 아니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동네가 전 날 간 슬로바키아 코마르노와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하기는 유럽의 소도시가 다 이런 모습일 게다.

중심 광장이 있고 그 주변에 교회가 있고 또 카페나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중심가로 바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서 외곽을 잠시 돌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중세 폐허 정원(Medieval Ruin Garden)

이곳은 역대 헝가리 왕과 왕비가 대관식을 올리고 죽으면 매장이 되는 유서 깊은 교회가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 폐허가 되었다.

무덤도 거의 훼손이 되어 이슈트반 1세와 벨러 3세의 유해만 겨우 수습이 되었다고 한다.

수습되지 못한 왕과 왕비를 추모하는 십자가가 있다. 

이상 구글맵에서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가 필요했으나 밖에서 다 보여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깨진 기둥과 벽 흔적이 과거를 전하고 있다.

 

썩 예쁘지는 않지만 이런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였단다.

이기면 다 자기네 땅이 되는데 왜 그렇게 다 부수었을까 싶지만 전쟁에 나와 이긴 병사들의 특권이 약탈이었다.

점잖게 말하게 재산 접수.

교회는 귀중한 물건들이 많았고 그리고 왕들의 무덤이야 그들이 만만하게 부수고 파야 할 대상이었던 것.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헝가리 이슈트반이 왕국을 세우고 나라 체계를 세우기 전에 헝가리를 구성했던 마자르 집단은 빈집 털기나 노상강도가 특기였단다.

주변 마을이나 주변 나라를 터는 것이 이들의 하는 일이었는데 오토 황제에게 걸려 박살이 나고는 고분고분해지고 그렇게 살다가는 씨도 못 건지겠다 싶었던지 황제에게 왕으로 인정도 받고 기독교를 받아들여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다고.

그러다가 오스만에게 걸려 다시 나라가 없어지는 수모를 당한다.

 

폐허라고 해도 로마 유적지의 폐허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검소(?)하다.

별로 남은 게 없다.

 

이 십자가 무덤이 미쳐 수습하지 못한 왕과 왕비를 위한 것인 듯.

 

교회인지 박물관인지 모르겠다.

유적지 옆에 세워진 건물인데 입장료를 받았다.

하지만 들어가는 사람은 보지 못해서 나도 그만두었다.

 

종탑 흔적일까?

단체로 온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나야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으니.

 

폐허 정원 옆에 있는 카페 겸 기념품 숍.

둘러보고 나온 아내는 별 거 없단다.

이런 건 왜놈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그 친구들은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고 사고 싶게 만들고 먹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광장이다.

1938년에 만들었다는 조형물이 눈에 띈다.

이 시기는 헝가리가 1차 세계대전에서 지고 주변 국가에게 땅을 왕창 빼앗긴 다음 독일과 친해지면서 원기도 회복하고 빼앗겼던 주변 땅도 다시 찾을 때였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편을 먹고 싸우다 지금의 땅으로 쪼그라들었다.

 

햇살이 무척 따가워 길을 걷기가 힘든 날이어서 그늘을 살살 골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습도는 낮아 그늘에만 있으면 바람도 있고 시원해서 견딜만했다.

 

사자인가 뭔가 모르겠다.

대리석이 아니고 석회석이라서 색이 투박하다.

이 지역은 석회석 산지라서 모든 석재는 석회석이다.

 

볼거리가 몰려 있는 중심 거리.

카페에서 다리 쉼을 하고 싶어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앉아 있기가 힘들어 그냥 그늘을 따라 걸었다.

에어컨이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찾기 힘들다.

 

예쁜 교회가 보이고 그 옆에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을 못 찾아 좀 헤맸는데 이 동네 건물의 특징이 입구가 상당히 작다는 점이다.

 

길을 따라 걷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 동네의 명물이라는 꽃시계.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유럽답게 시계는 정확했다.

제대로 맞는 시계를 본 적이 없는 투르키에.

그 동네와 여기는 많이 차이가 있다.

길거리 신호쯤은 그냥 참고 사항으로 알고 다니는 투르키에와 그래도 신호를 제대로 지키는 헝가리.

유럽도 남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자유분방하고 북으로 가면 전형적인 유럽인들의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사실 정확한 시간을 따지는 민족은 앵글로 색슨 같은 북방 유러피언인데 그들이 세계 문명을 이끌면서 표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