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를 여행하는 적기는 지금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햇살만 피할 수 있으면 그 말이 맞을 듯하다.
하늘도 예쁘고 동네도 예뻐서 정말 그런데 오늘은 좀 사정이 달랐다.
여기 온 이래로 최고로 더운 날이었으니.
그래도 언제 다시 오겠나 싶어 구경할 것은 제대로 챙기려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실 여기는 성도 있지만 그곳은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가까우면 몰라도 버스를 타고 갈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 외 박물관을 빼고는 크게 볼거리는 없다.
그저 고즈넉한 거리와 참한 건물들 사이를 걷는 것이 여기 온 목적일 텐데 날이 이렇게 뜨거워서야 원.
그런데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생긴 것이 박물관 같아 들어가 물어보니 여기는 미술관이란다.
그것도 현대 미술관.
건물 모습을 보고 박물관인가 했더니 여기는 짐나지움 즉 고등학교.
그런데 왜 그렇게 예쁜 것이여?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친절하게 잘 알려 주셨다.
여기가 아니고 저 반대편이여.
이 말을 하시려고 저리고 가서 왼쪽으로 간 다음 다시 오른쪽으로 가면...
아 이 건물 반대편이요?
맞아. ㅎ
이 건물이 박물관.
바로 전에 지나간 곳인데 그때는 미쳐 알지 못했다.
안내판도 작고 입구도 작고.
건물 덩치는 큰데 왜 입구는 이렇게 작게 만드는 걸까?
아무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에어컨 바람이 반겨준다.
좋은 곳이네.
입장료는 1000 포린트.
대충 4000원이라 하고 에어컨 바람 쐬는 값으로도 괜찮다 싶어 구경해 보기로 결정.
해설은 영어로 되는데 1000 포린트.
공부하기 싫어서 노.
그다음 사진 찍을 수 있나 물어보니 500 포린트 내면 된다고.
치사해서 이것도 노.
헝가리 역사는 이쉬트반 왕으로 시작되니 그때부터 전시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거의 털리고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내용이 상당히 빈약했다.
털린 것도 있을 테지만 나라가 크게 부유한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는데 시작한 왕이라서 이곳만 찍었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 조선 왕들이 태정태세문단세 하는 식으로 왕들이 계속 나온다.
대개 성경 상의 인물을 딴.
그중에서 제일이 이쉬트반 즉 스테판인가 보다.
이 황금 십자가가 제일 화려하고 예뻤다.
이슬람은 모든 상징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원을 털려고 해도 털 것이 없을 것인데 교회는 그렇지 않아서 좋은 목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왕 시리즈가 끝나면 청동기 시절의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이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빈약하다.
유목민들이 살던 땅이니 크게 뭐가 있겠나 싶다.
이렇게 간단하게 박물관 구경을 마쳤다.
에어컨 바람이 세고 좋아 입장료는 아깝지 않았으니 다행.
하긴 저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 구경만 해도 그 가치는 하겠다.
아 또 왕관도 있었지.
그건 구글맵에서 확인해 보시라.
그것도 소박하다.
밥때가 지나서 어디선가 무엇을 먹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대형 몰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일단 거기는 고를 수가 있고 에어컨이 있어 시원할 테니.
목표를 그리로 잡고 뜨거운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중간에 만난 쌍둥이 칼 전문점.
언젠가 아내가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사 왔는데 그때 쌍둥이 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로도 우리나라 칼의 품질이 좋아질 때까지 계속 그 쌍둥이들을 써 왔는데.
그래서 우리 둥이들이 태어났는가?
길 모퉁이에 서 계신 분.
누구신가?
성인이신 듯한데.
헝가리는 전체적으로 문화재 보수 공사 중이다.
부다 지구도 페스트 지구도 그리고 이런 시골도.
여기 홀랑 벗고 말을 타시는 분은 또 누구신가?
길 옆에 옷을 파는 가게가 나오자 아내는 눈이 반짝하며 여기서 좀 기다리란다.
벤치가 없고 계단이 있어 거기 앉아서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 이런 교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여기 유럽은 교회를 지으면 이렇게 예쁘게 짓는데 우리나라도 숫자로는 유럽에 지지 않을 텐데 교회는 다 어째 그렇게 쌀 창고처럼 멋대가리 없게 지을까?
앉아 기다리는 동안 저 건물 어디선가에서 오페라 가수인 듯한 분이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고성에 닭살 돋을 정도였지만 아무튼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끝나자 우래와 같은 박수는 아니고 나만 쳤다.
500 포린트를 깎아 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나 빈정이 상해 빈손으로 온 아내가 이 동상을 만나자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메리 아줌마라고 하던데 메리가 아니고 커티 아줌마(Aunt Kati)란다.
땡볕에 고생이 많다고 물 한 모금 드시라고 하는 아내.
둘의 모습이 참 다정스럽고 자연스럽다.
급수대이다.
뺑 둘러 의자를 만들어 놓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청년이 수도를 틀고는 흘러나오는 물을 그냥 마시더라.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물은 사서 먹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 요즈음 보기 드문 구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급수대 주변에 의자를 만들어 놓은 이유를 뭘까?
이렇게 뜨거운 날에는 유적지 구경보다는 역시 대형 몰이 최고이다.
여기는 별다방까지 있네.
헝가리에 와서는 별다방은 끊었으니 그냥 패스하고 안으로 들어가 푸드 코트를 찾아본다.
몇 군데 있었으나 우리가 고른 식당은 중국 음식점.
여러 가지 볶음 음식 가운데 적당한 것을 골라 계산하고 먹는 곳이다.
중국 음식의 특징 상 그렇게 맛은 없지 않으니 먹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빼어난 맛은 아닌 그런 곳.
그냥 낯익은 음식이라서 쉽게 먹을 수가 있는 정도이다.
종업원은 중국계 같은데 그 전형적인 모습으로 네 가지가 좀 없이 멋대로 서빙하는 모습.
에어컨이 돌아가는 몰에서 그나마 밥이라고 먹고 보니 이제는 가야 할 시간.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그리고 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골이라 그런지 배차 시간이 꽤 길어 땡볕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역으로.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 볼 곳이 있어 아내는 먼저 역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는 이리로 왔다.
무슨 기념비일까나?
기념비가 아니라 위령비이고 묘비들이다.
대개는 한 명 당 하나의 묘비가 있는데 이곳은 한 묘비에 여러 명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들어왔던 소련 병사들의 묘지이다.
나이를 보니 10세 후반에서 40세까지 골고루 있었다.
처음 세워질 때와는 사정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지가 되는 모양이다.
사실 소련은 해체가 되었고 여기에 묻힌 사람들은 지금으로 하면 여러 나라 소속이 되니 귀환도 쉽지 않겠다.
자기 고향을 떠나 먼 이국 땅에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
전쟁이 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라고 영혼을 달래 본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이런 죽음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 이름도 어려운 세케슈페헤르바르.
다시 올 일이 없을 테고 그래 이제는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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