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2007 여행

1. 네팔가기

정안군 2007. 2. 5. 11:22

 

우리 나라 사람 가운데 네팔에 관심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7년 1월 8일 인천공항을 떠나 방콕에서 이틀을 머무르다가 1월 10일 방콕을 떠나 카투만두(이하 KTM)로 네팔에 입국하여 여기 저기 다니다가(정확히는 KTM과 포카라 근처) 1월 29일 좀 지겨웠던 네팔을 떠나 방콕으로 돌아옴으로써 네팔 여행을 끝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네팔에 있을 때는 힘이 들더라도 한 달만 지나면 다시 생각이 날거라고 말하지만 한 달이 아직 안 되어서 그런지 지금 네팔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궁금하시죠.    천천히 그 내용을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의 생각은 순전히 저만의 개인 생각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1월 10일 수요일

 

그동안 방콕에서 묵고 있던 곳은 카오산의 에라완 하우스인데 그 옆 식당에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라는 제목의 식사를 한다.

 

무슨 식사냐고라?

 

블랙퍼스트라고 아시는가?

 

당근 아침이지... --;;

 

웬 썰렁 모드.

 

이름은 거창하지만 토스트 몇 쪽, 쥬스 1잔 그리고 베이컨 몇 쪽과 달걀 후라이 하나가 다이다.

 

집사람 그리고 H선생님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작년 9월까지는 방콕 공항은 돈무앙이었고 9월 이후 새로 지은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 이름은 수완나품이다.

 

이용할 항공사는 이곳에 올 때와 같은 타이항공이다.   타이항공은 이곳의 태국의 주인공 항공사답게 공항 목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티켓팅을 기다리는데 앞에 있던 미국 할아버지 부부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뉴욕 출신인데 과거 미군으로 우리나라에도 근무한 적이 있다는 그는 양키답게 아주 유쾌한 사람이다.

 

자기가 한국에 근무할 때 한국은 너무 가난했었다고.     야구를 좋아하는 미국인답게 양키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쓰이와 이번에 입단한 이가와 선수도 잘 알고 있었다.  

 

 

입국 게이트에서 대기하는 데 역시 한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네팔에 입국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로얄 네팔을 이용하거나 대한항공 특별기 그리고 육로인 경우 인도를 경유에서 들어온다.

 

 

네팔 국영 항공사인 로얄 네팔은 지연 사고로 악명이 높아 우리는 방콕을 경유하는 타이항공을 선택했었다.

 

여기서 우리는 대단한 사람을 만난다.

 

 집사람과 박정헌씨 일행

 

바로 '박 정 헌' 이다; 

 

 

 

손가락 없는 알피니스트 박정헌 “7대륙 최고봉 무동력 등정”


 
[경향신문 2007-01-09]

 

 

 

 

 2005년 1월 박정헌(36)이 히말라야 촐라체(6640m) 하산길에서 손가락 여덟 개를 잃었을 때 산악계는 “국내 거벽 등반사가 10년 후퇴했다”고 탄식했다.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면서도 크레바스(빙하 속 깊은 균열)에 빠진 후배의 자일을 놓지 않았던 그의 생환 스토리는 가슴을 울리는 휴먼 드라마였다. 그러나 대가는 참혹했다. 양쪽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여덟 손가락이 관절 위에서 잘려나갔다. 자신의 이력서가 곧 한국 알파인 등반사였던 젊은 등반가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등반할 수 없게 됐다. 

 

 

2년이 지난 지금, 손가락 따위는 그를 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지난 2일 경남 진주에서 만난 박씨는 뭉툭하게 짧아진 검지와 중지 사이에 펜을 끼고 새 계획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7대륙 최고봉 1년 이내 등정. 단 걷기·패러글라이딩·스키·산악자전거·스피드패러글라이딩 등 무동력 수단을 사용해서다. 내년 하반기 출발이 목표다. 박씨는 “손이 좀 짧아졌더라도 일반 루트로 등정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며 “7대륙 최고봉 등정자가 200여명이나 되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오를 순 없지 않냐”고 했다. 

 

 

길이 없어야 비로소 갔다. 아무도 가지 않은 루트를 최소한의 장비와 인원으로 최대한 빨리 오르는 알파인 등반.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알피니스트였다. 한 사람을 정상에 올리기 위해 수십명이 동원되는 기존 등반방식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설악산 토왕빙폭 최연소 등정,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 K2 무산소 등정, 시샤팡마 남서벽 신루트 개척, 가셔브룸 등정 후 패러글라이딩 하산…. 그는 국내 산악계의 ‘괴물’이었다.

 

4차례 수술 끝에 손은 동전이나 바늘 줍기를 빼면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단 한가지, 암벽을 오를 순 없었다. 그것은 그의 ‘전부’였다. 강연장에선 ‘도전의식’을 강조했지만, 강단 밖으로 내려오면 그저 한 명의 장애인이었다. 자꾸만 술이 늘어갔다. 

 

지난해 5월 자전거에 몸을 싣고 실크로드로 떠났다. 열여덟살 때 처음 히말라야 초오유에 발을 디딘 뒤, 자연은 그의 깊은 안식처였다. 중국 톈진을 출발, 베이징, 시안, 카쉬쿠르간을 거쳐 4760m의 쿤제랍 패스를 넘을 때 마음이 섰다. 자전거로 6000㎞를 달려봤지만 이 정도는 ‘박정헌의 모험’이 아니었다. 평범한 루트로 6봉우리를 더 올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해볼까 하던 생각도 접었다. 7대륙 최고봉 무동력 일주. 아직까지 시도된 적 없다. 뭉툭한 손으로 앞이마를 짚으며 그가 말했다. “그게, 천성을 버리면 죽잖아요, 사람이.” 

 

 

그는 9일 네팔의 안나푸르나로 떠났다. 고산 패러글라이딩과 산악자전거 훈련을 위해서다. 올 가을엔 스키와 패러글라이딩을 접목시킨 스피드패러글라이딩을 배울 계획이다. 스키에 날개를 달고 시속 100㎞로 질주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 스위스나 뉴질랜드에서 훈련해야 한다. “인생의 궤도를 바꾼 거죠. 산밖에 모르던 놈이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 

 

 

20여년을 ‘산악인’으로 살아왔던 그는 자신을 ‘익스트리머’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아무도 써 보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 자신이 만든 말이다. 

 

 

“촐라체까지가 제1의 삶이었다면 이제 제2의 삶입니다. 과거는 그저 하나의 나침반일 뿐, 과거가 나를 새로운 산에 올려주지는 못해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고,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은 그대로의 크기로 남아있는 거죠.” 

 

 

촐라체 사고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씨는 “탈레이사가르 북벽에 매달려 있었을 거고, 그 다음엔 로체 남벽이고, 그러다 언젠간 죽었겠지”라며 피식 웃었다. 산악인이건 익스트리머건, 제1의 삶이건 제2의 삶이건 그의 본질은 하나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최소한의 장비와 인력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 뼛속 깊은 곳부터 알피니스트였다. 

 

 

그의 컴퓨터 옆엔 네팔 산악연맹에서 발행한 촐라체 북벽 등정 증명서가 붙어 있었다. 세계 첫 동계 등정이었다. 그의 등정을 증명해 줄 필름이 들어있는 배낭은 빙하의 후퇴속도에 따라 350년 뒤에나 발견될 것이다. 기자의 눈은 아직까지 촐라체 증명서를 더듬고 있는데, 흘낏 넘겨다 본 그는 올 가을에 배울 예정이라던 스피드패러글라이딩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네팔에 도착해서 묵을 숙소를 결정하지 않았던 우리들은 KTM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옆 자리에 있던 한국인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네팔은 몇 번이나 가보셨어요?" 이다.

 

"글쎄요.   너무 많이 가봐서 몇 번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 말의 주인공이 박정헌씨였다.  

 

박정헌씨에 대한 여러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집사람이 먼저 알아봤고 수줍은 웃음을 보인 박정헌씨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

 

 

이런!!!    더 아는 척했더라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을 뻔했다.

 

써 놓고 보니 표현이 좀 거시기하구먼.   다시

 

도사 앞에서 문자 쓸 뻔 했구먼... ㅎㅎ

 

 

어쨌든 우리는 KTM 여행 가이드로 대단한 사람을 두게 되었다. ^^

 

 

 

걱정말란다.   KTM에 도착하면 빌라 에베레스트에서 사람이 나오기로 했으니 그 친구들에게 숙소를 알아봐 준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비수기라서 숙소 구하는 것은 쉽지 않느냐 했더니 박정헌씨말로는 요즘은 비수기가 아니고 성수기란다.   한국사람들이 요즘 얼마나 네팔로 몰려가는지 아느냐고.

 

나중에 안 것인데 역시 박정헌씨는 순진했다.   산만 아는 예쁜 사람 ^^

 

겨울 시즌은 전체적으로는 비수기인데 한국사람들이 많이 들어가서 네팔 경제를 살리고 있는 중...ㅋㅋ

 

 

비행기를 탔더니 옆에는 날개가 버티고 있었다.   덕분에 이착륙 중에 날개짓에 대해 여러가지를 볼 수 있었다.

 

 방콕 외곽

 

 비행기 날개짓

 멀리 설산이 보이는 중 네팔 하강 도중의 날개짓

 

 

미얀마 양곤 언저리와 방글라데시를 거쳐 산의 나라 네팔에 이르는 길은 3시간 30분 정도.

 

기내식은 카레밥이다.   밥은 쌀벌레를 모아 쌂아놓은 분위기.

 

 

비행기 앞쪽은 유러피언이고 뒷쪽은 다른 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네팔리들인데 우리나라에서 산업 연수생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네팔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장까지는 걸어서 간다.   국제공항 중 걸어서 입국하기는 처음이다.

 

미얀마에서도 일제 중고 시내버스라지만 버스 서비스가 되었는데 미얀마보다 더한 수준이다.

 

 

 

입국 수속도 거의 수작업.

 

비자비는 30 달러.   가격은 대단하지만 여권에다가 종이 딱지 하나 붙여주면 끝이다.

 

 

어쨌든 네팔에 들어왔다.

 

 

짐을 찾는 곳에 내려오니 박정헌씨의 짐은 완전 이삿짐 수준이다.   패러글라이딩 장비와 MTB 장비라는데 타이항공에서 협찬을 해줘 추가 비용은 없단다.

 

 

공항에 나가니 삐끼들 그리고 어린 거지 왕자들이 설친다.

 

 

빌라 에베레스트에서 나온 젊은 매니저에게 숙소 부탁을 하여 호텔을 소개받는다.

 

기왕 소개 받는 김에 그 미니 버스로 숙소까지 가는데 길 옆은 가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인도 분위기가 난다.   이렇게 말하면 인도 사람들에게 욕먹으려나 ^^

 

 

인도는 가본 적이 없지만 인도하면 생각나는 그런 분위기가 길 옆에 있었다.

 

 

소개받은 호텔은 NEW SHINGI HOTEL인데 KTM에서 중급 호텔 정도란다.

 

집을 방에 넣고 슬슬 걸어서 여행객 밀집 지역인 타멜로 행한다. 

 

 호텔이 타멜 지도 밖에 있어서 처음에는 위치 파악이 안되었지만 왕궁이 보이니 대략 정리가 된다.

 

거리는 매연 그리고 혼잡의 극치이다.   사람들이 대충 차량을 피해가며 다녀야 하는 분위기.

 

 

횡단보도에서 현대차에 치일뻔한 상황도 벌어지고.   왠일이니 ???   네팔에서 현대차에게...

 

 

왕궁 앞 은행에 환전하러 들어갔는데 경비를 서던 아저씨들은 한국 사람과 똑 같았다.

 

한국 이미지가 상당한 듯.   한국 말 몇 마디를 알고 있었고.

 

 은행 경비 아저씨들과 함께(가운데 아저씨가 구릉족이다)

 

 

이들이 서툰 영어로 말해주는데 네팔은 다민족 국가인데 인도 아리안계가 많지만 몽골계 인종도 많은데 그 중 구릉족과 라마족은 우리와 모습이 똑같단다.

 

 

몽골리언의 특징인 낮은 코와 째진 눈을 서로 가리키면서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러피언이 한 사람 들어 온다.

 

"We same, He Different"    ㅎㅎ

 

Different한 유러피언은 우리들 얼굴을 바라보며

 

"Right, I Different"란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스웨덴.   확실히 우리랑 엄청 다른 인종.

 

 

다시 길거리에.

 

 

확실히 네팔은 노스 페이스의 나라

 

 

네팔은 North Face  짝퉁의 나라라더니 확실히 그랬다.   그래도 짝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품 가게가 있는데 혹시 세일중인가 해서 가보니

 

'NO 세일' 중

 

 노스 페이스 정품 매장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가 조사를 해본다.  

 

거리는 등산 용구점 일색이다.

 

그것도 노스 페이스로.

 

 

이 나라는 국가 브랜드로 노스 페이스를 지정했나 할 정도.

 

 

밥 먹고 볼 시간.

 

일단 우리가 일정을 짜는데 많은 도움을 준 소풍 부부가 여행기에서 강력히 추천했던 한국 사랑에 가서 삼겹살을 먹는다.

 

 

네팔리들이 하는 식당인데 너무 친절하고 너무 싸고 너무 맛이 있어서 계속 올 것만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드는 곳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비쌀 것 같아 여행자 거리 근처의 호텔을 알아보기로 한다.   일단 카투만두 게스트하우스에 가보고 Marsyangdi Hotel에 가서 요금 교섭을 해보니 트윈 22 달러 정도로 해준단다.

 

 

확실히 비수기라서 할인폭이 크다.

 

요즈음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이긴 하지만 전체 요금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은 아닌 것이다.

 

짱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부부 일행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텔로 돌아온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냥 얼마를 주던지 하루 네팔 수업료로 생각하기로 한다.

 

비용이 비싸면 내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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