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가을날입니다.
습도도 낮고, 모처럼 빨래하기 좋은 날이네요.
이번 주는 더 이상 비 소식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명절이 다가오기는 한데 채소값에 과일값이 폭등해서 걱정이 된다는 소식에 기분이 우울.
뭐 기분 좋은 소식 없나요?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오늘은 광복절이구나.
중국은 오늘이 승전일일 텐데, 여기는 그런 기미 없이 그냥 관광지 분위기일 뿐.
덥기 전에 漁村 트래킹을 해보자고 하니 그런다고 하시는 마나님.
漁村은 老寨山 너머로 강가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배를 타고 갔다 와도 되지만 어제 잠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벼운 등산이면 될 것 같아서.
카운터에 물어보니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고.
갔다가 정 힘이 들면, 올 때는 배로 와도 되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물 병 하나만 챙겨들고 가볍게 나서는데, 길가에 아주 자그마한 아침 시장이 섰다.
거기서 1원에 3개 주는 빵을 사서는, 나는 하나 집사람은 두 개 그렇게 나누어 먹고서 동네 안길로 들어선다.
모두들 일어났는지, 쥐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고 그냥 그렇고 그런.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산길에 접어들자, 집사람이 힘겨워 한다.
뭐~~~ 이 정도는 처갓집 올라가는 경사만도 못한데.
어쨌든 어제 고갯마루라고 생각했던 곳에 서서 조금 더 가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거기가 정상이 아니고, 앞에 또 올라가는 길이.
이런~~~
거의 포기 상태인 집사람을 설득해서 다시 한 번 오르는데 거기서 그만 길을 잘못 든다.
호스텔 지도에 의하면 갈림길이 나오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는데 그만 그 오른쪽 길을 놓치고 왼쪽 길로 간 것.
가다보니 웬 송아지들이 나오고 나뭇가지 때문에 진행하기도 어려운 희미한 길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잘못 든 것 같아 일단 뒤로.
큰 산에서 산행할 때 길을 잘못 들면 그 자리에서 정확한 길을 찾으려고 헤매다가는 정말 왕십리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뒤로 물러선다.
일단 뒤로 돌아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래야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거.
이번에도 맞았다.
조금 왔던 길로 가니 올 때 보지 못했던 갈림길이 있다.
그 쪽을 조금 나가보니 산 중턱을 가로질러 길이 있고 그 길이 저 너머 능선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길이다.
사람들이 덜 힘을 쓰려고 만든 길.
헤매던 동네가 골짜기 건너로 보인다.
오른쪽으로 횡단해서 V자로 파진 골로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더 가서 보니 멀리 아래로 강이 보인다.
제대로 찾았다.
이제부터야 그냥 길 따라 내려서기만 하면 되는데.
조금씩 앞의 경치가 열리며 구경거리가 생긴다.
대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동네로 들어선다.
이런 조금 나아 보이는 대문집도 보이고.
나무가 주력인지 나뭇단이 집집마다 많다.
興坪의 변두리에서처럼 이곳도 한라봉 닮은 커다란 귤나무가 많은데 익을 때 되면 보기가 좋겠다.
동네는 볼 것도 없고, 조그만 그냥 그렇고 그런 동네이다.
그런데 여기도 관광객들이 오는지 삐끼도 있고 노점상도 있더라는.
동네로 들어가다가 삐끼 아줌마를 만나서 1원 주고 옥상에 올라가 앞 집 구경을 하는데.
이 경치가 1원 짜리 경치다.
처마 장식이 멋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글쎄...
집안 풍경이 더 정겹더라는.
다시 걸어 돌아가기는 좀 힘이 들어 배로 興坪으로 돌아오려는데 집사람이 배가 고프다고 식당을 알려달라고 하니.
이 삐끼 아줌마는 우리를 데리고 한참을 걸어가서 왠 집으로 들어가는데 안에는 노인과 젊은이 두 명이 밥을 먹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니 어색하게 맞는다.
그야말로 먹던 상에 수저만 새로 올려놓는 거.
식당이 아니라 그 삐끼 아줌마 집이었다.
밥을 가져오고 있던 반찬과 그냥 먹으려고 하니 너무 심했던지 달걀 국을 만들어서 내어온다.
반찬 두 가지를 놓고 먹고 있었는데 하나는 돼지고기와 선지를 그냥 물에 넣고 삶은 거 하나와 유자를 채 썰어 볶은 것인데, 유자를 볶은 것은 집사람이 먹어 보더니 써서 못 먹겠다고 해서 돼지고기를 먹어보니 그냥 맹탕에 고기 맛만.
아침부터 맥주를 먹고 있다가 나에게도 한 잔을 주는데 이들은 반주 개념으로 맥주를 먹나보다.
그냥 몇 술을 먹고 나니 배를 타러 가자고 우리를 밖으로 모는데 얼마를 주면 되겠느냐 했더니 60원을 달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비싸다고 했더니 집사람이 형편이 어려운 것 같으니 도와주는 셈치고 그냥 주자고.
그래서 일단 20원을 먼저 주고, 가서 나머지를 주마 그랬더니 난리를 친다.
얼른 돈을 내놓으라고.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서 차근차근 그리고 종이에 써 가면서 설명을 해 줘도 무조건 돈 부터 내놓으란다.
이래서 중국 사람들이 싫다.
예의고 체면이고 돈 앞에서는 가리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20원은 밥값으로 치고 우리는 알아서 간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하니, 계속 따라오면서 뭐라 해대는데 일단 무시를 한다.
그냥 우리가 선착장에 가서 교섭을 하고 돌아 갈 생각으로.
선착장에 나가니 관광선이 들어오는데 여기에다 승객을 풀어놓고 얼마의 시간을 준 다음 되돌아간다.
해서 그 배의 승객 한 사람을 잡아서 사정을 말한 다음 우리와 함께 갈 수 있냐고 물어보니 가이드를 소개해 준다.
50원을 달라고 해서 비싸다고 하니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가버리더라는.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일이 우습게 된다.
좀 전의 삐끼 아줌마의 언니 같은 여자가 배가 들어와 우리가 그 승무원에게 말을 할라치면 와서 방해를 하더라는.
뭐 말은 안 통해도 표정을 보면 뭔가를 알 수가 있은 거.
그러다가 가이드로 따라온 중국 동포 아가씨에게 정확한 이유를 듣게 되는데.
이 동네 사람들이 항의를 하니 우리를 태울 수가 없다는.
왜냐하면 이들이 자기들의 구역에 들어온 우리를 데리고 나가면 규칙 위반이라서 동네에서 고발을 하면 자기가 처벌을 받게 된단다.
그냥 그 돈을 주고 나가라고 하고는 배만 가버렸다.
이때부터 우리도 오기가 생겨서 이 삐끼 자매를 골려 먹기로.
배만 들어오면 승객에게 다가가서 부탁을 하면 이 삐끼 언니는 흥분된 얼굴로 와서 난리를 치는데.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우리야 시간이 넘치는 사람이니 급할 것도 없고 정 안 되면 그냥 왔던 길을 도로 넘어가면 되는데 뭐 걱정할 것이 있어.
일 없이 부두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중산 선생에 대한 비석이 있지만 동네에 정이 떨어져 무슨 내용인지 알고 싶지도 않더라는.
이 아줌마가 우리를 데리고 갔던 삐끼의 언니인 듯한 여자다.
어떻게 아느냐고?
생긴게 붕어빵이다.
얼굴에 심술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것도 비슷하고..
우리가 도착한 배에 접근하면 쫓아 와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하니, 그냥 죽치고 않아 있다가 조금만 움직이면 그거 신경 쓰느냐 아줌마도 아무 것을 못 한다.
이거 재미있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는 척하다가, 동네 사람끼리 작당해서 외부인을 괴롭히는 것이 더러워서 마음씨 좋은 우리가 그냥 걸어 넘어가기로 한다.
그냥 가면 안 된다고 집사람은 그 삐끼 아줌마에게 가서 밥값은 10원이면 충분하니 10원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니 뭔가 상황이 바뀌었다...ㅎㅎ
하여튼 한국사람 지독하다고 소문나서, 다시는 바가지 씌우지 못하게 해놓기는 한 것 같은데, 그 대신 우리는 한 낮에 고개를 다시 넘어서 와야 했다는.
한 번 가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사실 별 것 아닌데 집사람이 운동 부족이라서 꽤 힘들어 했다.
올 때도 몇 번 길을 헛갈려 잘못 가기도 했다.
어쨌든 갈 때는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올 때는 왼쪽으로 만 신경 써서 걸으면 된다는.
50원 달라는 것을 일단 40원까지 내려간 뒤에 왔으니 40원 버느냐 다리품을 팔았다.
갈 때는 모녀 밖에 만나질 못했는데 올 때에는 호스텔에서 단체로 온 초등학생들과 외국인들이 트레킹에 나서서 외롭지는 않았다.
다시 넘어 오면서 보너스로 보는 경치.
힘은 들었지만 뭐 이렇게 남는 것도 있어야지.
산마루 밤나무가 심어져 있는 넓은 곳에 송아지와 어미 소가 있었는데 오늘 사진 찍은 것 중에서 볼 만한 것이 어미 소 사진이었다는.
다른 어미소는 관심이 없는데, 송아지는 호기심인지 우리쪽으로 와서는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늘이 퍽이나 좋은 공터다.
사실 漁村은 볼거리가 아무 것도 없는 마을이다.
가 봐야 돈 독이 올라서 호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악다구니 같은 사람들만 넘쳐난다.
손중산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나 어쨌다나 하는 것이 유일한 이야기 거리.
괜히 거기 가지 마시라.
하기는 중국 관광지에서 돈에 환장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그래도 이 동네 아줌마는 정도가 훨씬 심했다는 거.
이게 무슨 열매인지 동네에 널렸더라는.
하나 따서 먹어보니 시고 별 맛도 없다.
롱안은 아닌 것 같고.
날이 더워 완전히 땀으로 목욕을 했다.
산행하면서 이렇게 땀을 쏟기도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일단 12시가 되었으니 밥을 먹고 들어가기로.
어제 점심 때 먹었던 楊洲 볶음밥과 紫菜蛋花를 시켜 먹는데 집사람은 별로 인가보다.
나는 맛이 있더구만.
오후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보수의 시간.
오전에 별 볼 일 없는 곳에 힘썼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추억이 될 것이니.
한참을 쉬다가 老寨山 아래 정자에 가보기도 하고 호스텔 옥상에 올라가서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한다.
아마 이곳에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중국이라는 곳은 왠지 정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웬만한 관광지는 자체 중국인 관광객으로 미어터져 우리 같은 외국인 여행자는 그저 개밥에 도토리 정도니.
가면 대접받는 나라를 두고 왜 이런 곳에 와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스위스에서 온 한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데 무려 15개월 째 아시아를 여행 중이라는.
중국에 벌써 5개월째인데 꽤 이 동네가 마음에 드나 보다.
저녁 식사는 어제와 같이 우렁이 요리와 달걀부침.
집사람은 이 우렁이 요리를 3일 저녁 먹는데 식당 주인이 퍽이나 놀라는 눈치이다.
아니~~~ 얼마나 좋아하면 3일 저녁을 이것만 먹을까 하는.
그러나 저러나 이것도 마지막이다.
내일 桂林으로 이동해서 아카펠라를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고, 그 다음 날 버스로 廣州에 가면 대충 중국 여행은 마무리진다.
그래도 이번 중국에 와서는 중국을 위해 많이 한 것 같다.
전보다는 좀 더 비싼 호텔에서 묵었고, 좀 더 나은 식당에서 밥을 먹어서 돈을 더 썼으니까.
그리고 중국 모기 아니랄까봐 크기도 엄청나게 크고 마치 삼국지의 장비를 닮은 모기에게도 식사를 여러 번 제공하기까지 했으니.
이제 여행기는 다시 중국 광동 2010 여행으로 이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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