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충주 이야기

나는 오늘 길을 따라 걷는다.

정안군 2011. 1. 4. 11:03

 

 

모처럼 걸어보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충주시 경계돌기 1 코스를 따라 작은 새재부터 기룡목재까지 가볼까?

 

그러면 삼관문행 9시 5분차를 타면 된다.

 

국민은행 앞에서 15분경부터 기다리면 되니 시간상 괜찮을 것 같다.

 

일단 그 코스를 따라 걷기로 마음을 먹는다.

 

날이 좀 춥기는 하지만 가스버너와 코펠을 챙긴다.

 

라면과 밥을 섞어 끓여 개밥 스타일로 점심은 해결하자는 생각에.

 

장모님과 집사람은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걱정이 되는지 조심하라고 하는데, 산이 험하지 않으니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어 다칠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겨울 산이니 조심은 해야 되겠지?

 

집을 나선다.

 

여러 가지를 집어넣은 배낭의 무게가 만만치가 않아 오랜만에 부담을 준 어깨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산행을 위해 행동복을 입고 나왔더니 좀 춥다.

 

오리털 파커를 배낭 속에 넣어 두었는데 그것을 입고 나오는 것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은행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니 생각보다 조금 이른 15분에 온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 옆 산을 보니 양지쪽은 말랐지만 응지 쪽은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순간 코스를 바꾸기로 하고 살미면사무소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여기서 살미 초등학교 쪽으로 가서 재오개를 거쳐서 고개를 넘어 집으로 갈 생각으로.

 

코스가 결정되었으니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는다.

 

날이 추워 얼굴이 시리다.

 

두건을 꺼내어서 얼굴을 가리고 길을 간다.

 

겨울지내기 모드로 접어든 길가의 집들은 인적도 드물다.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고.

 

살미 남한강 김치공장을 지난다.

 

건물 안에서는 열심히 작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신매고개에 가까이 가면서 경사는 조금씩 심해지는데 응달이라서 길은 눈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신매고개를 넘는다.

 

신매고개는 계명지맥을 넘는 고개.

 

자전거 여행을 할 때 내려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넘던 가파른 고개인데 걸어서 넘으니 그렇게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기는 자전거로는 반대쪽에서 넘어 왔으니 감각이 다를 수도 있겠다.

 

고개를 넘으니 몇 집이 있고 신매마을 이씨들 기념관이 있는 공터가 나오는데, 개들만 지나가는 나그네를 경계하느냐 짖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기는 오는 도중과 마찬가지이다.

 

신매마을에서는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단양 가는 길과 만나고 충주 방면은 왼쪽이다.

 

전부 자전거로 누볐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은 언젠가 자전거로 넘다가 도중 펑크가 나서 자전거를 끌고 지나갔던 길이기도 하다.

 

걷는 재미가 조금씩 느껴진다.

 

충주호가 오른쪽으로 보이면서 을씨년스럽던 겨울 경치에 조금 변화가 생긴다.

 

작은 고개를 넘는데 고개 정상에 정자가 세워져있다.

 

전에 다닐 때에는 못 보던 것인데.

 

올라가 보니 망향정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아마 이 아래 마을이 수몰되면서 떠났던 이들의 사연이 담겨있는 정자인가보다.

 

벌써 수몰된 지 30년이 되었으니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듯하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을 이렇게 정자를 세움으로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재오개 마을에 도착한다.

 

영화 촬영장의 모습은 배 한척이 남아 있는 것으로 대신했고, 생태마을이라는 동네 어귀의 입간판은 겨울이라서인지 왠지 낯설다.

 

재오개하니마을이라는 이름인데 꿀사과축제가 열린단다.

 

진달래피고 사과꽃이 피는 봄에는 참 예쁜 모습이겠다.

 

여기까지 포장도로이고 시내버스도 여기가 종점인 듯하다.

 

역시 비포장도로는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이다.

 

차가 다니질 않아 걷기에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다.

 

상재오개 마을을 지나지만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반가운 강아지만 꼬리치며 다가올 뿐.

경사가 시작된다.

 

눈의 세계이다.

 

산도 길도.

 

재오개재를 넘지 않고 남산 임도 쪽으로 방향을 튼다.

 

지도상으로 성재라 이름이 붙은 곳인데 처음은 경사가 심하다.

 

자전거로 넘을 때에도 내려서 끌바를 했던 곳이다.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당집이 길 아래로 보인다.

 

재오개 사람들이 이 고개를 통해 충주 쪽으로 나들이할 때 평안을 빌던 서낭당 기능을 하던 곳이 아닌가 싶은데.

 

좀 오르면 임도 삼거리.

 

나는 왼쪽이다.

 

여기는 계명지맥이 지나가는 마루인데 오른쪽은 마즈막 고개로 이어진다.

 

자전거로는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걸어서는 처음인 곳.

 

어느덧 걸은 지 세 시간이 넘었다.

 

이제 시장기가 돌아 밥을 해먹으려고 장소 물색을 하며 내려가는데 얼음길이라서 조심스럽다.

 

좋은 장소 발견.

 

누군가 밭을 개간하려고 만든 공간이 있었다.

 

탁자가 있고 의자도 있어서 쉬어가기 그만인 곳.

 

날이 차서 가스버너가 제대로 작동이 될지 걱정이 되었지만 나름 화력을 유지해 주었다.

 

라면 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조금 더 내려오니 이제 임도는 끝.

 

포장도로를 따라 가면 되는데 다리가 아파온다.

 

이제 걷는 기쁨은 없어졌고 극기 훈련으로 바뀌나보다.

 

절 창살 문양이 예쁘다고 소문난 석종사를 가보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걷는데 왼쪽 다리 햄스트링이 고장인가 보다.

 

역시 날이 차니 쉴만한 곳도 없고 계속 걸으니 다리에 무리가 오는 가 싶다.

 

하여튼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 본지도 오래전이다.

 

충주중학교와 용산아파트 사이 길을 지나서 용산동 길을 따라서 돌아온다.

 

옛날 신혼시절 살던 집도 오랜만에 구경을 하고.

 

충주우체국 근처를 지날 때에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집에 오니 5시간 정도 걸렸다.

 

왜 걸었나?

 

뭘 얻었어?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