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화요일
오늘은 엄청난 거리를 건너뛰었습니다.
석거에서 감자(甘孜 Garze)로 온 것인데요.
감자(甘孜)는 중국어로 간쯔라고 발음이 되는 모양인데, 티벳어로는 ‘가르체’라는군요.
석거(石渠)는 중국어로 스취, 티벳어로는 ‘쎄르쉬’고요.
우리나라처럼 모든 지명이 창씨 개명된 티벳.
글쎄 뭐라 할 말이 없네요.
한밭이 大田으로, 달구벌이 大邱로 바뀐, 아니 바꾼 이 나라에서 티벳의 도시 이름이 어떻다고 하기는 좀 그렇죠?
그래도 뭔가가 허전하긴 합니다.
아무튼 감자는 사천성의 감자장족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에서 덕격이나 석거 그리고 백옥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현급의 도시랍니다.
자치주의 이름이 감자라서 이 도시가 주도인 것 같지만 주도는 강정(康定)이라고 앞으로 들리게 되지요.
이 감자가 있는 감자장족자치주는 아패장족강족자치주(阿壩藏族羌族自治州)와 더불어 사천성의 장족 즉 티벳 사람들의 주 거주지이기도 합니다.
두 자치주 모두 경치가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동네인데요, 구채구나 송판 등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아패자치주보다도 손을 덜 탄 곳이 이 감자자치주지요.
이 두 주는 크게 동티벳으로 묶을 수가 있는데, 전에는 모두 고지대라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전통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지만 나날이 한족의 계획(?)대로 한족화 되어가는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그마나 라사 쪽에 비하면 덜 한족화 되었다고 하는 곳인데, 그러나 그것도 시간문제인 듯 보였습니다.
이쪽에 깊은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서 더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티벳 사람들은 한족과는 다른 정서가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와 같은 혈육인 북방계 몽골리언이라서 그런 감정을 더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하고 지난밤은 기침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요.
한 방에 다른 사람이 있어 기침하기도 조심스러우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여기도 해발 4,200m나 되는 만만치 낳은 고지대라서 몸도 무거운데다 기침까지 심하게 났으니.
그래도 아침은 찾아 왔어요.
아무래도 자전거 여행은 이것으로 끝내야 될 것 같아서 탱이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밤새 기침으로 고생하는 것을 아는지라 탱이님도 별 말 없이 그냥 접자고 하네요.
그러면 이제부터 자전거는 운송 수단이 아닌 그냥 화물이 됩니다.
그렇다면 화물로 부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고 합니다.
나는 성도에서 그냥 비행기로 청도까지 날라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라서 여기서 화물로 부치면 계획하고 조금 어긋하기는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해서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어 둡니다.
사천성 대표 요리인 회과육(回鍋肉)과 밥(진짜 밥입니다)으로 식사를 하는데 아침 식사로 밥이 있는 것을 보니 정말 사천성에 넘어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더군요.
먹고 나서는 화물을 취급하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 갑니다.
정말 어렵게 찾기는 찾았습니다만 화물은 사천성 성도(省都)인 성도(成都)까지 밖에 안 된다는군요.
청도까지라면 타당한 이유가 되겠지만 성도까지는 별 의미가 없었어요.
해서 별 수 없이 자전거는 그냥 화물이 되어 우리를 따라 다니게 되었네요.
날은 흐리고 가끔씩 빗방울도 떨어지기도 하는 흐린 날입니다.
아무래도 차도 이동하는 것이 잘한 선택으로 되는 듯싶네요.
화물 취급소에는 소형 승합차가 있었는데 이 승합차가 감자를 거쳐 강정(康定)까지 간다고 차 앞 유리에 써 있군요.
공공버스는 보통 새벽에 떠나고는 차편이 없으니 이런 소형 승합차가 그런 공백을 메우나 봅니다.
나중에 보니 그렇더군요.
여기서 사장은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급 친절 모드입니다.
물론 차비는 깎아주질 않고 나중 생각하니 조금 비싸게 준 느낌이 들었지만요.
여기서 우리 돈 1,000원짜리를 중국 10원과 교환을 해달라고 해서 몇 장 안 남은 지폐를 꺼내 바꿔주니 자기 집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선물로 주더군요.
우리나라 1,000원짜리 좋네요.
탱이님은 자전거 앞바퀴를 사장 아들에게 굴렁쇠 대용으로 선물로 주었더군요.
나는 깜짝 놀랐는데 탱이님은 상태가 안 좋은 바퀴는 별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는지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이 주었나 보던데 좀 지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좀 후회가 들기는 했을 겁니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이동하려면 바퀴가 없는 자전거는 정말 이동하기가 고역이거든요.
우리와 자전거를 태운 승합차는 우리 호텔 앞을 지나 삼거리에서 손님을 채웁니다.
감자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금방 차네요.
바로 출발을 하는데 날이 많이 흐려 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역시 돕는 손이 있나 봅니다.
이렇게 차로 이동하려고 하면 비가 내리니.
감자까지는 참 먼 길이었습니다.
마니간과(馬尼干戈)라는 티벳 마을을 지나서 가는데 마니간과는 덕격(德格) 넘어가는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사실 탱이님은 이 마니간과에서 엄청난 고개인 작아산(雀兒山)을 자전거로 넘어 덕격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5,000m가 넘는 고개를 자전거를 끌고 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서 그냥 차로 건너 뛰어 넘을 테니 덕격에서 만나자고 의견을 제시합니다만 탱이님은 그냥 지나가자고 하더군요.
해서 그냥 마니간과에서 내리지 않고 감자까지 한 방에 가기로 한 것이지요.
석거에서 감자는 대충 307km입니다.
별로 성능도 안 좋은 승합차를 타고 가끔 비포장 아니면 짝퉁 포장길을 달리는 것은 참 고된 일이었습니다.
날이라도 좋으면 경치 구경이 꽤 쏠쏠하겠지만 날도 흐리거나 비가 내려 경치는 노굿이니 더 힘들었습니다.
승합차 안에는 스님과 그 부인 그리고 간난 아이 이렇게 3명과 내 옆에 앉은 티벳 젊은이가 장거리 손님이었고 뒤에 앉은 사람은 중간에 끼어들은 사람들이었어요.
중간에는 무슨 행사가 있는지 오토바이 부대가.
그런데 내 옆에 앉은 젊은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잘 때 빼놓고 깨어 있을 때에는 쉴 새 없이 가래침을 뱉어내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거든요.
어디서 그렇게 가래침이 나오는지.
참 더럽고 속이 뒤집혀 환장할 뻔 했습니다.
10년 전에 이런 놈 때문에 다시는 중국에 안 온다고 작심을 했거늘 아직도 진행형이네요.
앞에 앉은 스님은 마누라와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서 우리나라 정서와는 많이 달라 영 이상하더군요.
하여튼 이런 사람들과 긴 여행을 했답니다.
긴 고개를 넘고 비가 오고 또 개고 그러다가 한 휴게소에서 잠깐 쉰다는군요.
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일단 다리 좀 풀 겸 내려서 이곳저곳 구경에 나서네요.
날이 흐려서 좋은 경치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독점으로 폭리를 취하는 구조입니다.
이 집 밖에 아무 것도 없으니 여기서 먹을 수밖에 없는데 맛이라도 좋으면 어디가 덧나나?
한 마디로 처한 상황히 참 더럽습니다.
개밥도 이것보다 맛이 있을 것만 같았네요.
그래서 땡이님이 가지고 있는 고추장을 조금 올려보지만 맛은 뭐 거기서 거기...
값은 20원이나 합니다.
이중 얼마가 우리 운전사의 주머니로 들어갈까요?
종업원인 티벳 아줌마는 좀 행색이 초라하지만 주인 여자와 딸은 신수가 훤하더군요.
좀 쩐을 버는 가 봅니다.
그 근처에서 초원에 피고 지는 꽃의 정체를 파악합니다.
보라색 꽃.
노란색 꽃,
그리고 붉은색 꽃.
하나하나 보면 별 볼 품이 없는데 한데 모여 피면 참 예쁩니다.
산 중덕이 온통 같은 색깔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면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중간에 한 여자를 더 태웠는데 우리 두 자리에 세 사람이 앉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옆 남자 자리에 같이 앉더군요.
결국 내 자리 쪽을 넘보는 이 여자와 자리다툼을 한참하면서 오는데 한심하기까지 했지요.
우리 측의 강력한 항의에 이 아줌마는 앞자리로 틈을 벌려 갈 수 밖에 없었네요.
그래도 우리는 차비를 많이 낸 덕에 뭐라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모양새는 좋지가 않았어요.
큰 고개를 넘습니다.
완만한 고개라서 산처럼 느껴지지는 않고 엄청난 언덕을 넘은 기분입니다.
이 산 이름은 나중에 확인하니 해자산(海子山)이더군요.
하여튼 이 엄청난 고개를 넘어서 한참 구불구불 내려오는데 길이 패여서 수리 중입니다.
여기서 사람은 내리고 차만 일단 먼저 간 다음 우리는 걸어서 조금 이동하고 다시 차에 오르는 도중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기네요.
뒤를 보면 정말 엄청난 고갯길이 보입니다.
지그재그.
앞쪽으로는 엄청난 설산이 있네요.
다시 출발합니다.
멀리 보이던 굉장한 설산이 가까이 보이고 그 아래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절이 보인다 했더니 잠시 후 한 마을을 지납니다.
마니간과라더군요.
그러니까 좀 전에 보이던 설산들은 작아산이었던 것입니다.
이 굉장한 산을 넘으면 덕격이 나오지요.
KBS에서 방영한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프로그램은 탱이님의 집중 공격을 받은 대상인데 그 차마고도의 시작이 덕격이라서 탱이님은 다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티벳 할아버지와의 재회를 위해서.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그런 동네에 불과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라고 말했더니 탱이님은 그런 내 생각을 따랐나 봅니다.
하여튼 여기부터는 탱이님이 자전거로 지난 적이 있는 길이라서 어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저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친절한(?) 해설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길 상태가 좋았다고 하던데 지금 길의 상황은 엉망입니다.
이 근처 초원도 상당한 경치라던데 이제까지 지나온 초원보다는 뭐 더 나아보이지는 않군요.
눈이 상당히 고급이 되었나 보지요?
아마도 옥수가 지진으로 쑥대밭이 되었을 때 물자를 가득 실은 태형 트럭들이 다녀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추축을 해 봅니다만 확실한 이유는 알 수가 업었습니다.
정말 감자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흑랑랍카(黑郞拉卡)라는 한 고개를 넘으니 이제 해발 고도가 많이 떨어지면서 주변 경치도 많이 바뀌더군요.
감자에 가까이 오면서 들판도 점차로 넓어지고 보리인지 밀인지 이들의 주식이 되는 작물을 키우는 밭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이들의 주식인 참파를 만드는 재료라 하면 보리인가 봅니다.
보이기는 밀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집들도 마치 성채 같습니다.
아무래도 소득이 많으면 이를 노리는 이들도 많겠지요.
그렇다 보니 집들의 모습이 성곽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큰 고개를 넘어서 한 마을에서 잠깐 쉽니다.
벽에는 야크 똥을 넓적하게 펴서 붙여 놓았더군요.
땔감용이겠지요.
야크는 풀을 먹고 자라서 그 똥도 사실 냄새는 안 났답니다.
탱이님은 티벳 아줌마가 한 손은 참파를 뭉치고, 다른 손으로는 야크 똥을 뭉치는 장면도 보았다더군요.
여기서 감자는 멀지가 않았습니다.
멋진 산을 배경으로 도시가 형성이 되어 있더군요.
허나 도시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날이 점점 어두워져 감자에 도착한 때는 깜깜한 늦은 저녁이 되어서였습니다.
그것도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참 여러 가지로 일기가 좋지 않은 날이었네요.
그래도 오다가 보니 마니간과 말고는 숙소가 있는 정도 크기의 도시가 없어서 자전거 여행하기가 만만하지가 않겠더라고요.
게다가 비도 오고 하니 이렇게 비록 먼 거리이지만 한 방에 온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곳저곳을 가는 소형차들의 집합소였는데, 이 늦은 시간에도 어디를 가냐고 호객하는 사람이 있네요.
석거에서 막 도착한 우리를 붙잡고 석거에 가냐고 잡는 사람도 있고요. ㅎㅎ
그나저나 지금가면 언제 도착 하냐?
어쨌든 자전거 앞바퀴가 없는 탱이님은 멀리 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서 터미널 바로 건너에 있는 숙소에 들어갑니다.
참 허름한데 값은 2인용 1실이 80원이라네요.
그 값에 어울리는 숙소입니다.
숙소 건너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여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공심채(空芯菜) 볶음이 있네요.
청해성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 음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볶음에 화초(花椒)가 넉넉히 들어가 있더군요.
이 화초는 혀를 얼얼하게 할 정도로 강한 맛을 보이는 사천 특유의 음식 재료인데 역시 사천성은 사천성이었습니다.
식사 후 성도 가는 버스 시간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터미널 안에 들어 가봅니다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대합실도 없고 시간표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대충 알아본 바에 의하면 새벽 6시에 성도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합니다.
터미널 입구 수위실과 같은 방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 본 것인데 말이 잘 안 통해 확실하지는 않네요.
이들은 세 식구가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하면서 참파를 손으로 덩어리를 만들어 먹더군요.
이들은 저녁 식사 중이었습니다.
여기서 강정, 옥수, 백옥(白玉)가는 버스가 있는데 모두 새벽에 출발하든지 아니면 강정에서 출발한 버스가 여기를 거쳐서 가는 것이라 시간을 잘 알아봐야 되겠더군요.
백옥 가는 버스는 아청사(亞靑寺)를 거쳐 가 이 아청사를 가려면 이 버스를 타야 되는데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말이 짧아서 알아낼 수가 없었네요.
이 때 만에도 아청사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것저것 마치고 나니 10시가 다 된 시각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약국에서 감기에 잘 듣는 물약을 사 먹으니 기침이 좀 누그러져서 편한 밤이 되었답니다.
물론 석거에서 많이도 내려 왔고요,
여기는 3,350m랍니다.
워낙 높은 동네에서 놀아서인지 이 정도는 우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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