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목요일
싼 값으로 자긴 했지만, 침대는 푹 꺼져 있고, 전기장판은 안 되어서, 좀 춥고 불편하게 잤나 봅니다.
숙소가 허름하기도 하지만, 다시 해발 3,880m라는 이 동네 사정도 무시를 못하겠네요.
오늘 일정이 어떨지 몰라, 자전거와 짐은 일단 숙소 창고에 보관을 하기로 합니다.
보관료로 10원을 주기로 했는데, 오늘 다시 이곳에서 잘 경우는 그냥 무료인 조건으로.
숙소를 나오니, 바로 앞에는 괜찮아 보이는 빈관이 있군요.
사진은 우리가 잔 金川福來旅館(금천복래여관)입니다.
그 기사는 우리를 무리 가난한 사람으로 보았나요?
아니면 자기 수준으로 이런 비용도 많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이리로 오는 길가에도 괜찮은 호텔이 많던데, 왜 굳이 이 숙소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는지 알 수가 없군요.
사천성에 왔다 했더니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다니는데 다시 사천성을 나온 기분이 드네요.
다시 밥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까지 고통을 대상이던 분탕이 오늘 아침 메뉴였습니다.
메뉴판에서 보이는 분탕(紛湯) 소가 8원이네요.
말이 보이는 광장으로 일단 나옵니다.
왠 말인가 했더니 색달의 티벳어 Sertar가 금말을 뜻한데요.(이것은 나중에 알았어요)
그리고는 물어물어 색달 버스터미널을 찾아가는데 터미널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네요.
그럴듯한 건물은 찾아 볼 수 없고, 허름한 전통 건물 흙집이 표 파는 장소이고, 넓은 공터가 터미널인데 차는 승합차고 버스고 한 대도 없었어요.
그래도 뭔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표 파는 사람에게 표 사정을 들어보니 성도 가는 차표는 모래에나 1장만 남아 있고, 마이강은 모래에만 있답니다.
내일은 올 낫싱, 그러니까 매진이라는 거죠.
그것도 새벽 6시에 출발한다니, 이거 야 원.
그래서 그냥 로곽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합니다.
거기서 강정으로 가서 성도로 연결하기로.
그리고 이 동네에서 유명한 불학원에 가보기로 합니다.
어제 밤 잠깐 빗속에서 확인은 했지만, 엄청난 규모라는군요.
아마도 우리가 알고 왔던 하천을 끼고 있는 절은 여기가 아니고, 이 불학원이 있는 가 봅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를 보러 왔는데 대신 사자를 구경하는 셈이지요.
그것도 나중에 돌아 와서 확실히 안 것이고, 그 당시에는 산 속에 있는 것을 강가에 있는 것으로 잘못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었죠.
큰 절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이 동네 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스님들입니다.
신발을 깨끗이 닦아두는 스님들의 모습이 재미있군요.
길에도 스님, 식당에도 스님.
스님이 최고인 동네이군요.
동네 중심 광장의 금빛 찬란한 말 동상이 있는 큰길가에서 불학원 가는 승합차들이 수시로 다니는데 터미널에 가기 전에는 많더니 갔다 오니까 그나마 없네요.
한참을 기다리다 한 차를 탔는데 이놈이 출발하고 얼마안가 느닷없이 웬 병원 건물로 들어답니다.
그러더니 기사는 어디론가 없어지고 손님만 멍하고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슬금슬금 승객 한 명 한 명 제 갈 길을 찾아 갑니다.
길에는 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는데, 뭔가 찔린 기사가 급히 병원 건물 뒤로 오고 나서 어디론가 숨은 듯 하네요.
별 황당한 일이 다 있군요.
별 수 없이 우리도 내려 그 병원 건물을 돌아 나오다 보니, 그 건물은 색달현 인민병원인데 그 앞마당에는 ‘노먼 베쑨’이라는 의사 상이 서있네요.
이 베쑨은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의 저자 에드가 스노우와 함께 당시 서방 사람 가운데 홍군 세력을 인정한 사람으로, 사실 자기 나라보다도 중국에서 더 유명한 사람이랍니다.
연안 시절 홍군 지역에 들어온 노먼 베쑨은 홍군에게 많은 의료 기초 지식이라든지, 수술 방법을 중국 짝퉁 의사들에게 전달해서 많은 인명을 구한 그야말로 중국 인민들의 은인이지요.
아니, 그 당시에는 전 중국 인민들이 아니고 홍군 세력 안에 있던 인민들의 은인이었군요.
어쨌든 이 의사는 수술 중 감염으로 인한 폐혈증으로 그곳에서 사망하는데 페니실린 한 방이면 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종 약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군대의 통제로 홍군 지역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이었죠.
이 의사는 그 당시부터 ‘백구은(白求恩)’으로 불렸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은혜로운 백인 의사(?)쯤 되나요?
이 노면 베쓘 아니 ‘백구은’은 중국 팔보산(八宝山) 혁명열사묘역에 묻혀 있다고 들은 것 같아서, 언젠가 북경에 갔을 때 일부러 그 팔보산 혁명열사릉을 찾아 간 적이 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어 그냥 돌아 온 기억이 있네요.
이 노먼 베쑨에 대한 책(닥터 노먼 베쑨)을 읽고 상당히 감동을 받았는데, 그 인물이 이렇게 시골 병원 앞에 서 있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런 시골 병원 말고도 의과대학의 이름이나 병원 이름에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쨌든 다시 승합차들이 서 있는 광장 앞으로 걸어오는데 한심스럽습니다.
이게 뭐야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탱이님에게 그냥 팔자라 생각하고 그냥 로곽으로 가서 강정까지 가자고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다고 꼭 간다는군요.
흠~~
그렇다면 뭐 가야지 별 수 있나요?
다행히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어 바로 출발합니다.
아가씨 3명도 함께 가는데 나중에 보니 그 중 한 명은 한국어를 조금 하더군요..
이른바 한류파인가 봅니다.
어제는 깜깜해서 볼 수가 없었는데 주변 경치가 괜찮군요.
강과 초원 그리고 언덕처럼 둥근 산들의 모습이 참 예쁩니다.
8km 거리니까 그다지 멀지 않지요.
어제 저녁을 먹은 동네에서 난 산길을 따라 불학원으로 올라가는데, 마치 말굽 형태의 마을이 빽빽이 채워져 있어 정말 장관입니다.
어제 비가 억수로 내릴 때 숙소를 알아보던 그 공터에 도착을 하네요.
다행히 어제처럼 비는 오지 않아서 구경하기는 괜찮은 날씨입니다.
중세를 사는 동네 같은데 현대 문명을 누리고 있는 스님도 있네요.
그리고 한 벽에는 무슨 사연인가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도 하고요.
골목에는 SUV형 승용차도 있어요.
중세는 분명 아니네요.
저건 뭔 그림인지, 그림본인가요?
불학원은 불교 교리만이 아니라 저런 예밀한 불화도 가르치는 곳인가 봐요.
바로 큰 절이 있는 광장으로 연결이 되는군요.
마침 점심시간인 듯 광장은 군것질하는 스님들로 가득입니다.
큰 절 몇 개를 중심으로 주변을 스님들 숙소가 둘러싸고 있는데 규모도 엄청나지만 스님의 수는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광장을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식당이 있어서 사람 구경 겸 점식 식사를 위해 올라갑니다.
식당 안은 정말 돛대기 시장이군요.
구경 온 사람은 얼마 안 되고 스님들이 가득이네요.
주인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주문도 받고 돈 계산을 하는데 옷차림을 보면 거지 거지 땅그지 스타일입니다.
언제 저 옷은 물 구경을 했을지.
옆에서 먹는 음식을 보니 무엇을 시켜도 별 수 없을 것 같아, 볶음밥을 시키는데 저번 석거에서 감자로 올 때 먹었던 점심과 막상막하입니다.
억지로 몇 번 먹어보지만 으~~~.
이것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네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국인 짝꿍은 그래도 잘 먹네요.
우리보고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 한국인이라 했더니 이해가 간답니다.
여기 볼 것이 뭐가 있냐고 물으니 어디서 예불을 드리라고 하는군요.
우리는 그런 것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예불을 드리지 않으려면 여기는 왜 왔냐고 묻네요.
그러게..
뭐 하러 왔지?
그래도 규모나 처음 보는 장면이 많아서 괜히 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일단 밥을 먹고는 탱이님은 사진을 찍으려 높이 있는 절로 가본다고 합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는데요.
그래서 나는 절 테라스에서 그냥 대기 모드로 갑니다.
예불이 곧 시작할 것 같았어요.
많은 스님들이 입장을 하는데 신발 정리는 엉망입니다.
그냥 내던지다시피 하고는 안에 들어가네요.
이렇게 엉망인 상태에서 어떻게 자기 신발을 찾을까요?
그래도 가끔은 자기 신발을 잘 보관하는 스님도 있답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 테라스에 앉아 마니차를 돌리며 앉아 있는 중생들도 넘칩니다.
그들 표정이나 차림새를 보면 참 재미있네요.
수유차를 대접하는 젊은 승려의 모습은 참 공손하기도 합니다.
정중히 거절하는 스님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맛은 없나 봐요.
곧 비가 쏟아집니다.
아마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 것을 보니 이 동네는 우기인가 봅니다.
비가 오니 고지대라서 쌀쌀하네요.
그래도 사람 구경 절 구경 스님들 구경에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비가 좀 그쳐 탱이님이 올라간 큰 절에 가봅니다.
땅은 엉망으로 질어서 발 딛기가 좀 그러네요.
내가 앉아 있던 건물을 끼고 도니 큰 샘물이 있고 그 위에는 수유차를 만드는 공장이 있군요.
힘든 일인지 젊은 스님들이 일을 하고 있네요.
용천이라는 샘에서 나오는 물은 물줄기가 정말 힘찹니다.
이 절의 식수원입니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고지라서 힘이 드는군요.
올라가서 탱이님을 찾아보는데 건물 구조도 복잡하고 사람들도 많아 찾기가 힘듭니다.
여기도 여전히 열심히 법당 둘레를 도는 사람에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으로 몹시 붐빕니다.
날씨가 좋으면 훨씬 좋은 경치일 텐데 날이 흐려서 좋은 그림은 안 나오네요.
그래도 사진에 담을 수 없는 넓이와 크기의 동네가 엄청나게 다가옵니다.
길이 엇갈릴까봐 다시 중심 법당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탱이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까부터 다니던 미스 티벳 3명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차를 타고 온 한족 아가씨들인데 티벳 전통복으로 갈아입고 여기 저기 구경 다니는 중이었어요.
그들을 붙잡고 그들 핸드폰으로 내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고 손짓 발짓을 하면서 뜻을 전하는데 한 아가씨가 “한국어 조금 알았어요.”라고.
“어~~ 그래요?”
“핸드폰을 좀 빌려 주세요.”
너무 간단한 그 다음 과정.
그런데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네요.
그런데 이들과 헤어지고 얼마 안 되어 다시 허겁지겁 나에게 다시 왔습니다.
내 친구 찾았다고.
흐~~~~
어쨌든 다시 만났으니 이제 색달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것은 쉽습니다.
그냥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그러면 출발하니까요.
돌아오면서 중간에 보이는 초지는 천장 터라네요.
기사가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멀리 독수리가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어제 잤던 숙소에 돌아옵니다.
그냥 하루 더 여기서 자기로 하고, 주인에게 고장 난 전기장판 이야기를 하니 즉시 바꿔 주네요.
이렇게 빠른 조치를 받기는 중국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탱이님은 몸이 좋지 않아 누워 있고, 나는 밖으로 나와 농산물 시장에 가봅니다.
싱싱하지는 않지만 여러 과일이 있군요.
그 중 애플망고를 좀 사서 돌아와 탱이님에게 주니 먹지 않는다는군요.
나만 먹으려니 조금 미안하네요.
다시 나가서 밤을 좀 사다가 탱이님에게 주니 이것은 조금 먹습니다.
나도 힘이 들지만 탱이님도 힘이 많이 드는가 보네요.
하긴 인솔의 힘든 역할을 맡고 있으니.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두부로 탕을 처방해서 먹습니다.
사실 형편없는 음식인데 배가 고프니 별 게 다 맛있군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내 생일 이었네요.
어쩐지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먹은 것도 많더라니.
오늘은 대단한 경험을 했네요.
엄청난 규모의 불학원 구경에 엄청난 스님들.
그런데 왠지 그들이 딱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던 날이었네요.
불학원에서 본 티벳인들에게 종교는 어떤 독실함 이런 것을 넘어선 광적인 면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건 그렇고 나중 돌아와서 안 사실인데 이곳은 색달 오명불학원(五明佛學院)이고, 하천에 둘러싸인 절은 아청사(亞靑寺)라고 감자에서 백옥 가는 길에 있더군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간 곳에서 월척을 한 셈인가요?
나머지 사진들은 다음 편에 정리해서 올려야 되겠군요.
괜찮은 것들이 많다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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