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수요일
그 기침약 덕분에 밤새 안녕이었습니다.
진작 약을 사 먹는 건데.
아무래도 해발 3,350m로 낮은(?) 지대인 덕도 있겠지요?
몸 컨디션은 좋지만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이 되어도 개지가 않네요.
그래도 날이 환해졌으니 시간은 6시가 훨씬 지났을 겁니다.
짐을 정리하다 호텔 탁자 모퉁이에 손이 베어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하여튼 중국은 곳곳에 흉기가 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으면 큰일 납니다.
다행히 밴드와 연고로 수습을 하니 피는 더 이상 나지 않네요.
이런 환경에서는 다치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조심을 해야 하지요.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주변 환경이 깨끗하지 않으면 덧나는 수가 있으니.
그건 그렇고 오늘도 이동을 해야 합니다.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
대충 정해 놓은 것은 있었어요.
어제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호객하던 삐끼는 강정 가는 소형버스는 6시 경에 출발한다고 했었거든요.
길이 공사 중이고 형편없어서 12시간이나 걸린답니다.
아마도 공공 버스도 이 시간에 갈 것이니 6시가 넘으면 일단 강정 가는 것은 힘들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탱이님은 강정보다는 마이강(馬尔康 Barkam) 쪽으로 가면 어떤지 의견을 내놓았어요.
나에게는 강정을 거쳐 가든 마이강을 거쳐 가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서 괜찮다고 했지요.
그런데 여기 감자에서 마이강을 직접 가는 차가 없어 그렇게는 갈 수는 없고 로곽(炉霍 Luhuo)이라는 곳에 가면 마이강에 가는 소형 버스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일단 로곽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그러니까 사천성하고도 북서쪽 변두리랍니다.
감자(甘孜), 로곽(炉霍), 색달(色達)이 보이지요?
위 지도 왼쪽 동그라미 3개가 바로 거기랍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 Aba 뭐시기라고 쓰여진 도시가 마이강이고요.
어쨌든 오늘 행선지가 결정이 되었으니 일단 아침 죽과 만두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 터미널에 가봅니다.
백옥(白玉)행 버스가 한 대 들어와 있네요.
비는 내리고 터미널 안에는 버스 한 대만 달랑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여기 감자 터미널은 이렇게 가끔씩 이곳을 들르는 버스만 오는 그런 곳인가 봅니다.
나와 접근해온 소형 승합차와 교섭을 하는데 사람 요금만 받고 자전거는 서비스라는군요.
어제는 사람 요금만큼 자전거 요금을 지불했는데 아무래도 바가지를 좀 쓴 것 같죠?
타고 갈 승합차는 결정이 되었지만 멤버 구성은 아직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손님을 잡으러 다니는 승합차를 타고 시내 구경에 나섭니다.
동네는 완전 티벳 분위기입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스님이 절반이 넘을 것 같네요.
어쨌든 손님을 채운 소형차는 감자를 떠나 로곽으로 향하는데 길이 참 엉망이군요.
포장했던 길은 그 흔적이 완전히 지워졌고 비포장 길에 비가 와서 상황이 정말 볼만하네요.
마치 팥죽 속을 누비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차 기사는 아줌마인데 알 수 없는 티벳 가락의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는 그것도 모자라 옆 사람과 정말 쉴 새 없이 떠듭니다.
정말 정렬이 넘치는 아줌마군요.
거리는 95km로 얼마 안 되지만 길 상태가 워낙 개판이라서 시간은 제법 걸립니다.
시속 20여 km나 될까?
강물 따라 가는 길이네요.
그리고 강가를 따라 펼쳐진 들판에 밀인지 보리인지 익어가는 풍경은 보기가 참 좋습니다.
은사시나무 가로수 길은 이국의 정취를 더욱 풍기고요.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같이 흐르는 아롱강(雅礱江)은 래프팅을 하면 좋을 장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아롱강은 청수하 쪽에서 시작해서 석거를 지나 여기까지 왔군요.
결국 사천성 이곳저곳을 흘러가다가 반지화(攀枝花) 여귀에서 장강과 합쳐지면서 이름을 다하는 강이랍니다.
집의 재료도 석거 쪽은 돌이더니 흙으로 변하고 다시 나무로 변하는 것이 흥미가 있네요.
티벳이라도 같은 티벳이 아닌 거죠.
가끔씩 나타나는 빨간색 팔작지붕을 얹힌 티벳 가옥은 한족의 특혜라는군요.
아무래도 흙만으로 처리한 티벳식 가옥은 비에 취약할 테니 티벳 사람들도 이런 지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생김새가 좀 어색하네요.
충고향(充古鄕) 카살촌(卡萨村)이라는 조그만 동네에서 잠시 휴식입니다.
좀 전 고개를 넘어 왔는데 확실히 고개의 모양도 좀 순해졌어요.
그리고 지붕의 모습에서도 알 듯 한족의 영향이 많이 침투해 있군요.
문화의 교류는 자연스런 것이고 당연히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티벳은 그 문화의 독특함을 잃으면 이제 뭐가 남을까요?
티벳 주변은 말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던데요.
그래도 야크 똥을 넓게 펴서 벽에다 붙인 것은 아직도 남아 있네요.
거기서 멀지 않은 로곽에 도착을 합니다.
이 로곽은 마이강과 강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입니다.
티벳의 분위기는 감자보다 훨씬 덜합니다.
아마 교통의 소요 때문에 억지로 생겨난 도시가 아닌가 하는데 티벳식 이름은 짱고라는군요.
아니 짱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중간 발음 정도인 것 같아서.
그런데 ‘돌아온 장고’인지 ‘못 말리는 짱구’인지는 몰라도 그 이름에 어울리는 티벳 분위기는 골목 안에 들어가야 조금씩 볼 수 있고 언덕 높이 있는 절에서만 볼 수 있군요.
마이강가는 소형 승합차를 수소문하지만 그쪽 방면은 없답니다.
아마도 주가 다르니 그런 가 봅니다.
여기서 계획과는 조금 꼬이네요.
그건 그렇다고 하고 일단 밥 먹고 더 알아보기로 합니다.
추천 밥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장씨네 구구향(張氏口口香)이라는 식당을 알려 주네요.
이 집은 한족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우리나라로 하면 분식집 스타일로 안 하는 음식이 없더군요.
뭐를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양주볶음밥(챠오판), 탱이님은 자장면을 시킵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티벳 거지는 총 출동한 모양입니다.
어른 거지, 아이 거지 아니 아이 딸린 엄마 거지 그리고 할머니 거지.
어쩌다 이리 되었나요?
돈을 쥔 손을 내밀고 흔들어대는 것이 어디서 교육을 받은 것처럼 똑같습니다.
이런 거지들을 보기는 티벳에서는 처음이네요.
좀 당황스럽습니다.
한족이 몰려와 자신이 거지 처지인 것을 알게 된 것인지 원.
양주볶음밥은 지난여름 계림의 흥평(興坪)에서 먹은 것과는 모양만 비슷합니다.
고기 대신 소시지가 들어가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들이려고 궁리 좀 했나 봅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네요.
게다가 우리나라 볶음밥 스타일처럼 국물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 이제 밥은 먹고 어떻게 이동을 할까 궁리를 해야 합니다.
하필 비가 또 오네요.
탱이님은 그냥 색달(色達 Sertar)로 더 가 보자고 하는데 나는 시간이 늦어 색달에 가면 거기서 하루를 자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냥 여기서 자고 내일 성도로 가자고 주장을 하는데 탱이님의 마이강 사랑이 지극하네요.
그래도 갈 방법이 마땅하지 않고 차를 한 대 렌트하기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색달 쪽도 비용을 많이 달라고 해서 좀 과도기를 갖습니다.
이 동네 형편을 알아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일단 터미널에 가 봅니다.
이 터미널에 근무하는 여자 두 명 정말 사가지가 없네요.
말이 잘 안 통해 버벅거리며 좀 물어보니 소리를 냅다 지릅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말로 ‘이런 *을 *들이 뭘 물어보면 잘 대답을 잘 해줘야지 왜 소리는 지르고 지*이여’ 이렇게 걸판지게 욕을 한 바탕 해주었더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던지 좀 고분고분해지면서 알려 주네요.
결국 알아 낸 것은 마이강 방편의 차편은 없다.
그리고 내일 새벽 6시 강정 행만이 있노라고.
이 한 편 때문에 터미널이 운영되지는 않고 여기저기서 출발한 버스가 여기를 거쳐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확인은 못 했어요.
성도 가는 편도 없다는 군요.
성도를 가려면 일단 강정에 간 다음 강정에서 성도 가는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다는 것만 확인합니다.
돌아오는데 한 청년이 뭐라 말을 걸어오는데 세다 뭐라 하는 것이 색달에 갈 거 아니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색달의 중국어 발음은 ‘세다’거든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어 발음은 써다인데, 이 동네 사천 사투리로 세다가 되는 가 봅니다.
하여튼 나는 그냥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공공 버스나 소형 승합차인 사차(私車)로 강정에 가서 성도로 갔으면 하는지라 귀담아 듣지 않았어요.
강정까지 공공 버스 요금은 87원, 사차는 140원이라는 요금 정보도 식당 주인에게 얻었거든요.
그리고 터미널이 딸린 건물에 있는 숙소는 100원인데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고 하니 거기에 머물러도 괜찮겠고요.
돌아오니 탱이님이 간청을 합니다.
일단 색달에 가자.
거기는 하천으로 둘러싸인 절이 있는 유명한 절이 있단다.
그것을 보고 거기서 마이강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사실 여행 중 남의 동네에 한 밤 중에 도착하는 것은 기피 사항이라서 좀 꺼렸지만 어디선가 본 하천으로 둘러싸인 절이라는 말에 귀가 혹하더군요.
우리 앞에서 간청하는 청년에게 얼마냐고 하니 한 사람 당 60원씩만 내랍니다.
이 친구 색달에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갈 사람이 더 없으니 우리에게 요금을 싸게 제시하는 모양입니다.
못 이기는 척하고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그 동안 친구 관계로 발전한(?) 장씨네 음식점 사장과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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