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벌교가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도시가 된 것에 비해 아리랑의 무대인 군산은 유명세가 덜한데,
아마도 아리랑이 태백산맥에 비해 덜 읽혀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벌교가 태백산맥을 이용한 도시 알리기에 열심인 것에 비해, 군산은 아리랑을 이용한 관광 연계가 거의 없는 듯 하다.
생각해 보면 소재가 꽤 많은 것도 같구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컨텐츠를 개발하는데 얼마나 둔한지.
다른 나라들은 없어서 난리인데, 우리는 있는 소재도 제대로 써먹질 못하니 원.
하여튼 그건 그렇다치고...
인터넷에서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줄거리를 생각해 보려고 했더니 머리가 둔해져서인지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냥 단편적으로 조금씩 기억나는 정도.
한 인터넷 카페의 도움으로 등장인물을 살펴 보면...
장덕풍(보부상 출신)
잡화상을 하며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없이 오로지 돈을 버는데만 혈안이 되어 우리의 민족을 고통속으로 내모는 전형적인
친일파다.
일본 앞잡이로 부를 축적하여 정미소, 미선소, 알사탕 공장을 운영하느 세력가로 부상하여 군산거리를 활보한다.
이방 출신인 백남일과 부에 대한 경쟁의식을 갖고 시기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노동자를 착취하며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발견되면 즉시 일본군에게 신고하며 온갖 행패를 자행하지만 일본인의 꾀임에 빠져 모략을 당하면서 가사를 탕진하게 된다.
노후에는 결국 풍에 맞아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장칠문(장덕풍의 아들)
대륙식민회사 고용원으로 일하면서 감골댁의 큰아들 방영근을 하와이 노동자로 이주시킨다.
방영근은 20원을 받고 이주노동을 떠나고 이주비중 일부를 감골댁에 주지않고 착복하는 전형적인 친일파 인물이다.
이주비 착복으로 인하여 지삼출에게 폭행을 당하고 장칠문의 밀고로 지삼출은 수감되어 철도길 강제노역을 당한다.
이후 일진회 청년부장, 수사가 되어 아버지 장덕풍의 재산 증식에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일본의 앞잡이로 거리를 활보한다.
부둣가에서 떡장사를 하고있는 방보름에게 반하여 귀가하는 뒤를 따라가 겁탈하고 꾀어 첩으로 만들어 동거한다.
일본 형사계장이 방보름의 미모에 반하자 방보름을 형사계장에게 넘기는 등 권력을 등에 업고 살아간다.
공허스님이 지역에 들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색하다 공허스님한테 코뼈가 부러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백종두
조선말기 아전 출신으로 물욕과 출세욕이 강한 인물이다.
아전 콤플렉스로 양반에 대한 반감이 크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중상모략으로 일본인의 신임을 쌓아간다.
권력을 잡기위해 일본을 돕는 단체를 구성하여 활동한 댓가로 일진회 군산지부장을 거쳐 죽산면장이 된다.
토지조사사업을 계기로 원평천 고수부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가 직원의 밀고로 수포로 돌아가고
죽산면장직까지 박탈당한다.
이후 일본인에게 밀착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며 군수를 꿈꾸기도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속샘을 알지못한다.
일진회를 이끌고 만세운동을 진압하려 김제시장에 나아갔다가 시위대에 몰매를 맞아 죽는다.
백남일(백종두의 아들)
아버지 백종두의 도움으로 헌병보조원으로 일하다 헌병이 되어 주민들을 괴롭히는 친일파 인물이다.
아버지 백종두가 운영하는 미선소에서 방수국의 미모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는 방수국을 논두렁에서 겁탈한다.
그 보복으로 방대근과 지삼출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고 무명 씨눈박이가 되는 불구자가 되고 헌병대에서도 쫒겨난다.
이후 아편쟁이로 타락하고 경쟁자인 장칠문 등으로부터 멸시를 당하며 살아간다.
일진회를 구성하여 재 도약의 꿈을 키워보지만 결국은 아버지 백종두가 죽으면서 친일의 행적에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양치성
어렵게 살다가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죽게되자 살던 집마저 내주고 어머니와 어린 다섯남매의 생계를 꾸리게 된다.
생계를 위해 일본인들을 상대로 구걸을 하다 우체국장 하야가와의 눈에띄어 우체국 소사로 근무한다.
첩보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우체국장은 양치성을 일본 첩보학교에 보내어 극악한 일본 첩보원이 된다.
송수익을 체포하기 위해 밀정으로 만주에 잠입하여 독립투사들의 뒤를 쫒다가 방수국의 미모를 탐해 가족을 돌보고
있다는 감언이설로 꾀어 방수국과 동거를 하지만 후에 방수국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양치성을 칼로 찌르고 도주하여
독립투사로 활동하고 양치성은 가까스로 죽음에서 벗어나 방수국과 독립군을 잡기위해 혈안이 돼 있다.
경찰서장이 되기를 꿈꾸기도 하지만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이동만
몰락양반으로 일본인의 토지 구입에 앞장서서 일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체우기에 급급하다/
일본인 요시다와 하시모토의 하인으로 오가며 온갖 재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재산증식에 여념이 없을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측량학교에 보내어 토지를 확장하면서 만석꾼이 되기를 꿈꾼다.
급기야 일본인의 꾐에 빠져 사금 채광에 투자하여 동분서주 하지만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만다.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리를 방황하다 사금 논에서 객사하는 인물이다.
이경욱(이동만의 아들)
아버지 이동만의 출세욕을 충족하기 위해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하지만 고등고시에서 낙방한다.
아버지의 친일에 점점 불만을 갖게 된 이경욱은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아버지 이동만의 생일에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른 명창 옥녀를 보고 짝사랑하게 되나 옥녀가 순사(사찰과장)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고 죄의식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고서완의 사회주의적 농촌공동체 운동에 참여하며 가족을 등지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서무룡
군산부두 건달패다.
지삼출.방대근과 함께 부두에서 노무생활을 하며 방수국을 흠모하며 때로는 친오빠처럼 방수국을 돌봐주기도 하지만
방수국이가 만주로 이민한 후로는 친일파인 양치성의 계락에 넘어가 친일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군산부두에서 방수국이를 닮은 방보름을 보고 손판석에게 중매를 요청하지만 방보름이 유부녀임을 알고 겁탈한다.
백남일이 방대근에게 당한 분풀이로 방보름을 폭행하고 괴롭히자 계락을 꾸며 백남일로부터 방보름을 구출해내기도 하며
도움을 주지만 친일파 행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일본인의 비호아래 폭력조직을 구성하고 죽산면장이었던 백종두의 계략에 맞추어 일진회의 회장을 맡아 친일 정보활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하야가와
목포우체국 군산출장소장이다.
일본의 첩보원으로 지역의 동향을 파악하여 일본 정부에 밀고하는 인물이다.
선량한 양치성을 꾀여 일본 밀정으로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쓰지무라
일본영사관 서기.
일본인 지주들이 농장을 확장하는데 앞장서 도움을 주는 인물이다.
하시모토
일본인 사업가다.
일러전쟁당시 통역관 출신으로 만경평야의 토지중 절반을 차지하는 대지주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이동만과 백종두를 이용해
토지를 마구잡이로 사드리고 수탈을 일삼은 인물이다.
대지주가 된 하시모토는 급기야 백종두를 몰아내고 김제읍장, 농장 조합장, 도의회 의원 등을 역임하는 악질적인 일본인이다.
현재도 죽산면 소재지에 하시모토 농장사무실이 실체 그대로 남아있으며 등록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그날의 수탈 상황을
일깨우고 있다.
소설 아리랑의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하시모토만이 실제인물을 등장시켰으며 지금도 하시모토 후손이 일본인이 와서
자기들의 소유 건물이라며 주장하기도 한다.
(아리랑 문학 마을에서 옮김)
한 모텔에서 동료들과 어울리느냐 잠을 거의 못 잤다.
그래서 피곤기가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잇지만 어쩌랴.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하니.
그래서 아침이 준비된 똘이네쪽으로 가다보니 일본식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척봐도 알겠다.
왠만한 동네 일본인 거주지에는 이런 형태의 건물들이 꽤 있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거의 없어져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나도 한 때 이런 형태의 집들이 있는 동네에서 산 적도 있지만 그 동네도 이제는 모두 바뀌었더라고.
그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 그 집으로 이사해서 집안에 목욕탕이 있고 화장실이 실내에 있었던 것이 신기했었다.
일본식 건물 건너편에 있는 창고인데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때에는 무슨 용도로 쓰였을까 궁금하다.
길 이름이 구시장로인 것을 보면 여기가 옛날 시장 골목이었나 보다.
지금은 쇄락한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
부두로 가던 철길인가 보다.
지금이야 부두도 수명을 다 했으니 철길도 그 임무를 다 한 듯하다.
똘이네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식당들과 선박에 대한 설비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전성기는 벌써 지난 듯 하다.
째보선창길이라.
째보는 언청이를 속되게 표현한 말인데 동네 길에서 이렇게 원색적으로 표현한 것은 여기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 째보 선창은 원래 '죽성포구'였단다.
이름답게 갯벌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아무튼 이 포구에 어선이 들어오면, 이 동네에 들어선 술집들은 대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시대에 근대적인 항구가 생기기 전에 있었던 포구 자리가 여기였다는.
아리랑 소설 속의 장칠문이나 서무룡 같은 왈패들이나 만선의 고깃배에 탔던 어부들 그리고 그들을 유혹하던 술집 작부로 가득했을 골목.
그러나 이른 아침인 탓도 있겠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얼신거리지 않았다.
선창가에 나와봐도 마찬가지.
왜 이리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동네가 되었을까?
이런 영업장들은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는지 괜한 걱정이 생긴다.
쇠락이라는 표현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 선창가 부두길.
게다가 썰물 때인지 물도 없어 더욱 허전한데..
맬 배가 없는 지지대만 녹이 슬어 가더라는.
그래도 큰 길 쪽으로는 사정이 나아 보인다.
그래 봐야 오십보 백보지만.
녹슨 고철 덩어리와 매여 있는 배들 너머에 왠 군함이 있다.
이게 뭔 분위기 반전이여~~
밥 먹고 시간이 나면 가 보기로.
이 너머는 충남 장항이다.
한 때는 장항도 제련소가 있어서 꽤 괜찮은 동네였지만, 지금은 그냥 그렇고 그런 도시로 변했을게다.
이건 뭐하는 물건인지.
사용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일단 어제 저녁을 거하게 먹었던 똘이네 그 식당으로 돌아와 콩나물국으로 아침 식사를.
다시 먹어도 음식 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콩나물이 왜 그리 아삭한거여.
이 놈들이 똘이네 반찬으로 바뀔 생선들.
한데 모아 조림으로 나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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