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충주 이야기

충주호 100 마일을 맛보다 - 서운리 구간(보충 수업)

정안군 2012. 6. 9. 15:33


오늘은 오후에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예보되어 있어서, 잠깐 한 나절로 끝날 수 있는 서운리 구간을 해보기로 한다.


이 구간은 벌써 두 차례나 돈 적이 있지만, 증거는 없어서 오늘은 사진으로 그 증거를 삼기로 한다.


다시 충원교를 향해 가는데,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다.


어제 뒷바퀴에 박혀 있던 철심을 뽑아내서, 더 이상 속 썩이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뭔 일이랴?


다행히 바람을 더 넣어주었더니, 끝낼 때까지 더 이상 빠지지 않고 잘 버텨 주었다.


오르막을 올라가서 막 내리막을 내 달리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길을 물으려나 하고 다가 서니, 자세가 좋지 않다고 좋은 자세를 알려 준단다.


헛김이 새기도 하고, 좀 기분이 상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내가 얼마나 자세가 불량(?)이면 이 분이 이랬을까 하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답한다.



그리고 도착한 충원교.


오늘은 화암리와 서운리를 향하는 오른쪽이다.



충주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마침 방송이 나온다.


물을 방류하려고 하니, 하류에 있는 사람들은 조심하시라고.


가뭄이 심하다고 하던데, 다목적댐의 기능 중 하나가 용수 공급 기능이다.


가뭄 때 하류 쪽에 물을 공급해 주는 일도 용수 공급 중 주요 기능이니 맡은 역할을 잘 하기 바란다.


이제 30살이 넘은 충주댐아..



낮은 오르막을 올라 한 때 충주 사람들의 쉼터였던 물레방아  휴게소를 지나면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기업은행 연수원을 지나면 나오는 충주 나룻터.


충주댐 유람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그 충주 나룻터를 지나면 화암리를 지나는데 이곳은 원 이름이 꽃바위이다.


순 우리 말로 너무 예쁜 이름인데 화암리로 개명을 언젠가 했는데, 충주댐이 생기고 나서는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제법 경사가 급한 고갯길을 오르는데, 그 이름은 화암고개이다.


저번에는 고개 이름이 없었는데 새로 만든 모양이다.


사실 우리나라 고개는 재나 치 아니면 티가 붙는데, 이렇게 ** 고개라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화암고개에서 내리막을 내달리다 다시 오르면 나타나는 예쁜 이름의 집이다.


화암대 현경이네집인데, 문이 잠겨 있었다.


현경이는 오늘 외출 중인가 보다.



여기서 부터는 충주호가 넓게 만들어진 지역이 나온다.


멀리 월악산이 보이기도 하고.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고만고만하다.



호수변에는 별장을 만드는 것인지 이렇게 집을 부수고 공사하는 곳도 있고, 나름 예쁜 별장도 있었다.


물을 보고 사는 생활은 별로 좋지가 않다는 설이 있어서,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부럽지 않더라는 말씀..



이제 서운리가 나온다.


정말 살기 좋은 서운리이겠지?


이 부근은 충주호가 만들어 지기 전에는 그나마 평지가 많은 지역였던 것 같다.


냇가도 흐르고, 정말 괜찮은 마을의 모습을 보였을 듯하다.



이제 아스팔트 길을 끝나고, 임도로 미라실로 연결되는 곳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충주 시내버스 종점이기도 한 모양인데, 이 근처에는 예쁜 찻집도 있었다.



이 임도는 처음부터 경사가 무지 심하다.


괜히 자전거로 올라간다고 힘을 쓰느니, 그냥 내려서 살살 끌고 가기로 한다.


중간에 서운리 - 지동리 임도 안내판이 있던데, 잘 보니 수리재를 넘어가는 임도말고도 다른 임도가 있었다.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확인을 하니 지금 공사중이란다.


2014년 완공인데, 이 임도가 완성이 되면 MTB 자전거 코스로 안성마춤이겠다.

 


중간에 볼록 솟은 봉우리 왼쪽으로 임도가 이어지는데, 처음만 경사가 심하지 갈수록 완만해져서 중간 중간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도 했다.



올라갈수록 아래로 서운리가 예쁜 모습을 보인다.


충주호에 물이 가득차고 공기가 맑아지는 가을날에는 더 좋은 경치가 나올 것 같다.



드디어 오늘의 최고점 수리재에 도착을 한다.


전 구간이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길 상태는 좋은 편인데, 경사가 심한 곳은 줄을 파 놓아서 자전거를 타면 좀 튀는 곳이 있기도 했다.


여기서 간식과 물을 충분히 먹어둔다.



이렇게 수리재를 넘으면 기분 좋은 경사가 이어지는데, 멀리 코타가 보인다.


그러니까 앞에 보이는 강은 제천천으로, 이곳은 충주호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이제까지 오면서 자전거 탄 사람은 관두고라도 사람 한 명 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한적한 곳이기도 하다.



내리막을 내려오면 만나는 마을, 미라 마을.


흔히 미라실이라고 하는 마을이다.


팬션과 별장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북쪽 방향이라서 서운리 쪽보다는 좋아 보이질 않는다.



수몰을 면한 집일 듯한데, 주인의 센스가 만점이다.


대문 위에 놓인 스포츠카는 손자의 것일까?



수몰된 지역에 마을을 두었던 사람들이 세운 망향비.



미라 마을비와 정자.


이곳도 낚시터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런데 지금은 물이 너무 많이 빠져 낚시를 하기가 좀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자그만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양아 마을.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 모형과 남자 거시기를 닮은 놈이 실해 보인다.



그곳을 지나면 이렇게 언덕이 이어지는데 이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양아 고개 정상부이다.


양아 고개에서 양아 버스 정류장 쪽으로 본 경치이다.


아랫길은 옛날 길이고, 윗길이 새로 만든 길인데, 옛길은 수몰되기 전에도 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양아 고개 표지석.



그 근처에는 이런 재미있는 집이 있더라고.




양아 마을 유래에 대해 써 놓은 것이 있었다.


글 솜씨가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다름 고생하셨다.


재, 우, 상자 들어가는 이름이 있는 것을 보니 경주 김씨가 많이 사셨나 보다.

 


그러다가 만난 탄동마을 숯돈이란 이름..


여기 올 때마다 가슴이 짠해지는 이름이다.


내가 충주로 발령을 받아 온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오던 첫 해는 중간 발령이라서, 정신없이 담임 노릇을 하긴 했는데, 다음 해는 어린 내가 불쌍했는지 담임 업무를 빼주더라고.


그리고는 다음 해, 맡은 학년이 1학년이었는데..


그 중 한 학생이 살던 마을이 바로 이 숯돈이란 곳이다.


이 동네에 한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심심하면 결석을 하다가, 5월 경인가 장기 결석에 들어 갔다.


그 때는 열의가 넘치던 시기라서 가정 방문에 나섰는데, 충주에서 하천 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숯돈이라는 곳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 때는 충주댐 수몰이 되기 전이라서 이런 훌륭한 도로도 없었고 비포장 길이 꼬불꼬불 한참을 달렸었다.


거의 두 시간을 달려서 방아간이 있는 조그만 동네에서 내렸는데, 거기서 학생 집을 물어보니 산 중턱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높은 산 중턱에 있어서 빤히 보이는 곳인데, 걸어서 올라가니 한 20분 정도 걸렸을까?


한번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던 그 학생 어머니가 아래를 내려보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정신없이 내려와서 반겼다.


어찌 담임 선생님이 여기까지 오셨냐고?


어쨌든 집에 들어 갔는데 혼자 계신 할아버지도 나를 무척이나 반가워하시면서도 어려워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담임선생님이 찾아 오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하시면서.


학생 아버지와 형은 산에 불이 나서 불을 끄러 갔단다.


학생 어머니가 막걸리라도 드시겠냐고 묻는데, 할어버지는 어찌 선생님께 막걸리를 드리냐고 하면서 맥주를 사오라고 하시더라고.


나는 곧 가야 한다고 하지만, 버스 시간이 뻔한 것이라서 시간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면서, 내가 버스에서 내린 곳까지 가서 맥주 한 병을 사가지고 오셨다.


사실 나는 자퇴 원서에 도장을 받으러 온 것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그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달걀 후라이와 맥주를 대접받은 나는 결석하는 학생은 여기서 다니는 것이 아니고 면소재지에서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한다는 것만 알고는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인가 그 학생 어머니는 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오셨다.


그리고 사연을 말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형하고 아버지가 그 아이를 그렇게 많이 때린다고.


그래서 그 학생도 집에 있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서 동생 핑게를 대고 자취를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를 잘 다니는지 안 다니는지 알 수도 없었다고 나에게 많이도 비셨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잘 지도해 보겠노라 대답을 하고 보냈는데, 가시면서 작은 선물을 선생님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으니 성의를 보아서 받아 주십사고 하셨다.


별 것 아닌가 하고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는데, 돌아 와서 보니 두툼한 봉투였다.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때 지폐가 가장 작은 단위가 1,000원짜리였는데, 그 천원권이 있다하더라도 꽤 많을 그런 양의 돈이었다.


이런 돈을 정말 받을 수가 없어서, 학생을 불러 성의는 고맙지만 받을 수가 없노라 잘 말씀 드리고 어머니께 돌려 드리라고 했는데.


그 날 이후로 그 학생은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자퇴 원서에 도장을 받느냐 그 학생 어머니를 보기는 했지만 그 봉투 이야기는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뻔히 안 돌려 주었을 줄 알지만 더 이상 그 아들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하필이면 수몰이 자기 집 바로 아래까지만 되어서 이런 촌 구석을 떠날 수가 없다는 그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사실까?


바로 호수가 보이는 곳이었으면, 집터는 좋은 장소로 바뀌었을 텐데...


그리고 내가 준 봉투를 받아들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난 그 학생은 지금 뭐하고 살까?




그런데 그 때 찾아 왔던 지명은 숯돈이라고 분명히 맞는데, 그 때 그곳은 어딘지 도저히 못 찾겠더라고.


어제 일처럼 기억에 또렸한데도 말이다.



숯돈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저번 충주호 100 마일 나들이를 할 때 지났던 손동리 음양지와 만난다.


마치 네비의 기능에서 이제 안내를 마친다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어쨌든 이렇게 서둘러서 오늘의 자전거 놀이를 끝냈는데, 결국 오후에도 비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



오늘 주행 거리 : 55 km(충주호 100 마일 부분은 26.4 km)


주행 시간 : 4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