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2013 여행

매쌀롱 마을 주민되어 보기 1

정안군 2013. 4. 5. 23:26

치앙라이에서 매싸롱까지 이동하려면

 


치앙라이에 택시가 생겼다.

자전거 택시(이놈을 태국어로 뭐라 하나), 툭툭 그리고 성태우가 아직 현역에서 활동을 하긴 하지만 최상위 포식자인 택시가 치앙라이에 등장을 하신 거다.

물론 지금은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다른 놈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 같지만 않지만, 곧 다른 놈들을 적당한 이유(매연이나 소음, 교통 체증 유발)로 도태시키고 홀로 유야독존할 때가 머지않은 것 같다.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콜을 요청하면 친절히 불러준다.

우리가 묵은 모닝듀 로지(롯지 같은데 주인이 그렇게 써 놓아서리)에서 택시로 구 터미널로 이동하면 무려(?) 32밧이 나온다.

툭툭을 만나 바가지를 쓸 걱정도 없고 메타로 나온 대로 주면 되니 훨씬 깔끔할 지도.

그리고 모두 신형으로 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놈들이다.

기본은 30밧이고 거리에 따라 태국 사람들 보통 성미처럼 천천히 메타 요금이 오르는데 별 부담이 없어 보인다.

 

치앙라이 구 터미널에도 ATM이 있다.

하긴 바퀴벌레처럼 흔한 것이 태국 ATM이기는 하다.

그런데 수수료가 150밧이나 하더이다.

그래도 환율 사고팔기를 적용하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고 하니, ATM을 이용하는 것이 많은 돈을 보관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치앙라이에서 일단 빠상(PA SANG)으로


매쌀롱에 가려면 일단 매사이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 버스 상태를 보면 좀 심각해진다.

하지만 나름 잘 가니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싶기는 하다.




많이 듣던 대로 안내양(안내 아줌마)에게 매쌀롱만 반복하면 알아서 빠상에서 내려주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내려 보니 성태우는 대기하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려는 손님은 한 사람만 달랑 보였다.


 

그러나 이 손님도 잠시 후 다른 성태우가 데리고 가니 외롭게시리 우리만 남더라고.

이러면 황당해지기는 지면서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날은 더워지고 손님은 올 생각도 안 하니 방법이 없었다.

그냥 돈으로 때울 수밖에.

교섭을 해보지만 60원 곱하기 8명해서 480밧이 아니면 죽어도 안 간단다.

기름 값이 300밧이나 되어 남는 것도 없다 하고 또 갔다가 다시 올 때는 거의 빈 차일 테니.

속 넓은 우리가 양보를 해서 대절한다 생각하고 그냥 그 가격에 타고 매쌀롱으로 가기로 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그냥 미리 머릿속에 오늘 요금은 480밧이거나 하고 맞춰 생각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이로울 듯.

 

빠상에서 매쌀롱으로

빠상은 해발 400m대인데 매쌀롱은 1200m대라서 엄청나게 올라간다. 처음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잠시 후 손님이 찾아온다는 거.

육해공 모든 방법의 교통수단을 타보면서도 멀미라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튼튼한 몸의 소유자인데, 그런 나까지도 멀미로 헤맬 정도가 되니, 몸 상태가 시원찮은 사람은 꽤 후유증이 있을 듯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기분이 좋은 것은 햇살은 따갑지만 치앙라이에 비해 그다지 더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힘들고 돈은 꽤 많이 들었지만 잘 왔다고 처음으로 느껴지는.

 

매쌀롱에서 숙소 잡기

처음부터 반 쓰쓰(BAN SEE SEE)를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바로 가서 숙박 요금을 교섭해 보기로 하는데 그게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치앙라이에서처럼 하루 요금이 700밧이면 한 달은 적당히 10을 곱해서 7000밧 이런 정도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 집 사장 찬씨는 단 칼에 그런 생각을 잘라 버렸다.

이 동네는 그렇게 요금을 책정하지 않는다고.

그냥 하루하루 400밧 씩 요금을 계산할 뿐이란다.

어르고 오래 묵을 것이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 보지만, 둥글둥글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오로지 하는 이야기는 안 된다.

역시 포커페이스 중국인의 후예답다.

다른 곳을 알아보는데 리틀 홈은 여기보다는 좋지만, 하루 500밧으로 살짝 비싸고 또 요금도 반 쓰쓰처럼 그런다니 다르게 쓸 방법이 없었다.



신쌘은 싼 집답게 방 내용도 그 가격에 어울리는 집이고.



그래서 그냥 여기에서 400밧 씩 하루하루 계산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아니 주인이 정해진 규칙에 따른다.

부엌을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것도 안 된다 한다.

이렇게 나오면 여기서 요리를 해서 먹겠다고 프라이팬을 가지고 온 것이 미친 짓이 되어 가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 프라이팬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점심식사는 살레마(SALEMA)에서

인터넷 상에서 추천도 있고 별로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 널널한 우리가 가서 먹어보고 결정을 해 보기로 한다.



집사람은 닭고기 쌀국수, 나는 닭고기 볶음밥으로 약소하게 시동을 걸어 보는데 맛은 가격처럼 왠지 약소한 느낌.

쌀국수 30밧, 닭고기 볶음밥은 50밧으로 알고 시켰는데 나중에 계산을 할 때 100밧을 주니 30밧을 거슬러 주더군.

30밧과 50밧을 계산하는데 계산기가 등장하더니 그 실력인지 아니면 내가 가격을 잘 못 안 것인지 말이 서로 짧으니 확인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한 것보다 10밧이 싸니 따로 더 확인할 것도 없었지만.

이 동네는 평소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로 거의 모든 곳에서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호텔 사장이나 식당 사장은 영어를 내 수준으로 유창(?)하게 하지만.

그 유창함이란 주어 동사 목적어 이런 순이 영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 목적어만으로 동사는 가볍게 생략하는 그런 고급스런 경지의 영어를 말한다는 전설이 있다.

 

매쌀롱 마을 주민 되기

낮에는 그래도 제법 덥다. 그늘에 있으면 참을 수 있는 정도라서 무지막지한 치앙라이 더위에 비하면 야 애교 수준이지만.

더위가 좀 누그러진 시간에 동네 구경에 나서는데 바로 옆에 교회가 있었다.






뭔지 행사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 보니 대만 타이베이의 한 교회에서 의료봉사를 나와 있었다.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우리 집사람은 그 동안 아팠다는(?) 어깨 치료를 받아 본단다.

예배당 건물 안에 차려져 있는 간편한 시설이지만 그래도 흉내 낼 것은 다 내고 있더라고.

우선 신분을 확인하고 진료과를 선택한 다음 진료를 받는 것인데, 우리나라로 하면 양방이 아니고 한방으로 외과와 내과 진료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이 진료하는 곳에서 외과를 지정받아 간단한 문진을 받는다.

온 몸이 다 아프고 특히 어깨가 심하다는 집사람의 말을, 온 몸이 다 아프다는 것은 생략하고 어깨만 아픈 것으로 정리해서 진료를 받는다.



침을 맞을 건가 물어서 침뿐만 아니라 부황도 뜨고 싶다하니 좋단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은 무료 진료를 매쌀롱에 와서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예배당 이곳저곳을 구경하는데 벽 한 구석에는 우리나라로 하면 건축헌금을 한 명단이 붙여 있었다.

말(馬)이 많이 쓰여 있던데, 설마 말이 헌금을 낸 것은 아닐 테고 말레이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헌금을 한 것이 아닌 가 싶은데 이 교회 목사님은 영어가 짧다고 나를 설설 피해 다니는 눈치였다.

나도 못하기는 매일반이구만.

예배당 앞에는 거창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새로 짓고 있는 예배당이란다.

이 동네에서 한 달 정도 살 예정이라서 일요일 예배에 참석한다고 고지를 하는 것으로 예배당 일정은 마무리.

이 선교 팀은 이틀째로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던데, 이 국민당과 관계가 깊던 마을과 대만 선교 팀의 연결은 묘한 여운이 남았다.

예배당 안에는 중국어 학교 졸업식이 오늘 있었다고 하고 이 선교 팀이 그 행사에 함께 했단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졸업이라고 하지만 중국은 필업(畢業)으로 쓴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태국군인은행(TMB)이 있는 중심가 찾아가 보기

교회를 나와 이 동네 중심가로 이동을 하는데 아카족 사람들이 무리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왜 그리 꾀죄죄하고 키는 작은지 한 눈에 봐도 없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온 몸에 두르고 있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는데 굴러온 돌인 중국인들에게 밀려 이들에게 몸을 빌려주어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 몸에서 풍겨 나온다고 느끼는 것은 과한 것인가.

한 때 국민당 군대를 이끌다 중국 대륙에서 쫓겨 이 동네를 이룬 단(段)장군이 잠든 묘역 근처는 리조트로 개발이 되어 있었지만, 옛날 승용차를 빌려서 이곳에 왔을 때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시간인데 상가는 거의 철시 분위기라서 가볍게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저녁 먹으러 다시 행차하다.

오늘 저녁은 운남면교관에서 쌀국수를 먹기로 나섰는데 그만 가보니 끝났단다.

빰..빰..빰..빰..빰..빰..

우리를 본 주인은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면서 내일 아침 7시 반에 다시 만나잖다.

그래서 그 근처에서 찾아보기로 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혼자 애쓰는 듯한 국수집이 있어서 팔아주기로 하는데 통하는 말이 전혀 없었다.

무슨 말인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얼만지 알지도 못하고 별 맛도 없는 국수를 얻어먹다시피 했는데 가격이 한 그릇에 40밧이란다.

아마도 10에서 20밧은 할아버지 팁인 듯싶은데 말 못한 값으로 쳐야지 별 수가 있나

그리고 돌아오는데 이런 세상에.

중국 운남성 번호판을 단 차량 두 개가 지나가고 있더라고.

중국차들이 이렇게 태국에도 올 수 있나 보다.

물론 차량 성능이 좋아 보이질 않아 이 동네 고개에 고전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동네가 어디라고 중국차가 이곳까지.

이렇게 남 동네는 그 변화가 찬란한데 우리나라는 남 나라 뉴스 첫머리부터 채울 정도의 전쟁 관련 사연만 뿜어내고 있으니 참.

북이나 남이나 지도자라고 뽑힌 인간들 수준이 별로 달라 보이질 않으니, 남 동네 사람들이 걱정인지 아님 전쟁 특수에 대한 기대인지 그렇게들 많이 하는 것 같다.

저녁 해가 지니 이 동네는 완전 우리나라 가을 분위기이다.

바람도 그렇고 풀벌레 소리까지 그러니.

참 좋은 곳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