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만들기 위한 재료 구입하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해가 뜬다.
아침 해가 뜨면 어김없이 우리 부부는 아침 시장에 간다.
여기까지는 판에 박힌 듯한 일과이고.
그 다음은 응용편인데, 오늘은 김치와 오이소박이를 만들어서 어제 만난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홍콩 레이디 이렇게 연합군이 파티를 하는 것이다.
그 준비를 위해 시장에 들어서면서 집사람이 뭔가를 보고 좋아 했는데 그 주인공은 부추였다.
부추가 있으면 오이소박이가 가능하단다.
일단 김치 재료를 구입하는데.
배추, 파, 삼채, 양파, 마늘, 오이, 갓, 소금, 액젓이 필요하다면서 하나씩 주어 담기 시작한다.
채소 값은 적으면 5밧, 조금 많다 싶으면 10밧으로 그치니 정말 부담이 없다.
소금을 사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조금 설명이 필요했지만 눈치 빠른 주인이 챙겨주어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로티 할아버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어제 하루 사먹은 것인데 오늘은 없으니까 무척이나 아쉬움이 컸다는 거.
길가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 사람도 소수민족이지만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도 소수 민족이 많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고유 의상을 입고 온 사람도 많지만 않지만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데, 일단 주 종족은 아카족이고 뭐 잘 알지 못하는 종족이 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목선에 붉은 띠를 두른 듯한 의상을 입은 미엔족(중국에서는 야오족) 아줌마가 한 사람 눈에 띄었다.
어이구 반가워라.
그런데 한 바퀴 돌고 오니 부추가 다 팔리고 없어서 오이소박이는 그만 취소가 되고 오이 무침으로 메뉴가 바뀌게 되었다.
아침은 중국식 밀가루 튀김과 두유로
오늘 아침부터 이런 것으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중국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침으로 먹는 요우티엔과 콩국인 두유이다.
먹어보니 밀가루 튀김도 괜찮았고 두유도 달달한 것이 맛이 좋았는데 더 매력적인 것은 가격이 15밧이라는 것이다.
싸도 너~~~무 싸다.
그래서 이 동네가 자꾸만 좋아진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어제 만났던 일본 청년을 만났는데, 이 친구에게 이따가 보자고 하니 오늘 치앙라이로 돌아간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마다 도코카데(또, 어딘 가에서)
참 울림이 있는 짧은 말이었다.
이런 멋진 말이 일본어에 있다니.
그러고 그 덜 떨어진 친구에게서 나오다니, 참 멋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점심은 운남면교점이다.
이 동네 추천 음식점인 운남면교점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는 쌀국수이고 집사람은 만둣국인데 합하여 60밧.
이러니 이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겠다.
김치 만들기
점심을 먹고 나서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신샌 게스트하우스 안에서 사치코 상이 우리를 급하게 부른다.
오늘 김치 파티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가만 들어보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었다.
아카족 한 마을에서 어제부터 결혼식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데 오후에 그곳에 가게 되었다는 것인데, 우리도 가면 안 되냐고 물으니 물론 좋단다.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단순히 시간을 조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같이 파티를 하기로 한 홍콩 레이디와 한국 총각과 처녀들에게 의견을 구하여야 되는 것이었다.
찾아가서 의견을 물어보니 뭐 별로 할 것이 없는 동네에서 할 일을 만들어 준다는 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어?
당연히 모두 오케이.
해서 3시에 만나 김치를 만들어 나누고, 4시에 결혼 잔치가 벌어지는 곳에 함께 가기로 한다.
3시까지 빈둥거리다 슬슬 김치 만들기 준비를 하는데 먼저 해야 될 일은 김치 숨죽이기.
그런데 숙소 사장 네 부엌을 빌려 일을 하는데 안주인이 꽤 신경을 거스르게 한 모양이다. 반 쓰쓰 사장은 살갑게 모두에게 대하는데, 안주인과 아이들은 장사 마인드가 거의 빵점에 가깝다.
그래도 그러니 어쩌겠어.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강행을 하여 김치와 오이소박이를 완성한다.
이를 먹어 본 홍콩 레이디는 시큰둥한 반응이고 일본 댁만 일본인 특유의 호들갑을 떨면서 맛이 있다는 반응이었다.
어쨌든 이들 덕분에 마늘도 까며 오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참.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우리 숙소에는 일하는 아줌마가 한 명 있는데, 생각할수록 종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주인집 설거지에 숙소 침구 바꾸기, 화단 물주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도대체 얼마를 받기에 저토록 열심히 할까 궁금해지기까지 하였다.
태국에서 가정부는 신분차가 확실하다더니 이집을 봐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아줌마는 소수민족 출신 같은데, 굴러들어온 돌 중국 사람들이 박힌 돌 이 동네 소수민족을 부리는 것을 보면 인생사라는 게 참.
지니고 있던 일본 책을 시집보내다.
언젠가 사 놓고 읽지 않았던 책 두 권을 이번에 가지고 와서 읽으려 했는데, 와서 펼쳐 놓고 보니 이때까지 읽지 않고 그냥 둔 것이 새삼 이해가 되었다.
그냥 가기고 다니면서 무게로 고생하느니 필요한 동포가 있으면 주라고 사치코 상에게 건내 주었다.
너무 고마워하면서 받긴 하던데 일본인 특유의 본심과 겉모습이 다른 것을 알기 때문에 사치코 상도 앞으로 이 책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잘 살거라. 애들아.
결혼식 잔치에 가기
하여튼 서로 시간을 조정을 한 결과 4시에 아카족 결혼식 잔치에 가기로 하는데, 사치코 상이 자기 친구가 그 마을로 가던 차에 우리를 태우고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보니 모두들 당연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일본인 친구가 누군가?
답은 그 동네에 터 잡고 살고 있는 일본인이 있단다.
아니 아카족 마을에 눌러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
그렇단다.
어쨌든 한중일 연합군 6명은 그 친구가 타고 들어가는 트럭에 함께 타고 그 마을로 가는데, 반은 콘크리트 포장이고 나머지 반은 비포장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마을 이름은 매찬룽(MAE CHAN LOUNG)이라는 마을이었어.
분위기는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라후족 마을과 비슷해서 이곳도 산꼭대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동남아 산마을하면 생각나는 집 구조에 아래에는 닭이 병아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그런데 여기는 돌아다니는 돼지는 없었다.
나중에 물어 보았더니 아카족은 돼지는 좀 멀리 떨어진 곳에 가두어서 기른단다.
위생 개념이 다른 부족과는 좀 달라 보이는데, 이들은 이들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렇지만 청년들이 모여서 컴퓨터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면 오지 탐험이라는 것은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이 확인이 되더군.
하여튼 비포장 덕에 오랜만에 먼지를 넉넉히 먹었는데, 어쨌든 도착해 보니 일본이 두 명이 먼저 와 있더군.
일본 처자와 우리와 길에서 많이 만났던 일본 노인네인데 방콕에서 살다가 아마도 더워지면 이곳으로 와서 지낸다는 것 같았다.
이 분은 아카족 말도 조금은 할 수 있어서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꽤 있었다.
이 동네는 어제 방문한 동네와는 더 문명과 거리가 있는지 강남 스타일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그저 조금 아는 것 같았고.
어쨌든 이들과 합쳐져 우리 일행은 그 동네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린 신부와 신랑이 어우러져 먹고 노는 그야말로 잔치가 벌어졌는데 여자 노인들은 아카족 전통 복장이고 남자들은 그냥 평상복 차림이었다.
아카 복 복장은 치앙마이나 치앙라이 야시장의 단골 메뉴라서 새로운 것은 없었는데, 어쨌든 돈벌이를 위한 복장이 아니고 공식 행사에서 입은 복장은 좀 의미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카족 의상은 이미 식상한 탓에 나도 시큰둥한 생각이 들더군.
그러나 시커멓다 못해 먹물을 바른 듯한 발이나 손을 보면, 이들의 삶이 그다지 녹녹치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더군.
여기서 눌러 사는 일본인은 유지 상으로 나와 동갑이었다.
이 친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는데, 확실히 언어는 확실한 무기라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더욱 흥미를 끈 것은 중국어가 이 동네 공식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국인 마을이다 보니 돈줄을 잡고 있는 이도 중국 사람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중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덕분에 홍콩 레이디는 힘들이지 않고 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앉은 식탁에서 나눈 언어는 중국어, 태국어, 일본어, 한국어 그리고 아카어까지 참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갑은 역시 중국어였다는 거.
중국 참 대단한 나라이긴 하다.
신부가 양어머니라는 집에 방문해서 환영을 받는 모습까지 따라가서 확인을 해보곤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 일행 한국인 청년들은 먼저 내려간다고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참 늦어진 저녁 식사 자리는 이 동네 촌장과 함께 했고, 여기에서 나온 음식의 장원은 시바 상의 말로는 우리가 준비한 오이 무침이었다는데, 이 말은 진심이었을까 아님 그냥 해 보는 소리였을까?
궁금하면 직접 500원을 가지고 이 동네에 와서 물어 보시라.
이래저래 시간이 늦은 저녁을 얻어먹고 주변에 깜깜해져서야 신랑 형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매쌀롱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돌아 올 때는 그냥 돈 안 받고 태워준다고 하기는 했는데 어디 그럴 수가 있나.
한 사람 당 20밧씩 냈는데 이는 그냥 해보는 소리로 원래는 한 번 나갈 때 100밧을 준다하여 인원이 4명뿐이었던 우리 일행은 부족분은 유지 상이 더해 주었다.
이 돈을 주고 싶었지만 잔돈이 없어서 그냥 좀 찜찜한 상태로 돌아 왔는데 어떡하든 돌려 줘야 되겠지?
당연히 가운데가 아까족 신부 <이 사진은 내 소유가 아니니 옮기거나 하지 마셈>
별난 경험을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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