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멀리 걸어본다.
태사랑 지도에서 특별히 산책길로 지정된 길이라서 정말 특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 왓 프라 따 메옌으로 가는 길을 따르다 왼쪽 왓 스리 돈 차이(WAT SRI DON CHAI) 이정표가 있는 길로 들어서면 되는데, 초입부터 그 분위기가 심상찮다.
작은 높낮이 언덕으로 되어 있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되겠지만. 왼쪽으로 강과 리조트들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여 상당히 매력적인 길이다.
가끔씩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로 한적한데, 이런 길을 따라 걷은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새삼스레 느낀다.
왓 스리 돈 차이까지 입구에서 2km라고 입구 표지판에서 본 것 같은데, 실제 그 거리를 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밭인지 논인지 공터로 변한 곳을 지나면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 마을이 반 위앙 느아(BAN WIANG NEAU)이다.
이쯤에서 왓 스리 돈 차이가 나오고 또 공항 시장 쪽으로 가는 길과 만날 듯 한데, 동네 한 가운데다 보니 이 길인지 저 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또 집사람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오늘은 여기서 그만 철수하기로.
지나가는 차를 불러 세워 시내까지 태워달라고 하니 별 말도 없이 좋단다.
차를 산 지 얼마 안 되는 듯 아주 새 차인데, 이 차의 주인공은 빠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단다.
동네를 빠져 나오니, 어제 서낭당 비슷한 분위기나 나던 장소가 바로 나온다.
실제 걸어도 거리를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시내 복판까지 편하게 데려다 준 간호사 아가씨의 호의로 위앙 느아 동네가 더 없이 좋아졌다.
이런 착한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면, 다른 것이야 볼 것도 없을 것 같아서리.
아무튼 이 길은 정말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물론 햇살이 뜨거워지는 아침 시간이나 누그러지는 오후 시간에만 그렇겠지만.
겁도 없이 한 낮 땡볕 아래에서 이 길을 산책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기 없기.
우리를 지금 숙소로 이끌었던 한국인들이 떠난단다.
세 번에 걸친 바비큐 파티도 주선하고 하던 사람들이고, 퍽 살갑게 대해주었는데 떠난다니 아쉽다.
먼저 간 청년들과는 다시 끄라비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내가 강력하게 추천한 끄라비인데, 이들이 간다니 나도 가고 싶다.
끄라비.
반 파이 앞길은 우리가 묵고 있는 팜 하우스 뒷문이 있는 곳과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서 있는 가게들은 유난히 무슬림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빵집 GO "O"도 그렇고 그 옆 옷 매장도 무슬림들이 주인이다.
이곳 무슬림들은 전통을 많이 고수하며 사는 것 같은데, 그 뿌리가 어디서부터 이어졌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가게 앞 정문 위에 걸린 아랍어 코란 문구는 그들 신앙이 한참 동안 이어질 것 같은 생각이 팍팍 들게 한다.
할 일이 없으면 아야 서비스를 가서 죽치기.
치앙마이에서 송크란을 끝낸 젊은이들이 빠이로 많이 넘어 오는 모양이다.
오늘도 많은 한국 청년들이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왔는데, 어찌하다가 여행 중에 연결된 남녀 커플은 자연스럽게 룸 쉐어로 이어지는 것이 공식인 듯.
이러한 일들은 나 같은 세대에게는 좀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인데, 뭐 세대가 달라지면 생각하는 방법도 달라질 테니.
오늘 점심은 별난 곳에서 별난 것을 먹어 보기로,
주인이 중국계일 것 같은 오랜 삘 건물의 식당에 가서 주문을 했더니,
다른 것은 없고 온리 이 국수뿐이란다.
딱 나오는데 왠지 한약을 받는 느낌?
닭은 오골계 계통인지 아님 국물이 새카매서 그런지 온통 블랙.
먹어보니 맛은 아주 못 먹을 맛은 아닌데, 집사람은 맛이 없단다.
나도 다시 먹어보고 싶은 맛은 아니었으니 다시 올 일은 없겠다는 거.
위따야칸 중고등학교 옆에 공공도서관의 안내판이 있어서,
오후 시간 보낼만한 곳인지 한번 알아보려고 가 보았는데.
이렇게 문을 닫아 놓았더라고.
오늘은 쉬고 내일은 아침에만 연다는 것인지.
우리같은 문맹자에게는 통 알 수 없는 안내문이 있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고구려 시대쯤 사용되던 컴퓨터가 있는 것 같고, 책도 별로 보이질 않는다.
문화의 힘은 이 정도로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는가 하다가 생각하니 우리나라 읍단위 도서관은 어떨까 생각하니 당당하게 우리가 낫다고 말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학교 안을 거닐러 보는데,
전체적으로 많이 낡은 느낌이 드는 건물들이다.
화장실도 우리나라 옛날에 보던 푸세식이고.
학교만은 우리나라가 훨씬 앞섰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만족도는 알 수 없는 것이겠지만.
한쪽에는 일본에서 기증한 건물이 보인다.
일본애들 이 나라에 차 팔아먹은 것만 보면, 더 많이 해 줘도 될 듯싶다.
지나가는 차량만 보면, 이 나라는 일본이다.
오다가다 처음 보는 꽃들을 찍어 보기로 하는데,
확실히 이렇게 주변을 잘 보고 다니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쁘기는 하지만 향기는 없는 놈들이다.
드디어 머리를 깎는다.
대부분 미용실이 놀던 데, 허름한 이 집만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남자 머리 깎는데 요금은 100밧이란다.
처음에는 비싼 감이 들었지만, 막상 깎기 시작하니 100밧이 그리 아깝게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 동네 내 단골집 아줌마가 세 명 깎을 시간에 나를 혼자 깎았으니.
참, 정성이 넘치고도 넘치는 이발이었다.
덕분에 옆에서 기다리는 우리 집사람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지만.
점점 더 채소 값이 싸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 시장에 갔을 때 웬만한 채소 묶음이 10밧이더니, 지금은 5밧이다.
건기라서 그런지 과일의 종류는 다양하지 않은 데, 그래도 오늘 처음 두리안이 등장을 했다.
두리안 킬러 우리 집사람도 숙성 정도가 아직 만족한 단계는 아니라서 사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과일 종류가 한 가지라도 새로운 것이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대신 숙소 값은 많이 오르는 듯 싶다.
우리 숙소도 계속해서 풀인데, 다른 숙소도 그러한 듯.
아마도 치앙마이에서 송크란을 끝내고 많이들 넘어와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 한 주간은 그 영향이 있을 것 같나네.
우리 숙소도 보통 400밧씩 받다가 요즘은 500밧을 받더라고.
고무줄같은 이 동네 숙소 요금이다.
채식 식당에서 파김치를 함께 먹으려다,
주인에게 한 소리 들었다.
다른 음식을 가져와서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못 알아 먹었는데, 결국 그 소리더군.
벽에는 알콜이나 고기를 가져 와서 먹으면 안 된다고 쓰여있기는 하더만, 파김치는 둘 가운데 뭐에 속하는 거여?
남 나라에서 사는 것이 그다지 만만하지가 않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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