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2013 여행

훼이남쿤(HUAINAMKHUN)으로 떠난 1박 2일 - 2

정안군 2013. 6. 24. 08:43

한밤중에 방을 옮겨야만 했던 사연은 과연 뭘까요?


그것은 바로 쥐였습니다.

언젠가 진열장 서랍으로 쥐 한 마리가 들어갔다가 그만 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은 것이래요.

그리고는 그 안에서 푹 썩었으니 냄새가 오죽했을까요.


어쨌든 옮긴 방은 그냥 안에 있기 심란한 정도였습니다.

쥐나 바퀴벌레가 사는 집을 우리가 빌린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마침 저건너 교회에서 찬양 소리가 나길래 심심하기도 하고 방에 있기도 그래도 가 보았습니다.



아침에 찍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중국 마을에 있는 교회로 공용어는 중국어더군요.

신자들은 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묵고 있는 산족 마을 아이들이 대부분이구요.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마침 싱가포르의 한 교회에서 단기 선교팀이 와 있었습니다.

이들이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이들만 열정이 넘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산족 아이들은 시큰둥한 모습이었어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들은 중국계가 아니라서 중국어를 잘 모르는데 중국어로 된 찬양을 하니 그럴 수 밖에요.


왠 사람들이 뒤에 들어와서 중국 찬양을 열심히 듣고 보고 있으니 우리가 누구인지 상당히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한국인이라고 하니 싱가포르 단기 선교팀도 놀라고, 이곳 중국계 목사님도 많이 놀라더군요.


길게 이어지던 찬양은 10시가 넘어서 간신히 끝나고 우리는 싱가포르 단기 선교를 이끌고 온 목사 부부와 차를 앞에 놓고 많은 대화를 합니다.

우리보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더군요.


아마도 찬양이 중국어로 이루어지는데, 열심히 듣는 것을 보고 그렇게 물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갈 곳이 없어서 그렇게 진지하게 앉아 있던 것인데. ^^


내일 일요일 주일 예배가 10시 30분이라서 해서 참석하기로 하고, 밤 늦게 숙소로 돌아 옵니다.

너무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정이 안 가는 방으로 들어 와서 잠을 청하는데,


다행히 보기보다는 편한 숙소였습니다.

공기도 상쾌해서 잠도 잘오고요. 


아무튼 새 날이 밝습니다.


8시까지 우리를 데리러 ㅂ선교사님이 온다고 했는데 늦어지더군요.


사실 전날 낮에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타고 간 승용차에서 물건을 꺼내는 과정에서 두 ㅂ목사님들 싸인 미스로 그만 차 키를 차 안에 넣고 문을 잠근 것입니다.


물론 하루 자고 가기로 해서 어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오늘은 그 차 키를 어떻게 꺼내서 돌아가느냐가 오늘의 관건이 되었습니다.  ^^


어제는 별 수 없이 치앙라이에 있는 원로 ㅂ목사님 댁에서 예비 키를 전달받아 그것으로 차문을 열고 돌아가는 것으로 일단 결론을 낸 상태였지만, 이곳이 워낙 오지다 보니 변수가 있지 않을까 염려가 많이 되었죠.


그거야 시간이 가면 해결될 문제이고, 아침에 여유가 있어서 ㅂ선교사님의 자전거로 중국인 마을을 돌아 봅니다.



어제 잔치집에서 군의원을 만났었는데, 아마도 소수 민족 라후의 옷을 입은 사람이 그 사람인 듯 합니다.

기호가 5번인가요?



중국마을과 아카 마을 경계쯤에 있는 훼이남쿤 학교인데, 아마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같이 있는 듯 했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라서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지요.



아카족 마을 어귀에 있는 천주교회입니다.


아침 일찍 신자들 모임이 있던데, 예배 형식은 개신교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신부가 없고, 신자 대표가 모임을 인도한다고 합니다.

신부는 일년에 중요한 행사때나 모습을 보인다는군요.



이곳은 중국인 마을 입구쯤에 있는 아카족 마을입니다.


여기도 교회가 있더군요.

하여튼 이곳 저곳에 교회는 참 많았습니다.

대개가 우리나라 교회들이 지어준 것이랍니다.


그런데 아카족과 중국인 마을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렇듯 사이좋게 같이 있을까요?


도이 매쌀롱 마을도 그랬고 이 동네도 아카족 마을 중심부에 중국인 마을이 자리 잡고 있군요.

이 아카족은 중국에서는 다랭이논을 일군 하니족입니다.

이 하니족은 마음씨가 고와서 자기가 일군 논을 다른 민족이 탐내면 그들에게 넘겨주고 딴 곳으로 이주해서 다시 다랭이논을 일구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착하고 친화적이어서(?) 자기 마을 한 가운데 중국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해도 그냥 둔 것일까요?


어쨌든 이들과 공존한 관계로 도이창 커피하면 아카족이 연상될 정도로 커피와 차를 통해 부를 일구었습니다.


착하게 산 아카족에게 내린 복일까요?



이 아이들, 어딘가 부지런히 가던데 교회에 가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어느 민족이냐고 물으니 아카라더군요.


이들도 내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많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중국인 마을 입구에 세워진 문입니다.


중국 전통 문과는 모습이 다르지요.

아무튼 이 산지에서 조금있는 평지를 이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마을을 세웠네요.


마을 이름은 명랑촌이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쫓겨난 설움은 잊어 버리고, 명랑하게 살자고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요?



여기가 중심거리입니다.


도이 메살롱과는 많이 비교가 됩니다.

거기도 큰 동네는 아니지만 관광지로 많이 알려져서 외지인들이 많이 오는데 비해, 이곳은 외지인의 출입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집들의 모습과 집 기둥에 써붙인 한자는 이들의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어제 현지 교회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보니, 자기도 중국 국민당 군인의 아들이라더군요.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가 중국 국민당군이었다는 것이지요.



중국인 마을답게 한자로 마을 이름을 써 놓았습니다.

여기는 아마도 큰 공회당인 듯 합니다.



동네 어귀에는 이렇게 문주란이 잡초 대접을 받고 있더군요.

이 동네에서는 그냥 들풀에 불과합니다.



이곳도 커피 생산지입니다.


우리도 커피 콩을 사기도 했지만, 이곳의 커피 콩 품질이 상당히 좋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 이곳에서 가지고 간 커피 콩으로 커피를 끊여서 마셔 본 다음  그 맛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지요. ^^



한참 이렇게 커피 콩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한참 커피 원두가 생산된다는군요.

커피는 이 마을의 부를 일군 주인공입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차입니다.


여기는 마을 중심부에 있는 차공장입니다.

중국 운남성에서도 차 공장을 본 적이 있지만, 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차는 대개 대만으로 수출된다고 합니다.


커피나 차나 모두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뭔가 우리도 이곳에서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뭘까요? ^^;;





차 공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우리에게 차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주더군요.

무슨 말인지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성의가 고마워서 알아듣는 채 했네요.

하긴 차만든 과정은 뭐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요.



명랑촌 공회당 아래는 이렇게 작은 시장이 아침마다 서더군요.


물건이라봐야 근처 아카족이나 산족들이 재배한 농산물입니다.

당귀도 있고 버섯도 있고, 애호박도 있었습니다.

값이야 엄청나게 쌌지만, 정말 그림의 떡이고 우리야 잔치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니 이런 것이 필요가 없었지만 웬지 아깝기는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에서 살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이런 물건을 살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어서 물건의 양도 얼마 안 되는 모양입니다.

이것만 봐도 도이 매쌀롱의 마을과 많이 비교가 됩니다.


이렇게 구경하던 중에 ㅂ선교사가 오셨습니다.

결혼 잔치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군요.

교회도 가야하고 참 바쁜 몸이었습니다. ^^



일단 결혼 잔치집에 갑니다.


라후족 신부는 아카족 신부 복장으로 갈아 입었더군요.

앞 이마에서 가른 머리가 아카족 머리의 특징입니다.


다른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그리고 참석한 중국인 마을 교회의 예배.


찬양을 하는 친구들은 이곳에서 기숙하는 어린이와 학생들입니다.

태국어로 찬양을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일행에게도 특송을 부탁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은 잔치집에 남아 빠지고 4명이서 열심히 불렀습니다.

처음 듣는 한국어 찬양에 감동을 했는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혼자(?) 신이난 싱가포르 교회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옆 청년은 이 교회 목사님 아들인데, 중국어를 아카족 언어로 통역하는 중입니다.

이날 중국어와 아카족 언어를 원없이 많이 듣습니다.



예배 후 찬양을 한 팈이 기념 촬영을 합니다.


우리 일행 4명입니다.

교회 건물이 상당히 큰데 말레이지아나 싱가포르 중국인 교회에서 후원을 많이 한다는군요.



교회에서 점심을 제공해서 점심 식사를 합니다.


쥬러우(돼지고기) 지러우(닭고기)가 주입니다.

원래는 결혼 잔치집에서 먹어야 하는데, 참 오라는 곳도 많고 가야 될 곳도 많은 하루였습니다.


그리고는 싱가포르 팀들이 치앙마이로 갈 때 우리도 그 차를 함께 타고 산을 내려 간 다음 거기서 완행 버스를 타고 치앙라이로 가기로 했는데, 뭔가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이들은 우리를 태우지 않고 자기들만 그냥 가버립니다.

이게 남나라 말로 이야기를 할 때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 ㅂ선교사가 이 중국 교회 목사님에게 말을 확실히 전달했다는데, 서로 자기 생각대로 생각하고 본인도 본인 생각대로 상대가 알아 들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은 승용차로 이 엄청난 길을 내려 가는 것은 힘든 일이라서 운전자만 타고 내려가기로 하고, 그것도 차 키를 전달 받은 다음에, 나머지 사람들은 싱가포르 팀들 차를 얻어 타고 내려 가기고 한 것인데 펑크가 난 것이지요.


할 수 없이 큰 길로 나가 요행히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얻어 타려고 나갔더니, 픽업 트럭 한 대가 산을 내려 간다고 합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이 동네에 들어 온 청년들이 치앙라이나 치앙마이로 가려는 모양이었습니다.


어쨌든 원로 ㅂ목사님은 차 안으로 들어 가시고 우리 부부는 젋은 애들과 짐칸을 타고 산을 내려 가는데, 엄청난 고개에 엄청난 먼지였습니다.


어휴~~~


그런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우리가 올라 올 때의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다르더군요.

아마도 공사중이라서 못 갔다는 길이 부부적으로 개통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공사중이라고는 하지만 길도 넓고 상태도 좋아서 우리를 태우고도 별 일없이 내려 올 수가 있는 길었네요.

이게 뭐야~~~


아무튼 엄청난 고갯길을 내려와서 그 트럭 운전사 아저씨와 잘 교섭을 하여 그 차를 치앙라이 구 터미널까지 올 수가 있었어요.

다 와서 요금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달라고 해서 조금 신경전이 있었지만 대충 잘 처리하고요.


구 터미널에서 라자밧 대학 구내로 가는 썽테우에 원로 ㅂ목사님 부부를 태워 드리는 것으로 우리 임무도 끝냅니다.


엄청난 1박 2일이었습니다.


그 뒤 사연도 많았지만, 이것은 추억거리로 남기렵니다.


신랑 신부 사진과 동네 아이 사진은 현상을 해서 전달을 합니다.


아마도 곧 전달 받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든 아카 신랑과 라후 신부...........


행복하게 잘 사셔~~~~~~~~~~~~~~


그리고 마지막 써비스로 훼이남쿤 대략 위치를 알려 드리지요.

지도에서 S, E로 표시된 곳이 훼이남쿤 지역입니다.

대략 1,000m정도되는 산지지요.


커피로 유명한 도이창 지역과 같은 산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