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일상

[치앙라이] 내 친구 날린의 집을 다시 방문합니다.

정안군 2014. 2. 17. 22:26

 

오늘 내가 속해 있던 도교육청의 인사 이동이 발표되었습니다.

누가 여기서 저기로 가고 하는 것은 사실 별 관심이 없고, 이번에는 누가 명퇴 대열에 합류하는지가 내 관심사였습니다.

전에 속해 있던 학교에서는 이번에 두 명이 명퇴를 하였습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이고, 이번에 낼 줄 알았던 친구는 명단에 없네요.

이번에 한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일까요?

 

그래서 작년에 몇 명이 했나 확인을 해보니 120명이었네요.

올해는 달랑 52명.

희망한 사람은 지난 해보다 더 많다고 했는데, 인원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을 보니 많이 잘렸는가 봅니다.

아마도 내 친구도 그렇게 잘리지 않았나 싶네요.

 

사실 퇴직원을 냈다가 잘리면, 김이 많이 새지요.

내가 퇴직할 때도 그 전 해에 많이 잘렸는데, 높은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들인데 잡아두면 뭐하냐고 해서 내가 하던 해에는 희망자 모두가 처리가 되었답니다.

사실 맞지요.

마음이 떠난 사람을 잡아 놓으면 피차 떨떠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돈이 우선인지라 이번에는 에산이 많이 책정이 되지 않아 많이 받아 드릴 수가 없었나 봅니다.

일찍 교직을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사연은 퇴직 수당이 줄어 드느니, 연금도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바뀐다는 하는 이야기도 퇴직을 결심하게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교직에 대한 염증이 우선일 겁니다.

나도 좋은 기억도 있지만, 나중 몇 년 앞두고 아이들에게 당한 쓰린 생각을 하면 일찍 나온 것에 대한 후회는 지금도 전혀 없습니다.

역시 늙으면 얼른 얼른 빠져 주는 것이 좋은 듯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몸은 60대이지만, 생각은 80대인 닭마담이나 그 주변에 또아리 틀고 있는 늙은 내시 부대를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참 한심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인데.

죄송하지만 창의력이 세상의 무기인 시절에 늙다리 머리에서 무슨 창의력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는 콧방귀나 꾈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내란 죄니 뭐니 하는 타령을 하고 있지요.

참으로 암담한 시절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보내고 있습니다.

육이오 때 적대국이었던 중국의 관광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더군요.

북쪽은 남쪽의 위협을 울겨서 지 정권 유지하는데 써먹고, 남쪽은 수수깡 도사만큼이나 시원찮는 북한의 위협을 앞세워 늙은이들을 집결시켜 대가리 수로 정권을 잡고는 그 어이없는 정권을 유지하는데 써먹으니.

참 꼬라지 하고는.

 

나는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방법이 시대에 떨어진 사람은 얼른 적응을 하든지, 아니면 얼른 나와야지요.

옛날 두둘겨 때리던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면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나도 거기에 적응이 안 되어 얼른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역시 인생살이에 정답은 없겠지요.

내 생각이 정답일 수만은 없답니다.

 

 

 

 

 

 

 

 

 

 

 

 

 

 

여기 나말고 일직 교직에서 나온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내 태국 친구 날린입니다.

방콕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빠야오에서 20년간 미술을 가르치다가 조기 퇴직을 하고는 지금까지 람남콕 국립공원 입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예배에 나오지 않아 오늘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날린의 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니 멀리 가지는 않고 바로 올 것 같아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조각 중인 작품도 구경하며 일단 기다려 보는데, 오질 않더군요.

그래서 오려고 하는데, 귀에 익은 탱크 소리와 함께 날린의 차가 등장을 합니다.

날린 혼자가 아니고 여자도 따라 내리던데, 날린이 '휀'이랍니다.

그게 여동생인지 애인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좀 어색한 분위기였어요.

아무래도 여자 친구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런 관계 때문에 전 처와 이혼 소송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나중에 태국어 선생님에게 물어 보니 '휀'이 여자친구라더군요.

뭔가 뒷 맛이 남는 만남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빈 집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안에서 날린의 친구 윅끄롬이 나오네요.

뭔가 아다리가 안 맞는 날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어이가 없던...

 

아무튼 집 안팍은 날린의 작품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습니다.

지금 진행중인 것도 있고요.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사정은 어떤지 몰라도 집 부근의 풍경은 참 좋았습니다.

내가 빼앗아 살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사람들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 수는 없겠지요.

그냥 좋은 면만 보고 사는 게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 하루였답니다.

 

아참, 어제 일요일 날린은 그 여자와 미얀마 티칠렉에 관광가느냐 못 왔다다군요.

따찌렉이 아니냐고 하니 타칠렉이랍니다.

 

혹시 태국에서 따찌렉에 가실 분들은 타치렉으로 발음하시길...

 

날린을 만난 김에 그동안 배운 태국어를 써먹어 봅니다.

역시 태국어도 성조 때문에 쉽지 않네요.

내가 열심히 말을 해도 날린은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 듣지 못하고, 날린 여자 친구는 태국식 영어로 나에게 말하고..ㅎ

참으로 남 나라 말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저녁에 집사람이 시장에서 딸기를 사 왔네요.

꽤 비싸답니다.

500g에 100밧이니, 우리 감각으로는 만원인 셈이지요. ㅎㅎ

그래도 노지 딸기라서 우리나라 물탱이 딸기와는 맛이 다르네요.

싱싱한 단단함이 있습니다.

모처럼 집딸기를 먹는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