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협은 AAA급 관광지.
그럼 중국 관광지 등급 AAA이며, 입장료가 30원씩이나 되는(?) 홍석협을 보시지요.
홍석협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운대산 홍석협만 나오더군요.
유림의 홍석협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어요.
나는 운대산을 가본 적이 없으니, 이 유림 홍석협과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운대산 입장료와 다르고 그 다른 만큼 규모도 다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운대산 홍석협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에 비해 (좀 학술적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이라고나 할까요), 이곳 홍석협은 온통 불상을 조각한 암굴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것도 큰 차이인 듯합니다.
여기는 인문학에 가까운 구경거리라는 표현이 어떨지. ^^
차라리 유림 홍석협은 운대산 홍석협보다는 낙양 용문석굴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규모나 크기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만.
물론 상상입니다.
나는 용문석굴도 본 적이 없으니. ^^
아무튼 정문을 통과하니 절벽 틈으로 길을 만들어 놓아서 간신히 2명 정도가 교행할 수 있는 넓이입니다.
물론 일방통행이라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좀 좁은 것만은 사실이지요.
분위기는 하천을 중심으로 양쪽은 이름 그대로 협곡입니다.
절벽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시작은 태산에서도 볼 수 있는 글씨 잔치입니다.
벽에다가 일정 부분을 정리한 다음 글씨를 써 넣은 것이지요.
붉은 사암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파내고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을 듯 보입니다.
우리나라 석굴암이 대단한 것은 이런 사암이 아니라 화강암으로 석불을 만든데 있다고 하더군요.
일단 돌의 단단한 정도가 다르다네요.
.
이런 글씨 잔치가 끝나면 석굴암들이 이어집니다.
말 그대로 석굴에 암자가 있는 것이지요.
안에는 그다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보살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나마 보존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 협곡 안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공을 해서 자연 상태 원래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지만, 가끔씩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도 남아있기는 했답니다.
어떤 굴에는 누워계시는 부처님도 계시고, 또 어떤 굴에는 태극 모양이 있는 천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석굴암을 언제 연결한 것인지,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한 통로로도 한참 이어지고요.
모여라 꿈동산 스타일의 보살도 계시네요.
이렇게 이어지는데,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이런 석굴암이 이어지다가 다리를 건너면 반대편은 다른 분위기가 됩니다.
여기는 석굴암은 없고 거의 글씨 자랑입니다.
다리 위에서 보면 강이라기보다는 조금 넓은 냇가 정도인데, 이 근처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드물어서인지 물놀이 하는 사람의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건너편에서 보면 석굴암의 모습이 잘 보이지요.
어떠신가요?
구경거리로 괜찮나요?
저는 솔직히 그냥 그랬습니다.
냇가에 텐트를 쳐 놓고 노는 가족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들은 후문으로 들어와서 후문을 지키는 경비와 뭔가 숙덕거린 다음 그냥 들어가더군요.
아마도 이 동네 사람이고 그래서 공짜인 듯.
후문 쪽에는 멋있었을 자연 석벽에 인공 담장을 쌓아 올린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타깝네요.
옛 성터가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제 진북대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돌아서 갑니다.
가다가 보니 아무래도 성벽의 흔적 같은 것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잘 찾아보니 이런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네요.
쉬울 이 이마성일까요 바뀔 역 역마성일까요?
아무튼 성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올라가서 보니 이런 성벽 잔재가..
멀리 떨어져서 보니 확실한 성벽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역시 변방은 변방이었네요.
물론 명나라 때까지 그렇겠습니다만.
이제 진북대로 향합니다.
진북대는 만리장성의 일부로 서쪽의 자위관, 동쪽의 산해관과 더불어 장성 3대 구조물 가운데 하나라더군요.
주차장 한쪽에는 왕소군이 한나라 시절 북쪽의 강자였던 훈(흉노)의 우두머리 선우에게 시집갈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선우의 신부가 알지
이 사연이야 널리 알려진 것이라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을 합니다.
어쨌든 왕소군은 이 문을 나가면서 장성 밖 이민족의 땅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한나라 수도는 장안 지금의 서안이니까 거기서 북쪽으로 나가면 바로 이 문이었던 것입니다.
진북대는 천하제일대라고.
붉은 글씨로 휘둘러 쓴 것을 보니 모택동의 글씨같지요?
不到長城 非好漢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이 글씨인가요?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군요.
입장료가 있습니다.
여기도 30원입니다.
입장료를 내고 문을 들어가면 이제 꼭대기로 오르는 길이 이어집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이렇게 정상부.
옆쪽과 유림 쪽으로는 숲이 좀 있는데, 왕소군이 나갔던 북쪽으로는 땅이 거칠어집니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경계가 확실한 것이죠.
내려오다가 유림의 ‘유’자에 해당하는 나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근거를.
느릅나무였습니다.
성내에 느릅나무 고목이 있다고 알려 주어서.
학명이 쓰여 있으니 관심이 깊으신 분은 유심히 보셔도 좋습니다.
여기도 사실 명나라 때까지는 대단한 역할을 했던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나라가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되면서 만리장성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 그 시절 이후로는 그냥 방치되어왔을 겁니다.
그러다가 보수를 하고 뭔가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왕소군이 나오고 뭐 그렇겠지요.
오늘 구경한 홍석협이나 진북대, 둘 다 나에게는 그냥 시큰둥한 구경거리였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입장료가 싼 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중심지로 돌아옵니다.
점심시간이 늦었더군요.
홍석협이나 진북대 근처에서 먹으려고 했지만 변변히 먹을 만한 곳이 없어서리.
터미널 근처 한 식당에서 어향육사 개반(蓋飯)이라는 음식을 시켜 먹습니다.
개반이라는 것이 덮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덮밥은 괜찮은데, 한자로 개반은 어감이 좀 이상하네요.
마치 개밥 같은 느낌?
아무튼 양도 많고 널 느끼해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럼 오늘 구경은 다 끝난 것인가요?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구경거리가 구시가지에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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