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米脂)를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는.
유림 이후 계획을 세울 때, 미지를 넣긴 했지만 이자성 행궁 하나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유림에서 연안(延安)으로 한 방에 빼려다가 문득 미지 근처에 있는 강씨 장원(姜氏 庄園)에 눈이 꽂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양가구(楊家沟) 혁명 구지(舊址)도 괜찮아 보이더군요.
게다가 인터넷으로 미지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에는 은주(银州)라고 불리던 유서 깊은 곳이고, 가미려(佳米驴)라고 나귀가 유명하답니다.
물론 가미는 가현(佳縣)과 미지(米脂)지요.
그래서 나귀를 이용한 곱창요리가 유명하다네요.
하지만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이건 좀 먹어 보기가..
옛날로 올라가보면 진시황의 맏아들이자 황태자였던 부소가 아버지의 배려(?)로 전방 기지 책임자로 갔던 곳이 미지라고 하고, 그 뒤 진(秦)나라 장수였던 동예(董翳)가 항우에게 투항을 한 뒤 적국(翟国)이라는 나라의 군왕(郡王)된 곳도 미지랍니다.
또 가깝게는 황토고원은 벼농사가 불가능한데 유일하게 이 동네에서 미지는 벼농사가 가능하여 국공내전 시절 쌀을 주식으로 하는 모택동이 미지에서 생산된 쌀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도 있고요.
이 동네 이름도 이 동네 사람들이 쌀밥을 많이 먹어 얼굴에 기름이 돌아 미지라는 이름이 생겼나요?
이 정도 되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래 결정했어. 가 보자고.
미지로 가는 길.
유림 터미널 시간표에는 미지 가는 버스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미지를 경유지로 하는 것이 많아 그렇게 적지는 않습니다.
내가 이 날 탄 버스도 도진촌(桃鎭村)가는 버스인데, 미지를 경유하는 모양이더군요.
유림에서 미지 가는 길은 무정하(无定河)를 따라서 갑니다.
길은 사차선 확포장 공사 중이라서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교통편이 그다지 많지 않아 제 속도를 내려 달리긴 하더군요.
아마도 이 무정하 협곡은 유림에서 서안으로 가는 무역로이자 유목민들의 침입로였겠지요.
진나라 몽염 장군이 서안 북쪽 오로도스 지역에서 군림하던 훈(흉노)를 치기 위해 드나들던 길이었을 겝니다.
무정하 따라 제법 넓은 들이 이어집니다.
아마도 이 지역이 벼농사가 가능했던 곳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봅니다.
지금이야 교통이 좋아져 다른 곳의 쌀이 수송되어 올 테니 이 동네에서 쌀농사를 짓지는 않을겁니다.
조그만 도시가 나오나 했더니 그곳이 미지더군요.
그런데 차가 선 곳은 터미널이 아니고 큰길가였습니다.
기사에게 터미널이 어디냐고 물으니 좀 걸어가라네요.
내일 이동 수단을 고려하려면 터미널에 가서 시간표를 확인해야 하기에 땡볕을 걸어 터미널로 가봅니다.
차량 대수가 얼마 안 되는지 터미널은 한산하기 그지없습니다.
인구 많은 중국에 이렇게 한산한 터미널이 있다니.
그게 더 신기합니다.
더 한산한 대합실에 들어가서 가게 주인에게 강씨장원과 양가구가는 교통편을 물어보니, 여기는 없고 공교(公交)를 이용하라더군요.
공교라는 것이 시내버스를 말하는 것이니 뭔가 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이두 지도를 검색해서 근처 호텔을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창화원(昌和园)주점이 있어서 그곳을 가봅니다.
시설은 괜찮은데, 무려 180원을 달라더군요.
좀 망설여집니다.
비싸기는 하지만 햇살이 보통 뜨거운 것이 아니고 배낭을 매고 여기 저기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서.
하지만 유림처럼 시 단위라면 감례를 할 만한 금액인데, 이런 촌에서 무슨 180원씩이나?
결론은 결국 다른 곳을 가보기로 합니다.
결국 싼 호텔을 찾기는 했습니다.
이자성 행궁 들어가는 보행가 사거리 즉, 유림에서 온 버스가 서는 위치에서 조금 올라오는 도로 옆에 상무빈관이 두 개가 있더군요.
그 중 한 곳을 골라서 들어가 물어보니 일인실 방이 100원이랍니다.
물론 컴퓨터도 있고요.
방을 확인해보니 좀 작지만 괜찮습니다.
거기다가 주인 딸이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영어를 하더군요.
그래도 그게 어딘지..
아무튼 여기서 강씨 장원과 양가구 혁명구지 가는 방법에 대해 안내를 받습니다.
강씨 장원은 시내버스 7번을 타면 갈 수 있다던데, 양가구 혁명 구지는 공교로는 갈 수가 없답니다.
굳이 가려면 택시를 빌려야 한다고.
어떡할까 생각을 해봅니다.
양가구 혁명구지는 그 지역 장원의 소유자였던 한 지주가 자발적(?)으로 기부한 곳으로 국공내전 당시 화북으로 거점을 옮기기 전 홍군 지도부가 머물었던 곳이라더군요.
이 지역 장원(庄園)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그러다가 다음에 가려고 하는 곳이 연안이고 지긋지긋하게 볼 것들이 혁명구지라는 것에 생각이 미칩니다.
그래, 여기 양가구는 패스.
강씨 장원 가는 길.
간식거리를 준비한 다음, 7번 버스를 타고 강씨 장원을 향합니다.
이 버스도 공교(公交)이간 하지만, 유수(流水)형인지 미지 외곽에서 한없이 손님을 기다리더군요.
그 사이 기다리는 사람이야 신경 쓸 것도 없이 점심을 넉넉하게 먹고 이를 쑤시며 등장하는 우리 기사님.
이 동네 특색 요리라는 나귀 곱창 요릴 드셨을까요?
아무튼 버스는 출발하고 미루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한참을 갑니다.
버스비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받는데, 강씨 장원까지는 4원입니다.
이 지역은 높은 산은 없지만 거의 대부분 지형이 구릉인 곳입니다.
변변히 넓은 땅도 없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더군요.
골짜기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고 간간이 민가가 있는 그런 곳입니다.
집 모양을 보면 모택동 홍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 않습니다.
가현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삼거리에서 갈라진 다음, 더욱 좁아진 길을 한참 달리더니 다 왔다고 내리라더군요.
몇 사람 타고 있지도 않았지만 내린 사람은 나 혼자였습니다.
강씨 장원.
강씨 아무개가 이루었다는 저택이지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가 아홉 가운데 다섯 번째라는 강씨 장원(姜氏 庄園)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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