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싸이에서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이어지는 1041번 도로를 따라가면 '싼나'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농촌 마을이 나옵니다.
정확한 주소로는 치앙라이'주' 매싸이'군' 꼬창'면' 싼나'리'가 되겠네요.
주소를 찾다가 재미있는 이름을 알아냅니다.
면 이름이 꼬창이라니.
꼬는 섬이고, 창은 코끼리로 이 꼬창은 아주 유명한 섬으로 타이만 캄보디아 국경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 잘 알려져 있는데, 육지 가운데인 매싸이에도 꼬창이 있습니다.
근처에 우각호도 보이고 하는 것을 보니 충적평야를 구불구불 흐르던 사행천이 언젠가 섬을 만들었다가 다시 이어 놓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섬이 아니지만 전에는 섬이었던 까닭으로 섬 이름이 붙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니까 코끼리 섬은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곳에도 있는 것이죠.
이 작은 싼나 마을 어귀에는 조그만 예배당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오신 의료팀이 그곳에서 치료 봉사를 한다고 해서 찾아 온 것입니다.
작은 예배당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그런데.
작지 않은 예배당 마당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그 천막 아래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째 치료를 받으러 온 분위기 같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검정색 옷차림이었거든요.
검정색이라.
알고 보니 우연히 의료팀이 와서 치료를 하기로 계획된 날 이 교회 신자 한 분이 돌아 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중이었어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니 강대상에는 관이 놓여져 있었어요.
그 아래에는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바닥에 눞거나 업드려서 있었고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하는 공간이라.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맞지 않았죠.
장례식이 벌어지는 예배당 안에 치료가 진행 중이라니.
하지만 이곳 분위기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요.
장례는 삼일장이랍니다.
더운 나라라서 시체가 부패되지 않도록 관은 냉동관이라더군요.
돌아가신 분은 참 힘들게 신앙 생활을 하셨다 하네요.
소수 민족 마을이 아닌 태국인 시골 마을에서 극소수인 기독교 신자로 살아 왔으니.
태국 전통 마을은 마을 행사가 대개 불교와 관련되어 있어서 빠지게 되면 자연히 왕따가 되는 셈이랍니다.
그건 그렇고 이 분은 어떻게 기독교 신자가 되었을까요?
망자를 위한 공간이 예배당 옆 공지에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태국인 대부분은 화장으로 마무리 하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매장을 한다고 하는군요.
이슬람교나 유태교 그리고 전통 기독교도 원래는 매장 문화였죠.
메시야가 이 세상에 나타날 때 부활할 몸이 있어야 되었으니.
따지지 말기로 하죠.
다 그렇게 생각한대는 이유가 있을테니.
그 묘지 자리를 구경하다가 우연히 아는 분이 영면하고 있는 묘를 발견합니다.
아, 이 분이 여기에 잠들고 계셨네요.
많지 않은 나이에 소천하셔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신 분이거든요.
이 분은 중국 선교사로 탈북자들을 살피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중국 교도소에서 몇 년의 형기를 치루신 분입니다.
그 기간 중 건강이 악화되었고 형기를 마친 후 태국 땅으로 건너 와 사역을 계속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데 장례 기간 중에 우리는 한국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재작년 12월 초였습니다.
살아 계실 때 두 차례 뵈었는데 다리 무릎 아래로는 그때도 이미 감각이 없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씀하시곤 했었어요.
같은 교단 소속이라 더 애뜻했었는데, 그 분이 여기 잠들어 계시다니.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예배당 바로 옆은 화장장이더군요.
불교가 대세인 농촌 마을에서 예배당이 자리 잡을 곳은 후미진 화장장 옆이나 가능하겠죠.
사실 태국의 화장장은 동네 마을 단위로 있을 정도로 흔합니다.
우리나라는 몇 개도 안 되고 새로 만들 때도 난리 법석을 떨지만요.
우리가 사는 마을 근처도 화장장이 몇 군데 있는데, 대개는 절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아요.
화장 의식은 대개 스님이 주관을 하는데, 의식은 아주 단촐하답니다.
관이 화로로 들어가기 전 사자와 모두와 작별을 하고 '잘 가세요' 인사와 함께 한줌의 재로 돌아 가는 시간이 시작되면 모두 돌아 간답니다.
그리고 삼일 후 가족이 와서 나머지 재를 수습해서 탑에 봉안을 하던지 아니면 흙으로 돌아가게 하든지 하면 모든 절차가 끝났다더군요.
사실 인생 뭐 있나요?
화장장 주변에는 기독교인으로 죽어 매장된 묘와 화장된 재가 수습된 탑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참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논과 습지 가운데 자리한 마을이지만 습기도 없고 우리나라 가을 날 같은.
하지만 더운 철에는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곳입니다.
언젠가 비슷한 분위기 마을에 봉사를 갔다가 찜통 안 같은 날씨에 병이 났었는데, 이 마을도 비슷한 분위기.
오늘은 하지만 참 좋습니다.
좋은 시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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