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

해마다 벌초할 때가 오나니

정안군 2016. 9. 7. 15:10

 

 

부여읍 상금리 골짜기 안에 있는 부여중앙교회 교회 묘지에 아버지가 누워 계십니다.

내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 돌아 가신 아버지는 그 때 당시 교회 묘지에 묻혔다가 교회 묘지가 이전하여 지금 계신 곳으로 이장을 했습니다.

전 무덤이나 나중 이장한 무덤이나 옛날 어른들이 들으시면 네가지 없는 후손이라고 하시겠지만, 해마다 추석이 돌아 오면 벌초하는 게 큰 일이었습니다.

생전 낫질이라곤 벌초할 때가 전부였으니 서투른 낫질은 힘이 배가 들었고 늦여름 햇살은 왜 그리 뜨겁던지.

그래도 거의 매년을 빠뜨리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고 자가용이 생기고.

또 고모가 부여를 떠나면서 고모댁 방문 할 일이 없어지고, 외숙모가 돌아 가시면서 외삼촌 댁 갈 일도 없어졌고, 마지막은 어머니가 부여를 떠나면서 부여에는 방문할 친척집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도 큰 변화네요.

이제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 부여는 달랑 아버지 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태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있는 여동생이야 원래 남 식구이고 남동생도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그나마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들뿐.

태국으로 온 지 첫 해는 다행히 동생이 마침 한국에 있어서 동생이 했는데, 작년부터는 우리 아들들이 그 일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농협에서 한다는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려 했는데 좋지 않은 일로 꼬여 할 수 없이 큰아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부여까지 내려가 벌초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부여까지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거기에 묘지는 아주 변두리에 있어서 오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더구나 생전에 만나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 묘의 벌초라는 게 영.

어쨌든 효자 아들은 미션을 잘 수행해서 한 해는 지나갔습니다.

 

또 다시 해가 바뀌어 올 해.

유난히 빠른 추석 탓에 미친듯이 더웠다던 여름 뒷끝이 사그러들지 않은 구월 초.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미션을 이어 받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연락을 받습니다.

부여에 도착했노라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본 모양인데, 부여군에서 시행하던 자전차 빌려 주는 사업은 자전차가 모두 가출하면서 종료되었다니 택시 아니면 버스 밖에는 방법이 없다더군요.

부여에는 자전거 점포를 하는 친구가 있어 빌릴 수는 있지만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버스를 추천했습니다.

허나 묘지가 있는 성금리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가 안 다니는 벽지입니다.

그래도 가기만 하면 올 때는 같이 나올 차가 있을거니 걱정을 말라고 해 줍니다.

설마 산에 계신 할배가 벌초 온 손자가 몇 십리를 걸어 나가게는 안 하겠죠.

 

얼마 후 벌초 전 비포(Before) 그리고 애프터(After)

사진을 보니 지난 봄 둘째하고 가서 열심히 잔디를 입혔는데 헛수고한 듯 하네요.

처음부터 그렇게 잔디가 못 살더니 여전히 그랬습니다.

 

일을 마치니 정말 할배의 은덕인지 아래쪽 벌초 온 아재들이 부여까지 태워준다고 했다는군요.

많이 더워서 무척 힘이 들었답니다.

그래, 고생했어 아들.

 

둘째도 그 나이 나처럼 사실 생전 처음인 낫질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게다가 더위도 엄청난 날이었으니.

 

지난 봄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방문했더니 나 죽으면 아버지 묘는 네가 알아서 하라시더군요.

나도 화장을 하던지 내가 장남이니 알아서 하라고.

일단은 어머니가 돌아 가시면 아버지와 합장을 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글쎄요.

만만한 게 장가가기 전 아들이라고 아직은 결혼 전이라 만만해서(?) 벌초 같은 일을 시킬 수 있지만 아들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때는 과연?

 

일단은 어머니 살아 계실 때까지는 아버지 산소를 그냥 두려고 합니다.

그렇게 어머니께도 말씀을 드렸어요.

생각 같아서는 산 사람 생고생 시키는 벌초도 안 했으면 좋겠지만 교회 묘지라서 그게 쉽지는 않으니 누가 해도 하기는 해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보는 눈이 있으니.

어머니도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니 아부지 자손 없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쩐다니'

하긴 어머니는 이제 내 몸뚱이도 힘든 처지라 그런 염려도 놓으셨고, 그런 걱정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추석이 올테고 벌초는 어떡한데요?

 

아무튼 올 해는 잘 지나갔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