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치앙라이]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정안군 2017. 2. 18. 12:28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리

세상 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희망가.

 

제목은 몰라도 내용은 너무도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연식이 얼마 안 되는 사람은 전인권의 노래로, 연식이 폐차 직전에 미친 분들은 쇳소리에 가까운 아줌씨의 노래로 기억될 듯 한데요.

 

이 노래는 원래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던 1921년  '이 풍진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녹음된 대중 음악이라는군요.

 

당시에 박채선과 이류색이라는 기생이 단음으로 불렀던 노래입니다. 

째지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이 분들이었군요.

당시 버젓한 집안의 처자들이 창가 따위를 부르게 할 시절은 아니었으니, 목포의 눈물을 부른 박난영도 만만할 기생 출신이었죠.

 

나는 이 노래가 순 국산인줄 알았어요.

알았는데, 이 음악의 오리지날 곡이 따로 있습디다.

 

KBS 일본어 방송에서 소개를 해 주더군요.

 

그 사연은 인터넷에서 찾아 정리하니 이렇답니다.

 

희망가는 일본 대중 음악인 엔카의 <새하얀 후지산의 기슭 / 真白き富士の根>가 원곡 입니다.

이 곡을 찾아서 들어보면 몇 소절만 다르고 거의 똑같습니다. 

한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대로 일본 사람의 곡에 우리나라 말로 가사를 바꾼 노래라는 걸 알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엔카로 소개된 곡도 오리지날 일본 곡이 아니었습니다.

오리지날이든 아니든 그 노래가 나온 배경이 애처롭습니다.

때는 1910년 1월 23일.

일본 한 지역에서 강을 건너던 배가 뒤집혀 여학생 12명이 참사를 당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비극에 우리나라 세월호와 비슷한 충격이 일본 열도를 휘감았고.

그때,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즈미 스즈코(三角錫子)라는 선생님이 미국 찬송가를 개사하여 '새하얀 후지산의 기슭 / 眞白き富士の根'라는 내용의 가사를 만들어 비극적 사고를 당한 꽃다운 청춘을 위해 진혼곡을 바치는데, 바로 이 노래입니다.

사연과 함께 노래는 일본 열도에서 대단한 히트를 했다고.

그 영향으로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슬픈 사연은 당연히 그 과정에서 지워졌죠.


다시 거슬러 미국 찬송가로 올라가 보면 원곡은 미국인 제레미야 잉걸스(Jeremiah Ingalls)가 1835년에 작사 작곡한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When we arrive at home)’라는 찬송가랍니다.
지금은 미국 남부 찬송가인 'Garden Hymn'으로 되어있고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로 시작된다 합니다.


이 곡은 현재 일본 찬송가 669장 'いつかは知らねど / 언제일지는 알지 못하지만'로 불리고 있다는군요.

 

아무튼 지금 우리는 풍진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풍진 세상이라.

바람 '풍', 먼지 '진'.

바람이 불어 먼지 자욱한 험한 환경이 풍진입니다.

 

일본에서 벌어져 희망가를 우리에게 소개한 사건.

우리나라 희망가의 가사와는 상관이 없지만 일본 한 선생님이 진혼곡으로 바친 노래의 내용과 간절한 마음을 세월호에 희생된 우리 꽃다운 청춘들에게 바칩니다.

 

또한 그들 가족이 겪는 풍진 세월이 곧 끝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