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미얀마 난민촌을 다녀 왔습니다.
소감은 이렇습니다.
Oh, my God!
전부터 산마을에는 많이 다닌 적이 있어 열악한 환경은 이제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눈 앞에 그런 모습이 보이니 아니더군요.
오, 하나님.
이 말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이제 태국의 어지간한 산마을은 환경이 많이 개선이 되어 십여년전의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태국은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한 나라는 아니라고들 하고요.
그런데 오늘 방문한 미얀마 난민 마을에 십여년전 산마을의 모습이 있더군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아니더이다.
근처의 목사님 소개로 미얀마 난민촌 몇 군데를 다녔습니다.
제일 먼저 가 본 곳은 빠싹(Pa Sak ป่าสัก)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반 빠싹 초등학교(Ban Pa Sak Noi Community School) 건너편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서 만난 마을입니다.
그냥 대충 봐도 허름한 집들이 늘어선 마을은 미얀마 시골에서 보았던 그런 모습을 쏙 빼다 닮았습니다.
다행히 취학 대상은 근처 초등학교에 다닌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는 아낙들과 아이들만 듬성 듬성 보였습니다.
물론 젊은 애기 아빠도 드물게 있긴 했어요.
같이 간 목사님에게 마을 사정을 들어 보니 좀 오래 전에 정착한 가정은 함께 모여 벽돌집을 지어 살고 있고, 온지 얼마 안 되는 가정은 대나무로 엮은 집에서 산다고 하네요.
미얀마에서 박해를 받는 까리앙(카렌)족인가 해서 그러냐고 물어 보니 빠롱(Palong)족이랍니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 지대에 살다가 태국으로 옮겨 온 부족이더군요.
미얀마에서 왔다고 해서 미얀마어로 밍글라바라고 인사를 해도 그런 건 남 나라 말인 듯 관심이 없었어요.
자신들의 고유 언어가 있었습니다.
다만 태국에서 밥을 먹고 사는지라 엉성한 태국어를 하기에 조금씩 소통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 마을에 찾아 온 외부인이 신기해서 어른 아이들 할 거 없이 모두들 내다 보는데, 그 중 아주 귀엽게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마침 사탕이 있어 그 여자 아이의 마음을 뺏습니다.
데리고 다니던 아줌마에게 이름을 물어 보니 띠-ㅅ이랍니다.
처음에는 지 엄마나 아줌마만 끼고 돌더니 그만 무서운 사탕의 위력 앞에 굴복하여 내게 뽀뽀를 해 주기까지. ㅎ
역시 아이들에게는 사탕이 최고의 무기입니다.
그냥 장난 삼아 그 꼬마에게 나랑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 꼬마가 간다고 할 일이 있겠나 싶었죠.
정말로 꼬마는 아줌마 뒤로 숨고.
그런데.
조금 지나서 아줌마란 여자분이 우리보고 데리고 가랍니다.
엥?
머릿속이 하얗게 바뀝니다.
데리고 가라고?
물론 데리고 가서 사람답게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한데.
무국적자인 그 꼬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해결할 방법이 마땅해 보이지 않으니 미안해집니다.
괜히 같이 가자고 해서는. ㅠㅠ
사탕도 부족해 미안하고, 같이 가지 못 해 더 미안하고.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무국적자입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마치면 태국 국적을 얻을 수는 있다고 하던데, 그건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돈이 없으면 그것도 어려운 모양입니다.
국적이 없으니 대처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동네 근처의 막일이나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얀마에서 사는 것보다는 나은 모양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도낀 개낀입니다.
사는 집만 나아진 정도지 사는 건 매일반입니다.
당장 해 줄 게 없으니 마음만 무겁습니다.
어떻게 한국에 가서 로또라도 사야 되나요?
돈 있으면 이들 주거를 몽땅 개선해 주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지하수를 파서 큰 물 탱크가 설치된 다목적 건물을 한 동 지어 주고 싶었습니다.
몸도 씻고 빨래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마음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게요.
대나무집이나 벽돌집이나 한 가구 당 차지하는 방은 달랑 방 한 칸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그리고 애들 서너명.
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삽니다.
거기에서 지지고 볶고 사니 모두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요.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는데 솜털로 안 벗은 듯한 여자 아이가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난지 두 달 되었다고 하고 엄마인 그 여자 아이 나이를 물으니 18살이랍니다.
오, 하나님.
몇 군데를 더 거쳐 마지막으로 방문한 난민촌은 싼싸이 (San Sai สันทราย) 초등학교 뒷쪽입니다.
치앙쌘 가는 대로변이라서 그 대로변에는 그래도 제법 번듯한 집들이 있는데, 비포장길을 따라 얼마를 들어 가지도 않았는데 장면이 확 바뀝니다.
이곳도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집 상태가 엉망입니다.
빨래를 보면 집 형편이 대충 짐작이 되는데, 걸어 놓은 옷가지는 걸레라고 해도 좋아 보이지 않을 정도.
그런데 당황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집 마루에 한 할머니가 자기네들 민속 의상을 입고 요염한 자세로 누워 있었어요.
뭐지?
닳고 닳은 소수민족 마을에 가면 볼 수 있는 모습이 왜 여기에?
아무리 봐도 관광객들이 찾을 곳은 아닌데 그 모습은 뭘까나?
허름한 마을 모습만큼 그 할머니의 요염한(?) 모습이 슬펐습니다.
치앙쌘 가는 길은 이제까지 수 없이 다닌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 조금 안쪽에 미얀마 난민촌이 있다는 것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군요.
그나저나 마음만 무거워졌습니다.
어쩌죠?
그나저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네요.
태국 곳곳에 미얀마 난민촌이 흩어져 있다는데, 왜 라오스 난민들은 없을까요?
미얀마나 라오스나 소수민족들의 사는 수준은 별 차이가 없던데...
이래 저래 마음만 무거워진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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