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원수를 사랑하라(Love Your Enemy รักศัตรู)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담임목사 쁘라쏭 분웡(Prasong Boonwong)
마태복음 5장 43 - 48장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이사야 6 : 1-3)'
이 말씀은 이사야가 주의 성전에서 본 환상입니다.
오늘 아침 나도 우리 교회 안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말씀에 집중합시다.
오늘 성서의 교훈은 복종에 관한 것인데, 이는 올해 교회 표어 중 하나입니다.
좀 전에 읽은 성경 말씀(마태 5장 43 - 48장)은 산상수훈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러 교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고 의의 길로 나가도록 하게 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또한 이는 모든 사람들이 현세와 미래에 궁극적인 기쁨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입니다.
산상수훈은 크리스천 삶의 원리임을 알고, 우리는 43에서 48절에 특별히 집중을 하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의 명령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간단히 살펴 보아도 예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듯, 우리는 모든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나 악한 자의 곡식들이 잘 자라도록 햇볕과 비를 똑같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자녀된 자로서 우리들은 같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원수'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만일 내가 여기 각자의 신자들에게 여러분 생각에 '원수'의 뜻이 무엇입니까 혹은 여러분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라고 물으면, 나는 아마도 다양한 답을 받을 것입니다.
어느 분은 원수를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으로, 또 어느 분은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으로, 또 어느 분은 우리와 다투는 사람으로, 또 어느 분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라 정의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답은 다양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를 나쁘게 대접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까이에 오려 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하고 우리를 계속 저주하거나 우리 고통이나 죽음을 즐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께서는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태도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바라신다구요?'라고 하나님께 외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외침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의 설교 가운데 '사랑'의 원래 단어는 그리스어 단어 '아가페(Agape)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사랑과 같은 무조건적 사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 중에 언급하시는 사랑의 종류는 우리의 원수가 무엇이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대신에 이 종류의 사랑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나쁜 태도나 행동을 하든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자신을 고문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에게 아가페의 예를 주셨습니다.
눅 23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는 우리들이 모든 이들을 그들의 사회적이나 경제적 위치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경으로 대접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롤 모델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자신을 도덕적으로 훈련시키고 서로를 완벽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대접하도록 가르치십니다.
모든 행동과 태도에서 예수를 본받으면 원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을 사랑과 은혜로 대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인간의 사랑과는 다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산 증인이 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많은 교훈을 줍니다.
첫째, 우리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를 나쁘게 대접하고 곤경에 빠뜨리거나 삶을 어렵게 하는 이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단정지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하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화를 내거나 분해 하지는 맙시다.
둘째, 우리는 우리를 나쁘게 대접하는 이들도 사랑하고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복을 빌어 주라'는 예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누군가의 삶이 악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면, 비참함이 그 자신을 좀 먹고 결국 자신의 원수가 아닌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고 침울한 상태에 있으면, 우리의 원수들은 작은 영향도 받지 않는데, 우리의 일상은 불타는 지옥 같을 것이고 건강은 악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에서 복수심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 선한 의지로 자신을 바꾸어야 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수는 우리에게 무조건적, 무제한으로 그리고 특별한 태도로 동료 인류를 사랑하라고 권하십니다.
크리스천 사랑의 최고 기준은 우리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잘못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덕으로 악을 갚는 것입니다.
이는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꼭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늘 우리를 깨닫게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우리가 오직 그런 하나님의 태도를 지녀야만 참 평화가 우리 마음,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안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올바르신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벽한 의인이 되는 단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특별히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를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 주께서 올바르신 것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올바라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의인이나 악인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사랑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는 완전한 의를 향한 첫 걸음입니다.
구약 신명기 19장 21절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와 같은 명령이 있습니다.
이 명령은 과도한 처벌이나 과도한 보상 요구를 피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에게 한 것보다 더 심하게 보복하려 하며, 더 심한 보상을 요구하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만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했으면, 더 이상 하지 말고 단지 눈 하나만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높은 기준을 세운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마태 5 :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예수의 명령은 악에 악으로 되갚지 않아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신명기 32 : 35)에서조차 하나님은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들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성경(잠언 25 : 21)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를 나쁘게 대접하는 사람에게조차도 선을 행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나쁜 행동에 대해 나쁜 행동을 함으로 이루는 게 아니라 나쁜 행동에도 불구하고 선한 일을 함에 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우리 눈에 나쁘게 보입니다.
대신에 다른 이의 삶에서 장점을 찾으려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당신에게서 장점을 찾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 마음에서 어떤 편견도 소멸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온전히 주께 복종하며 주가 명령하신대로 행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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