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치앙라이] 우리 옆집의 크리스마스

정안군 2017. 12. 15. 12:15

 

 

 

우리 동네 안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삽니다.

우리 부부처럼 순수 외국인 커플도 있고 남자 외국인과 여자 태국인의 커플도 있는데, 후자의 비중이 더 큰 편.

그 중에도 나이 많은 서양 할아버지와 사는 좀 더 젊은 태국인 여자 커플이 많죠.

각자 사연이야 있겠지만 내가 보수적인지 좀 모양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국 여자 쪽에서 보면 한 몸 던저 집을 구한 구구절절한 사연도 있겠죠.

 

우리 앞집은 영국인 남자와 태국인 여자 커플과 아이들 그리고 태국인 장인 장모가 사는 대가족입니다.

이들 부부는 나이가 거의 비슷하게 보입니다.

남자가 태국에서 태양열 사업을 했다는데 그 와중에 만난 게 아닌 가 싶습니다.

 

아무튼 그렇고.

앞집 부부 사이에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각각 1명씩 있어요.

영국인 아빠는 집을 엄청나게 가꿉니다.

마당을 파고 담을 고치고.

사실 이 나라는 인건비가 싸서 누구를 시켜도 큰 돈이 들지 않을 텐데, 꼭 어지간하면 자기가 직접 합니다.

그리곤 그럴 때마다 아들을 꼭 데리고 합니다.

이런 점은 참 놀랍고 배울 점이더군요.

나도 좀 해 보려 해도 뭐 할게 있어야죠. ㅎ

앞집은 마당이 넓은데, 우린 좁아서리.

 

앞집 아들이 얼마 전 자기 집 문 앞에 토요일마다 벼룩 시장을 연 적도 있습니다.

하도 기특해서 뭐를 좀 사주려고 해도 통 사줄 게 없더군요.

내가 보기에는 몽땅 쓰레기더만.

아무리 나에게 쓰레기가 남에겐 보물일 수 있다지만 너무 하더라고요.

아무튼 그 친구는 아마 하나도 팔질 못했을 거에요.

그래도 기특하긴 하더군요.

 

앞집은 크리스마스가 다가 오자 집 안에 트리 장식을 해 놓았더군요.

문 앞에도 눈사람 모형도 놓고.

재미 있는 것은 그 바로 옆은 보통 태국 가정에서 만들어 놓은 신을 위한 시설이 있습니다.

아마도 영국인 남자 장인이 치성드리는 곳인 듯한 데.

각자가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습니다.

 

Santa.

Please stop here!

 

산타 할아버지.

여기를 지나치지 마셈!

 

언젠가 내가 주일학교 부장을 할 때 교회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 사회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행사를 어디선가 본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시기가 있다고 한다.

싼타가 있다고 믿는 시기.

싼타가 없다고 믿는 시기.

자기가 싼타가 되는 시기.

 

지나고 보니 세 시기가 아니라 네 시기가 맞는 해요.

하나 추가입니다.

 

‘싼타고 뭐고 그런 거에 전혀 관심 없는 시기’

 

바로 내가 지금 그 시기입니다. ㅎ

 

싼타와는 별 상관도 없이 지내다가 옆집 꼬마들이 써 놓은 글을 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싼타가 있었다고 믿었나 봅니다.

아마도 부모가 그 싼타라는 것은 대충 알았겠지만요.

해서 열심히 크리스마스 이브에 덜 떨어진 양말을 골라 문 앞에 걸고 자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착한 일을 안 해서 그런지 싼타는 한 번도 선물을 준 적이 었었어요.

지금도 생각해 보면 엄마가 좀 야속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살기 퍽퍽 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그렇지...

 

옆집에는 싼타가 꼭 들를까요?

내 생각엔 그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아빠를 보면 그런 걸 그냥 지나치지 않을 듯.

그래도 혹시 우리 아빠와 엄마가 선물을 빠뜨리거나 혹 시원찮은 선물을 줄까 봐 미리 초를 쳐 두는 잔머리가 앞집 아이들에게 있을까요?

 

동남아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 설 명절 같은 분위기입니다.

멀리 떨어져 살던 자녀들도 고향 마을로 돌아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죠.

물론 크리스천 마을에 한정된 이야기지만요.

 

그리고 동네 교회마다 행사를 따로 따로 잡아 서로 다니면서 축하를 해 주곤 합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따지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12월 한 달입니다.

 

우리 부부도 내일 치앙라이 교회에서 치앙쌘 부근의 야오족 마을 예배당에 간다 해서 같이 간다고 해 두었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하니, 크리스마스의 기쁨도 나누면 배가 되겠죠.

 

크리스마스가 다가 옵니다.

싼타도 이 즈음 녹슨 설매을 닦고 기름치고 순록을 훈련시키고 하겠네요.

 

싼타 할아버지, 꼭 우리 옆집도 들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