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9

[치앙라이] 2월 둘째 주일 예배

정안군 2019. 2. 10. 14:22

 

 

 

 

 

 

예수 그리스도의 병원

 

설교자 : 닥터 타위싹 마하차와롯(Taweesuk Mahachawarote) 목사

 

시편 103편 3 - 4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 오늘은 외부에서 오셔서 주보에 설교 요약이 없고 닥터 브릭스에 대한 소개가 있어 이를 올립니다.

 

닥터 브릭스(Briggs)와 치앙라이 시민들에 대한 그의 헌신

닥터 윌리암 브릭스(William A Briggs)는 캐나다 외과 의사로 28년(1890 - 1918)동안 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처음 10년을 람빵(그 당시는 무앙 라콘으로 알려짐)에서 보낸 뒤, 닥터 브릭스는 1900년에 치앙라이 선교 센터로 보내져 이곳에서 18년을 계속해서 일했습니다.

 

1900년부터 1912년까지 브릭스는 오버브룩 병원에서 의사로 또 선교사로 주께 헌신했습니다.

또한 그는 9년 동안 치앙라이 제일교회 목사로 지내기도 했는데 그 때 치앙라이 위타야콤 학교의 교육적 발전을 위해 쉼없이 헌신했습니다.

 

치앙라이에서 지내는 동안, 브릭스는 오버브룩 병원의 본관과 치앙라이 제일교회의 설계와 건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덧붙여 그는 치앙라이의 여러 정부 사무실의 주 설계자이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시청과 교도소 그리고 우체국 등입니다.

중요한 것은 표본으로 워싱톤의 도시 계획을 이용하여 치앙라이 시를 설계했습니다.

 

닥터 브릭스는 전통적으로 사용된 대나무와 억새를 대신하여 벽돌과 목재 그리고 타일의 사용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지역 기술자들에게 벽돌과 기와를 굽기 위해 노를 만드는 것을 가르쳤고 목재와 석재 그리고 석고를 다루는 기술에 숙달되도록 도왔습니다.

잘 훈련시킨 기술자로 인해 위에 언급된 모든 구조물들이 성공적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의과 대학을 마치자마자 1890년 초에 씨암(현 태국)에 선교사로 지원을 하였고 1918년 중반, 병의 치료로 모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씨암 백성을 위해 그의 삶을 바쳤습니다.

닥터 브릭스는 52세의 젊은 나이인 1919년 2월 24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밴쿠버의 마운틴 뷰 묘지에 묻혔습니다.

 

(‘치앙라이 제일교회 2014 성전의 축하’의 35 - 45장에서 인용함)

 

* 닥터 윌리암 브릭스 서거 100주년 기념 전시회

치앙라이 제일교회와 오버브룩 병원, 치앙라이 위타야콤 학교, 치앙라이 상공회의소와 치앙라이 시 공동 주관으로 닥터 윌리암 브릭스 기념 전시회가 2019년 2월 22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Laan Tham, Laan Slip, Thin Phaya Mangrai(구 시청)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뱀발)

오늘은 오버브룩 병원 헌신 예배였어요.

병원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닥터 브릭스의 헌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네요.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뿌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