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그리스도인(Good Christians)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전도사 낫타퐁 춤씨리(Nuttapong Chumsiri)
고린도전서 3 : 1 - 9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형제 자매가 함께 모여 주를 찬양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함은 영적인 삶을 강하게 하여 육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지 않게 합니다.
이를 1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두 종류의 크리스천이 있는데 영적 크리스천과 육적 크리스천입니다.
영적 크리스천은 성령이 함께 합니다.
그들은 새로워지며 하나님의 통제와 인도 아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지만, 위에 계신 하나님을 따르며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보상을 그리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통을 감래합니다.
반대로 육적 크리스천들은 영적 유아로 있거나 성숙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보다 그 자신을 더 사랑하며 영적인 것보다 세상 일에 더 관심이 많고 교회와 세상의 삶이 다릅니다.
오랜 습관을 버릴 수 없어서 마음이 아닌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좋은 크리스천인 가운데에도 육적인것에 의해 왜곡되는 순간이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베드로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네가 복이 있도다(17절)’라고 그를 칭찬합니다.
다른 때에 예수께서 그의 죽음을 예언하면서 그가 고통을 받고 죽음을 당하리라 말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23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연속해서 복도 받고 꾸중도 받았습니다.
이는 때로 영적으로 성숙된 크리스천에게도 쉽게 영적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좋은 크리스천으로 계속 될 수 있을까요?
1.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말아라.
고린도전서 3 : 1절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고린도 교회가 나누어져 있음을 보고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바울과 아볼로는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진정 복된 존재였으나 그들이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들 중 누구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집중을 하여야 했습니다.
분열과 더불어 그들 사이에는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바탕을 두고서는 하나님보다는 사람 말을 들었음으로 서로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분열, 시기와 분쟁은 세상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고린도 교인들은 다른 많은 육적인 것을 행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귀절은 그들이 부활을 의심했고, 영적 선물을 잘 못 사용하였으며, 우상 숭배와 결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비 신자 앞에서 동료 신자를 비방하였고, 간음을 행하였으며, 적은 무리를 무시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이것들은 육적인 것들에게 굴복한 결과입니다.
2.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아라.
바울은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우리가 나무를 심고 물을 줄 수는 있으나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라.
7절에서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우리가 할 모든 것은 육체를 기쁘게 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는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말하는 대로 행동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 겸손한 삶을 살자.
바울은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님만큼 중요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전합니다.
또 그는 자신은 중요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이 가장 높고 중요하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늘 깨달으며 최선을 다하자.
9절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는 표현은 굿 뉴스 버전으로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에베소서 6 : 5 - 7)는 말씀처럼 행하여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응을 하여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무시하거나 관심을 적게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영적 크리스천이나 좋은 크리스천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도우시길 빕니다.
아멘.
뱀발)
오늘 문 대통령, 트럼프 그리고 김정은의 깜짝 쇼가 있었습니다.
정말 역사적 사건이랄 수 밖에 없네요.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그 날까지 계속 Go~~~~
가즈아!!!!
그리고 내일은 귀한 사람의 생일입니다.
미리 축하
'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앙라이] 태국으로 입국할 때 20밧을 준비하랍신다~~~… (0) | 2019.07.02 |
---|---|
[치앙라이] 야마자키 in Central Plaza (0) | 2019.07.01 |
[치앙라이] 헤리티지(The hertage Chiangrai) 호텔 뷔페 (0) | 2019.06.27 |
[치앙라이] 리버리(The Riverie by Katathani) 호텔 카페 (0) | 2019.06.26 |
[치앙라이] 동굴 소년들 근황 (0) | 2019.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