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충주 이야기

마즈막재에서

정안군 2021. 1. 12. 16:11

 

 

엄청난 추위로 한참을 얼어서 지냈다

북극의 한파가 그 동안은 제트 기류에 막혀 내려 오질 못했는데 기후 변화로 구멍이 생겨서 그리로 새나왔다고.

이게 뭔일이래.

한국이 한파에 시달리는 동안 작년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곤 했던 아들 지내는 곳은 하나도 춥지 않다고 전해 왔다.

그래서 그냥 슬리퍼에 맨발로 요즘 지낸다나?

농담으로 앞으로는 혹한을 피해서 캐나다와 와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한다. ㅎ

아들아.

작년까지 이맘때 나도 그렇게 살았다.

양말은 신은 적이 거의 없었고 그냥 슬리퍼 끌고 다녔지.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올해도 그렇게 살았을텐데 말이다.

 

아무튼 추워도 틈틈히 나와 다리 운동을 했다.

날이 추워도 중무장을 하면 다른 곳은 괜찮았는데 역시 손가락은 대처하기 쉽지 않더라.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점점 마비 상태로 간다.

그러다가 오늘은 영상 1도.

평소보다 추운 날씨이지만 워낙 추웠던지라 이 정도는 여름이다.

해서 집에서 걸어서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까지 다녀 왔다.

1253.

처음 기념탑이 세워졌을 때 이 근처를 다니면서 저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알질 못했다.

전화번호는 아니고.

나중에 그게 몽골 군사가 처들어 왔을 때 남산성에서 그들을 물리친 해라는 걸 알았다.

기념탑은 계명산 끝자락에 있지만 승리한 곳은 남산성일 것이다.

남산성은 접근성이 더 좋고 중요한 것은 정상 부근에 물이 있어 장기간 농성하기가 좋으니.

일설에 의하면 김윤휴는 노비들에게 자유를 주는 조건으로 항쟁에 참여하도록 했단다.

이들을 이끌고 승리를 했지만 그 후에 자유를 주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윗대가리에 있는 자들이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살질 않으니.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때도 그랬지.

나라를 쥐고 흔들던 놈들은 다 도망가고 민초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나면 그 윗대가리들은 민초들을 다시 제 손아귀로 잡아 넣는 것에만 눈이 벌겠다.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은 마즈막재에 있다.

마즈막재에서는 남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고 계명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다.

등산객을 위해 시에서 주차장을 마련해 놓았고 아무리 추워도 주차장이 비어 있을 때는 거의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가는 등산객은 있기 마련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전승탑에 오른다.

멀리 충주호가 내려다 보이지만 전망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바람은 아래 보다 훨씬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