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충주 이야기

얼음 아래로 추억이

정안군 2021. 1. 17. 15:24

 

걷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머리 속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머리 속이 복잡할 때 걷기 시작하면 점차로 머리가 맑아진다.

잡생각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TV를 보다 보면 이제까지 지내 오는 중에 안했으면 좋았을 일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내가 싫어진다.

그 때 왜 그랬을까?

 

어디선가 본 것인데 본래 천국이나 지옥은 없다고.

그런 것 없고 사람이 죽어갈 때 착하게 산 사람은 좋은 기억이 떠올라 웃음을 지으며 세상을 떠나니 천국에 가는 것이고,  못 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떠 올리기 싫은 기억이 남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런지 아닌지는 죽어 보질 않아 모르겠지만 그럴 듯 하긴 하다.

이런 말이 생각나니 나도 죽을 때 좋지 않은 일이 머리에 떠 오르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해서 그런 나쁜 기억은 지워야 할텐데...

 

오늘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렸다.

설교 중에 늘 호렙산에서 기도하라는 대목이 있었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난 산.

그 산이 호렙산이다.

그래서 호렙산 기도원이 있나 보다.

기도원하니 옛날 추억이 떠 올랐다.

 

고등학교에 다닐 시절이니 아주 오래된 추억이다.

내가 살던 곳은 성결교회,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나는 성결교회에 다녔는데 그 동네에선 성결교회가 대장이었고 그 다음은 장로교회, 감리교회는 제일 작았다.

작은 동네이고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은 거개가 아는 친구들이어서 무슨 행사가 있으면 서로 방문해서 머리 품앗이를 하곤 했다.

추운 기억이 있는 걸 보니 겨울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어느 날, 절친 ㄷㅎ이가 말하기를 세 교회 학생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장소가 세 교회 중 하나가 아니고 ㅅㅎ이네가 새로 짓고 있는 집이라고.

그 때 ㅅㅎ이네는 여고 옆 연못이 있는 동네에 집을 짓고 있었는데 큰 틀만 완성이 되어 뼈대만 있는 집이었다.

그런 곳에서 기도회를 한다니 당최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그 날.

우리 성결교회 팀들이 ㅅㅎ이네에 가니 과연 세 교회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남자들만 갔는데 그곳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학생도 있었다.

아니 다른 교회 대표로는 감리교회에 다니는 ㅈㄱ만 남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들이었다.

여자들 중에는 아는 애도 있고 모르는 애도 있었다.

뭔가 좀 이상했다.

다행히 전기는 설치가 되어 불을 밝혔는데 추운 날이어서 방은 담요로 문과 창을 막아 분위기는 좀 칙칙했다.

그 당시의 방은 크지 않아서 10명 이상 모인 방은 거의 공간이 없었다.

뭐 아무튼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장로교회에 다니던 ㅅㅎ가 기도를 하겠단다.

이런 저런 말로 기도를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이 날만도 했다.

뭔가 이상해도 많이 이상했으니,

ㅅㅎ의 기도가 끝나고 어떻게 그런 순서로 넘어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날은 더 이상 성경이나 찬송가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야전, 즉 야외전축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음악은 당연히 팝송.

사실 그 날 모임은 기도회는 그냥 내걸은 것이고 춤 파티였던 것이었다.

모두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모르는 채 했고 그 중 몇 명이 그 쪽으로 모니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다들 신나게 놀았다.

그 날, 날밤을 샜었는지 밤 늦게 끝냈는지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지금도 그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대단히 신나는 추억이었던 모양이다.

춤 파티였지만 모두들 교회 다니는 학생들이라서 그 외 다른 것은 없었다.

그냥 과자에 사이다만 놓고 벌였던 행사였다.

그 뒤.

이 일에 대해 입에 올리는 친구도 없었고 다시는 그런 기도회도 없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서도 점차 지워져 갔다.

그러다가 오늘 호렙산 기도원이 생각나면서 그리로 이어졌다.

하느님의 은혜인가? ㅎ

 

내가 죽을 때 이런 신나는 일이 머리 속에 남아 있고 하느님 앞에 선다면 하느님은 뭐라 하실까?

 

오늘 개울따라 걸었는데 얼음 아래로 맑은 물이 흘렀다.

흐르는 냇물처럼 조용히 추억도 흘렀다.

 

뱀발)

그게 기도회가 아니라 춤 파티라는 것을 나도 미리 알았을까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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