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즈막재만 다니다 보니 좀 질려 적당한 다른 곳을 찾아 보았다.
그곳이 금봉산(속칭 남산) 창룡사.
대충 시간을 알아 보니 집에서 1 시간 정도 걸려 딱 좋았다.
지난 주 설교 시간에 만나 이야기가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있을 때 먹을 것이 없다고 난리를 쳤다.
이 때 하나님이 이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는데 이는 실로 기적이었다.
허나 몇날 며칠을 만나만 먹으니 질려서 다른 걸 달라고 또 난리를 친다.
처음에는 기적이었으니 그 기적이 이어지면 더 이상 기적이 아니라는.
하기는 최고급 쇠고기라도 날마다 먹게 하면 누구든 난리를 치지 않을까?
이렇듯 기적이든 아니든 가끔씩은 바꿔줘야 한다.
오래된 동네 길 사이를 걸으면 창룡사 가는 길이 나오는데 경사가 꽤 심하다.
천천히 얼마를 오르면 좀 엉성한 석축이 나타난다.
절은 요새가 아니니 꼼꼼하게 쌓을 필요는 없겠지.
한 단 그리고 두 단 또 그리고 세 단쯤에 절 건물이 있다.
한 단, 두 단은 주차장.
아마도 보통 때는 늘 빈 터일테고 초파일만 꽉 찰게다.
그것도 올해는 모르지.
창룡사는 이런 골짜기 안에 있어 터가 그다지 넓지는 못하다.
넓은 주차장에 빨간 차가 한 대 서 있다.
경내 한 쪽에 탑 조각을 모아 놓았다.
언제 부서진 것들일까?
창룡사 본당은 극락보전.
아미타불을 모신 곳이다.
본당 앞에 창룡사 역사를 기록해 놓았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이 충주 목사 조병노.
이 분은 동학혁명하면 등장하는 조병갑과 비슷한 시대의 같은 조씨 일족일텐데 조병갑만큼은 유명하지 않아도 길이 그 이름을 남겼다.
기록에 의하면 조병노는 조선 말기 창룡사 건물을 헐어 충주 읍성 안으로 옮긴 분이시란다.
조선 시대 불교는 억압의 대상이었고 중은 천민에 속했으니 그 대접을 그 신분에 어울리게 했던 모양이다.
본당 창살 무늬 모양이다.
예쁘다.
기와를 공들여 쌓았다.
이것으로 절 구경을 마친다.
절에서 내려 오다 이해 불가인 국기 조합을 만났다.
한국, 미국, 일본, 이스라엘.
도대체 이 나라들은 어떤 관계 또 어떤 사이일까?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뜬다.
이렇게 한 번 꼬이면 제대로 되기가 참 어렵다.
미얀마를 봐도 오랜 군사 정권에서 벗어 나는 게 이토록 힘들다.
그걸 우리나라는 해냈다.
미얀마와 같은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소속인 필리핀과 캄보디아, 태국은 쿠데타에 대해 "내부 문제"라며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한다.
풉.
그럼 누구 누구를 욕하겠어?
태국 수상은 좋겠네.
옆에 군바리 대장 친구가 생겨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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