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샀는지 기억에 전혀 없는 등산화가 있다.
고구려 시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산지 10년은 넘은 듯 하다.
주인이 외국에 나가서 사는 동안 신발장 안에서 푹 쉬어서 그런지 요즘도 그럭저럭 신을만 했는데 이젠 한계에 도달했는지 여기저기 상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앞 부분 덜렁거리는 건 그냥 봐줄만 했는데 뒷금치 부분은 덜렁거려 더 이상 신기는 무리로 보였다.
아내는 그만 버리고 새로 사자고 하는데 다른 데는 멀쩡하니 신발창만 수리하면 괜찮아 보여 일단 신발 수리점에 가서 수리가 가능한지 알아 보기로.
그래서 구두 고치는 아저씨에게 가서 물어 보니 웬 쓰레기는 가져 왔냐는 표정이다.
버려야 하나?
그런데 어디선가 등산화 판 회사에 신청하면 창갈이를 해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물론 다는 아니고 제법 유명세를 타는 회사 제품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내 등산화는 어디 회사 제품인가를 알아 보는 것이 우선.
그런데 제조 회사는 등산화를 들고 밑을 봐도 없고 안을 봐도 없었다.
있는 건 제품명인 듯한 LiKEBiNS.
이럴 땐 인터넷에서 찾아 봐야.
그랬더니 제조 회사를 알 수 있었다.
파키스탄에 있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 높다는 산 이름을 딴 회사.
하긴 나쁜 말 할 것도 아니니 그냥 회사 이름을 쓰자.
K둘.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서비스 센터 주소를 알아 내어 택배로 일단 보낸다.
하루 뒤 전화가 왔다.
창갈이는 가능하시구요.
요금은 이체 시켜 주시면 됩니다.
창갈이가 가능하시다고라.
창갈이님이 높으신 분이신 가 보다.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아무튼 고마운 일.
그리고는 수선비와 택배비 37,000원을 보냈고 일주일이 채 안되어 택배로 등산화가 돌아 왔다.
신발창은 새 것으로 교체가 되었고 신발끈도 새 것을 보내 왔다.
이렇게 새 것인 듯 하지만 새 것이 아닌, 또 헌 것인 듯 하지만 헌 것이 아닌 듯 한 등산화가 등장했다.
아무튼 버릴 수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몇 년을 더 신게 되어서 무척이나 좋다.
어이 K둘, 또 여러 해 친하게 지내보자고.....
새 신을 신게 되었으니 새로운 길을 가보자.
해서 마지막 숙제같았던 창룡사 길로 해서 남산을 올라가 보기로 한다.
창룡사가 보이는 언덕에서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얼마 안 가면 엄청난 바위가 나온다.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듯 바위 아래에는 촛대가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큼직한 안내판이.
뭔가 극과 극을 달리는 듯 하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표현보다는 신심을 보듬는 그런 표현을 썼으면 어떨까 싶었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를 지나면 전체적으로 흙산의 형태 사이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골짜기 옆으로는 논의 흔적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아쉬운 대로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이었나 보다.
냇가이니 물도 있고 남향이니 햇살도 좋았겠고.
물론 생산량이야 얼마 안 되었겠지만 그 때는 그것도 상당했겠지.
능선에 접근할수록 경사가 무척 심해진다.
어디랑 연결이 되나 했더니 깔딱고개에서 샘골 갈림길 중간쯤이었다.
갈림길 안내판이 없어서 이렇게 올라 와서 만나지 않으면 처음 내려가는 것은 어렵겠다.
갈림길 초입에 큰 돌무덤이 있는데 그게 그냥 돌무덤을 쌓은 것이 아니라 길 표시였나?
아무튼 새 신을 신고 걸어보니 쿠션이 아주 좋은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등산화를 무시하지 않고 새로 창갈이를 해 준 K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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