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때가 되니 하늘에서 봄이 내린다.
요즘 소위 일본 개화기 시대를 다룬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읽는다.
시바는 어떻게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해서 나름 폼나는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까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메이지 유신부터 러일전쟁까지가 대부분이다.
그는 이 때를 일본이 제일 신나던 시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 소동은 미국인 페리 제독이 이끄는 소위 흑선(구로부네)에서 시작되지만 여러 조건이 받쳐주지 않았으면 이런 소동이 일어날 수 없었다.
바야흐로 막부 말기.
막부는 거의 한계에 다달아 있었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유신 삼걸이라는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이들 뿐만 아니라 사카모토 료마, 가와이 쓰구노스게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주연이기도 하고 조연이기도 했다.
그들이 등장하는 시바의 소설은 그의 자료 수집 능력이나 화려한 문체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일본 유신기는 우리랑 감정 상 겹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불편한 부분도 많이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어떤 사람은 거부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이르게 서두르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재수가 좋아 부귀영화 속에 수명을 다하는 수 많은 등장 인물들은 많은 흥미를 주고 또 교훈이 된다.
시바는 사카모토 료마를 일본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료마가 간다'라는 소설이 발매되고 또 드라마로 만들어 지면서 료마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갔던 것이다.
왜 현대 일본인은 료마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소설에 나열된 그의 모습이 다 실제일 순 없겠지만 그는 그 당시 일본인이나 현대 일본인이 지니지 못했던 개방된 생각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시대의 한계나 생각을 뛰어 넘었던 그의 독창성이 매력적으로 다가 오지 않았나 싶다.
또 온갖 세상 풍파에 오래 노출되기 전에 살해되어 인생을 짧게 끝낸 것도 인기의 비결 중 하나였을지도.
시바의 소위 유신기 인간 세상 결론은 이렇다.
모든 영웅이 이래저래 사라지니 메이지 시대는 어느덧 이토 히로부미의 세상이 되었고, 그도 또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죽으니 어정쩡하던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최종 수혜자가 되어 일본을 군국주의 세상으로 몰아 넣었다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나 이토 히로부미는 전 수상 아베의 고향인 죠슈(지금의 야마구치현) 사람들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희생당한 것이 바로 우리 조선이었다.
나는 어려서 종기에 꽤 많이 시달렸다.
대형 종기에 시달린 것이 기억에 있는 건만 세 건이다.
하나는 가슴에 또 하나는 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머리에.
가슴에 생겼던 종기는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 기억에 없는데 나머지 두 개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배에 난 종기는 손바닥으로 덮을 정도의 크기로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엄마 그리고 운상이 엄마가 마루에 앉아 계셨는데 방에 있던 나를 부르셨다.
나가니 운상이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고 붙잡자 마자 부엌에 있던 가정 도움이 증애를 부르셨다.
증애는 나오자 마자 내 다리를 붙잡아 바닥에 뉘였다.
돌아가는 낌새가 수상하여 욕을 하고 소리를 치며 발버둥을 쳤지만 힘이 없으니 그냥 처분에 맡겨졌는데.
마지막으로 큰 엄마가 고름을 짜내기 시작하니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같던.
뭐 그 뒤는 잘 아물었는지 지금의 희미한 흉터만이 남았다.
더 험한 일은 그 뒤 머리에 난 종기였다.
머리 위 부분에 난 종기는 얼마나 크고 실했는지 주변의 머리도 다 빠졌고 조금 과장하면 머리가 두 개로 보일 정도였다.
어느 날.
낯선 분이 등장을 했다.
그리고 비슷한 방법으로 체포된 나는 광란에 가까운 발버둥과 소리를 쳤지만 결국 종기는 해결이 되었다.
낯선 사람이 의사였는지 아니면 그냥 돌파리 의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에 의해 종기는 째졌고 그 피가 얼굴 전체에 흘렀다.
처지가 끝나고 머리는 붕대로 칭징 감겨졌는데 그런 머리를 한 모습으로 거울을 바라 보고 있을 때 뒤로 흐믓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누나가 언뜻 비쳤었다.
참담했던 내 모습과 누나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무튼 그 기억과 함께 그 때 파인 흉터는 아직도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있고 대형 종기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렇게 종기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생이손은 앓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이손은 표준어가 생인손이고 전문 용어로는 조갑주위염인가 본데 이 생이손은 내가 종기로 고생할 때 은근히 이를 즐겼던 내 또래 조카들이 많이 걸렸었다.
종기가 더 아플까 아님 생이손이 더 아플지는 둘 다 걸려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생이손은 그 뒷처리가 더 무시무시해 보였다.
종기에는 강했던 조카들은 이상하게 이 생이손에 많이 걸렸는데 이 때는 걸린 손가락의 손톱을 뽑아야 낳는다고 해서 손톱을 꽤 많이 뽑혔다.
무서워서 보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럼 그 때 왜 종기를 그렇게 커지도록 그냥 두었을까?
아마도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괜히 초기에 잘 못 건드리면 더 고생을 하니 그냥 무르익도록 둔 다음에 한 방에 처리하는 게 좋은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이명래 고약이라는 것이 있었다.
종기가 나면 이 고약을 꽤 많이 썼는데 그 때도 종기가 노랗게 고름이 잡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고약을 붙여 처리를 하곤 했다.
그 때는 다른 방법을 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때를 기다리는 방법을 모두 자연스럽게 알았나 보다.
지금 이른 봄이 한창이다.
산 어귀에는 산수유.
산 중에는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산에 가는 동안 나오는 집들 마당에는 매화는 이미 한창이고 목련과 개나리는 이제 막 피기 시작을 했다.
시절이 오면 자연은 그 시절을 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는 시절을 준비하여 맞는 사람이 있고 간 세월이 그리워 지금을 그 세월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투명해지고 정당한 절차로만 살아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 대열에서 빗겨 살아 온 사람에게는 정당한 대접이 없을 사회.
아직 우리 정치의 한 쪽은 아직도 정당하고 바르게 살지 않을 사람에게 줄 자리가 남았나 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 시절이 더디고 느리게 오는 것 같아도 결국은 오고야 만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산에 올라 벤치에 누워 보았다.
바람에 세어 나무 꼭대기가 많이 흔들렸다.
그러나 중간 부분부터 아래 가지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세상이 많이 혼탁해 보여도 결국은 중심을 잡아 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봄바람이 줄어들면 여름이 온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든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든 시절은 이렇게 오고야 만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자.
야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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