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21 살이

청소 단상

정안군 2021. 10. 22. 11:31

 

요즘 청소를 원 없이 하네요.
매장은 날마다, 집 대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 그리고 보너스로 말하기 곤란한 곳이 하나.
누군가는 나이 들어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할 일이라는 것이 청소라면 좋아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 내가 청소는 담당하마 큰 소리를 칠 때는 그까이 거 하는 정도였는데 막상 해 보니 그게 만만하지는 않더이다.
처음에는 청소를 날마다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보기는 깨끗한데 막상 걸레질을 해 보면 시커먼 먼지가 얼마나 많이 묻어나는지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그걸 아는데 날마다 청소를 안 할 수가 없더이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소싯적에 청소를 그다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부엌일이나 소소한 집안일은 남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거라는 아버지의 굳건한 철학(?)으로 어릴 적에는 집에서 청소를 한 적이 없었네요.
아 그리고 보니 교회 고등부 시절에 교회 청소는 좀 했군요.
중학생 시절은 교회 마당에서 놀 던 우리를 고등학생인 형들이 청소하자고 부르면 얼른 그 자리를 떠나 밉상을 받곤 했는데 그 시절은 개과천선한 셈이죠.
여기서 확실히 해 둘 것은 청소하자고 할 때 도망을 친 무리 가운데 주동자는 나는 아닙니다.
혹시 나중에 천국 입구에서 책임 소재를 따질 가 봐 분명히 해 두는 걸로.
학교에서도 청소는 꽤 도망쳤던 기억이 있네요.
반장이 너 오늘 청소 담당인데 왜 도망치냐고 해도 당당히 집에 갔던.
그러고 보니 청소에 대해서는 좀 밉상이지 않았나 싶네요.

아무튼 요즘 청소가 내 일상생활이 되었습니다.
이왕 하려면 잘해야 되겠지요.
해서 매일 청소할 때 머릿속에 그리는 장면은 일본 하기 유스호스텔의 화장실 청소 상태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 하기라는 동네에 있던 유스호스텔은 지금도 구글에서 확인을 할 수 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겉과 속이 아주 허름한 숙소였습니다.
유스호스텔이야 혼자 여행할 때는 싼 숙소이지만 우리 아들들과 함께 했으니 인원이 세 명인데 그곳으로 간 것은 잘한 일은 아니었죠.
그 돈이면 어지간한 호텔에 묶을 수도 있었으니.
게다가 저녁에만 에어컨을 틀어 주고 아침에는 치사하게 꺼 버리고 또 잔차 대여료는 왜 그리 비쌌던지 이래 저래 좋은 기억은 없습니다.

하긴 그게 모든 걸 정확하게 따지고 드는 일본 전형적인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요.

이래 저래 이토 히로부미라는 동네 선입견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그런데 다른 것은 그렇다고 해도 화장실 상태는 놀랄 노자였습니다.
처음 볼 때 한마디로 충격이었지요.
바닥 상태도 깨끗했지만 소변기 상태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나온 지 오래되어 보여 변기도 나 나이 꽤 들었소 하는 그때도 보기 드문 모양이었는데 와 한마디로 어떻게 이런 상태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깨끗함이었습니다.

그 완벽한 하얀 이란.
소변기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요.
놀랐지 이 친구야.
그래 놀랐다.
사용하기 미안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사용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사격을 일단 하고 물을 내리는데 젖어 가는 모습에 얼마나 미안하던지.

우리나라는 그때는 공공화장실 상태가 별 수 없었던 시절이라 충격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지만 상태가 좋아진 지금도 그런 느낌의 충격을 받는 화장실은 없습니다.

아무튼 요즘 청소를 하면서 우리 매장에 오시는 손님도 그런 충격을 받을 정도의 깨끗함을 청소를 통해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화장실 수준이 많이 좋아져 그 정도의 깨끗함이나 충격은 느끼게 하기는 싶지 않겠죠.
그래도 그 근처까지는 가 보자는 마음으로 매일 청소를 합니다.

하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은 이래서 스님들이 청소를 수양으로 삼는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청소를 해 보니 매장 바닥만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깨끗해지더이다.
그러니 마음 수양에는 청소가 좋구나.
이 좋은 청소를 날마다 하니 복 받은 겨.
이렇게 만족하며 삽니다.

어리석은 자를 견딜 줄 알라.
똑똑한 자들은 언제나 참을성이 없다.
지식이 많을수록 참을성은 줄기 때문이다.
통찰력이 큰 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제일 우선해야 할 삶의 원칙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지혜의 절반은 거기에 달려 있다.
<쇼펜하우어가 편집한 책 ‘세상을 보는 지혜’ 중 스페인 예수회 신부 벨타사르 그라시안이 쓴 글>

'한국 2021 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아라. 이게 우리나라 수준이다.  (0) 2021.10.29
10월의 어느 좋은 날에  (0) 2021.10.23
가을이 오면(feat. 이문세)  (0) 2021.10.18
아직은 겨울이 아니다  (0) 2021.10.17
그래 가끔은 그럴 수 있지  (0)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