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11월 10일 수요일

정안군 2021. 11. 11. 14:32

매주 수요일에 우리 부부는 서울에 가서 손주들을 돌봅니다.
가는 날짜는 몇 번 바뀌었지만 가는 것은 일 년을 넘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서 손주들을 돌보는 동안 아들은 늘 하던 일을 하고 며느리는 미루어 두었던 일을 처리합니다.
집에서 돌보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일은 아침에 어린이집에 출근한(?) 손주들을 12시 반쯤 데리고 나와 1시부터 시작하는 서대문아동발달센터에 가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곁가지로 대충 2시간 후에 교육이 끝나면 그때부터 며느리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같이 놀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오후 7시 반쯤 됩니다.
그러면 그즈음에 출발하여 충주로 돌아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게 됩니다.
요즘 이 일을 위해 어김없이 아침 매일 보는 인간극장이 끝나면 서울로 출발하는데 거의 2시간 40분에서 50분이 걸립니다.
구리 IC까지는 막힘이 없는데 북부간선도로에 들어서면서 고난의 길이 시작됩니다.
꽤 막히는 시간이라서 거리에 비해 많이 걸리지요.
그렇게 가다 보면 거북이 운행을 하는 서울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 집값이 우리가 사는 동네에 비해 어이없이 비싸다고 하지만 사는 환경 이모저모를 살피면 우리가 삶의 질은 훨씬 높으니 차라리 우리 동네가 가치는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책 가지 등을 치우며 집 정리를 한 다음 서둘러 점심 식사를 합니다.
집에서 먹을 때도 있지만 근처 식당을 주로 이용하는데, 나이가 드니 맛있다고 느껴지는 게 거의 없어서 대충 먹는 걸로.
그동안 먹은 것이 콩국수, 뼈다귀 해장국, 설렁탕, 명태찜, 콩나물 해장국 등 이런 종류였네요.
어제는 명태찜을 먹었는데 덜 맵게 해달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맵게 나와 배가 그만 고장이 나버렸어요.
매운 걸 잘 못 먹는데 우리나라 음식은 거의 맵기만 하니 이런 경우가 가끔씩 생깁니다.

식사 후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나를 만날 때 언제나 표정은 똑같습니다.
아이 이름은 앞 자를 빼고 ’호’와 ‘우’입니다.
애들 아빠가 호우 지절에서 이름을 땄다 합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나를 보고 호는 좋아서 싱글싱글 웃는데, 우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더 좋아하는 표현이 더 확실한 호를 더 안아주다가 아내에게 주의를 받고 요즘은 똑같이 안아줍니다.
센터 시작 시간이 지금과 다를 때는 유모차에 태워 걸어가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 가지도 했는데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어 승용차로 센터까지 갑니다.
아이들은 차를 타면 너무 좋아합니다.

서울 시내 어디다 주차공간이 없지만 다행히 센터는 우리가 가는 그 시간대에는 공간이 있어 주차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다행입니다.
전에는 센터에서 40분씩 교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센터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윗옷을 벗고 항시 양말도 벗습니다.
요즘은 추워져서 양말을 신고 있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냥 둡니다.
선생님들이 반겨주는데 아이들은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표정에서는 알 수 없지만 싫으면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평소 아이들의 습성을 미루어 볼 때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한 아이가 교육을 받을 때에 다른 아이는 기다려야 했는데 우는 책을 좋아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읽어 주면 됩니다.
책은 언제나 같은 책입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이 많은데 어떻게 같은 책만 가지고 오는지 참 신기하지요.
책 이름은 ‘이제 아프지 않아요’.
왜 이 책만 좋아하는지는 그냥 미루어 짐작만 하는데 중간에 고양이 간호사가 나와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호도 우도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우는 책만 있으면 해결이 되는 것에 비해 호는 기다리는 걸 잘못해 먼저 끝나면 밖에 나가자고 합니다.
우가 끝나야 한다고 말해 보지만 그런 걸 듣는 호가 아니지요.
그래서 밖에 나가 근처를 걷다가 올라오곤 했는데 11월부터 두 코스를 교대로 하게 되면서 우리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교육이 끝나면 그냥 승용차로 하늘 공원에 가기도 하고 일단 집에 돌아와 유모차를 타고 근처 놀이터에 가곤 했는데 요즘은 유모차를 타고 불광천 하천도로에 가서 돌다가 오곤 했지요.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일단 집에 돌아오면 유모차를 꼭 타야 되는 걸로 아이들은 압니다.
그냥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려고 해도 유모차를 타지 않으면 절대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유모차를 타고 논 다음은 아이스크림집에 가서 꼭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합니다.
이 코스를 빼먹으면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질 않죠.
뭔가 우리가 오면 생각나는 코스가 아이들 머릿속에 꽉 고정이 되었나 싶습니다.

어제는 날이 추워져서 뭐를 할까 고민을 했는데 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추운 날씨에 상관없이 일단 아이들은 전과 같이 유모차를 탑니다.
할 수 없지.
유모차를 태워 살짝 걸어보는데 날이 차서 어디를 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따뜻한 스타벅*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로 합니다.
가는 도중 어린이놀이터가 있어 미끄럼을 탈까 해서 가보니 조금 타기는 하네요.
오르는 계단이 젖어있어 아이들을 들어 올렸더니 많이 싫어합니다.
자기들이 걸어서 오를 수 있는데 그런 것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래 많이 크긴 컸다.
많이 타진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추웠겠죠.
스타벅*는 사람들이 버글버글합니다.
다행히 한 청년이 자리를 양보해 주어 쉽게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고 아이들도 먹는 즐거움을 맘껏 즐길 수 있었죠.
먹는 걸 보면 우가 더 앙팡지게 잘 먹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오래 머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어서 바로 나왔습니다.
집으로 오는 도중 아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안심을 삽니다.
아이들이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다네요.
자기 논에 물들어 갈 때와 자손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가 봅니다.

집 근처에 오면 다음 코스가 정해져 있었어요.

스케이트 보드입니다.

그 거를 타겠다면서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 결국 한참을 타곤 했는데 오늘은 날이 추워 다행히 그런 고집을 피지 않네요.

그래서 다행히 쉽게 집에 들어 올 수가 있었습니다.
집에 오면 둘 다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호는 속옷은 남기는데 우는 기저귀 팬티만 남기고는 모두 벗습니다.
아마도 우가 몸에 열이 더 많은 듯.
집에 오면 나는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추피를 아시나요?
추피 덕에 랄루와 필루도 알게 되었죠.
하긴 우리 쌍둥이 덕에 뽀로로 일가 이름을 다 알게 되기도 했네요.
뽀로로, 패티, 크롱이, 포비, 해리, 에디.
이제 추피 책을 끝없이 읽어주던 시절은 이제 끝났지만 지금도 양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둘 다 책을 무지 좋아했는데 지금은 우는 책에 대해 적극적이고 호는 그 정도가 덜합니다.
우가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주노라면 호는 슬그머니 옆에 와사 같이 듣곤 하지요.
어린이집에서 생활할 때는 낮잠시간이 있어 낮잠을 자곤 하는데 센터에 갈 때는 낮잠을 못 자 피곤할 텐데 우리들을 만나면 약간 흥분 상태가 되는지 아이들이 잠을 잘 생각을 안 합니다.
어제도 잠을 잘 생각을 안 해서 혹시 TV를 보게 하면 보다가 잘까 싶어 TV를 켰는데 아이들이 일단 너무 좋아하더군요.
한때는 뽀로로 팬이었는데 요즘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채널을 옮기는데 우가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 취양이 아닌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지요.
이걸 보여줘도 소리 지르며 울고 저걸 틀어줘도 아니라고 하고.
이렇게 이십여분을 했는데도 알아맞히질 못했어요.
잠투정 비슷한 것 같아 TV를 끄니 속이 상한 우는 울면서 엄마방에 갔어요.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그냥 둡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잠이 들더군요.
정밀 잠투정이었나 봅니다.
어쨌든 지난주부터 우가 TV 프로그램에 유난히 예민해졌네요.
지난 주도 자기 취향이 아닌 것에는 소리를 질러 꽤 당황을 했었는데.

우는 잠이 들고 호는 한동안 혼자 소꿉놀이를 하더니 소리 없이 잠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잠시 휴식 시간이 되겠습니다.
아내도 쉬고 나도 쉬고.
그렇게 7시가 넘으니 애비도 돌아오고 애들 엄마도 돌아오고 해서 저녁을 먹이려 일단 깨웁니다.
그리고는 사온 고기를 구워주는데 막 일어나서 그런지 잘 먹지는 않네요.
아무튼 아이 덕에 나도 오랜만에 남의 살을 먹어 봅니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몸을 말리고 옷을 입히면 오늘 일과는 끝입니다.
애비는 다시 교회로 갔고 엄마가 두 아이를 돌보야 하지만 우리도 갈 걸음이 머니 집을 나섭니다.
엄마가 시키면 호는 우리에게 와서 ET인사라도 하는데 우는 잘 오지 않습니다.
확실히 우가 호에 비해 자기 의지가 강합니다.

늦은 시간이라 다행히 집에 갈 때는 올 때만큼은 차가 밀리지 않습니다.
대개 2시간 20분 정도.
하긴 서울에 갈 때는 10분 정도 쉬지만 집에 올 때는 내달리니 그다지 차이가 없겠네요.
집에 오면 내가 좋아하는 세계 테마 기행도 끝났고 피곤해서 간단하게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듭니다.
매주 한 번이라고 해도 애들 돌보러 이동하는 것은 사실 힘이 들고 피곤하지만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직접 커가는 것을 확인하니 너무 좋기는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아이들 돌봄 일기를 써 보려 합니다.
세월이 지나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관심을 갖고 돌보아 주었는지 볼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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