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일기

11 월 24 일 수요일

정안군 2021. 11. 25. 12:53

지금 몇 시쯤 되었나?
보통은 6시 30분에 일어나곤 했는데 요즘은 일출시간이 7시도 넘긴지라 밖의 상황을 보고는 시간이 가늠이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더 잘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아내의 전화벨.
며느리였어요.
호가 많이 아프니 일찍 와 달라는 부탁.
거실에 나가보니 7시였네요.
우리가 일어날 시간까지 기다린 모양입니다.
아침은 가다 먹으려고 빵에 잼을 바르고 요거트를 준비했는데 차를 타고 보니 집에 고이 모셔 놓고 왔더이다.
요즘은 생각날 때 하지 않으면 나중은 절대 보장 못합니다.
이 나이를 처음 먹어 보니 나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많이 막힐 줄 알았는데 휴게소에서 10분 보내고도 2시간 20분 만에 도착을 할 수 있었어요.


차가 막히는 북부간선도로를 지날 때 아내가 그러더군요.
전두환이 죽었다고.
오 그래.
그리고 바로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니 아내가 그러지 말랍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이 정도는 많이 생각해 주는 것이라고.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모질고 험한 욕을 해대도 그 친구에게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마음속으로 그를 존경해마지 않는 어느 한 인간은 지금 뭔가 되겠다고 나선 상황이니 모두 나와 같지는 않겠죠.
생각하면 할수록 한심한 인간에 한심한 세상입니다.


아들 집에 도착해서 호의 상태를 보니 우려할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약을 먹고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네요.
도착하자마자 아내의 심부름 타임입니다.
마트에 가서 굴을 좀 사 오라고.
요즘 원 없이 청소하는 것이나 아내의 심부름에 응하는 것은 인생 종량제라서 그러니라 하고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평생 정해진 양이 있는데 그게 부족해서 지금 하고 있노라고.
사실 어린 시절 집에서 장남이라 여자나 하는 청소는 한 적이 없고 심부름 따위는 두 동생이 다 맡아서 했으니 그 모자란 양을 지금 하는 중입니다.
마트에서 굴을 사서 계산하려는데 마스크를 안 했다고 계산하는 분이 뭐라 하시네요.
자전거 탈 때 하는 후드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건 안 된다고.
다른 데에서는 그냥 대충 넘어갔는데 요즘 상황이 심각해지는지라 더 엄해진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내가 잘한 것은 없으니 혼나도 싸지요.

 

언제나 독서 삼매경 우리 우.

오늘은 추피는 쉬는 날인가 봅니다.

 

호는 뽀로로가 더 좋아요.

넷플릭스에도 뽀로로가 있네요.

그 넷플릭스 세상으로 일찍이 들어섰습니다.

 

어린이집은 생략했지만 센터는 가야 한다고 해서 점심을 먹고 데리고 나섭니다.
다행히 날이 많이 풀려 밖에 나가도 괜찮겠더군요
아이들이 버스 타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이번에는 버스로 가기로 합니다.
걷고 타고 또 걷고 이런 걸 많이 좋아하지요.
센터는 3층인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때 열림 버튼이나 층수 버튼은 교대로 하게 해 줍니다.
버튼 누르는 것은 둘 다 많이 좋아하니 교대로 하는 걸로.

 

일주일 만에 만나는 선생님들의 열렬한 환영이 있지만 이런 건 살짝 무시하고 책을 고르러 가는 아이들.
오늘은 우뿐만 아니라 호도 관심을 보이네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나뉘어 공부하러 가고 나는 막간을 이용하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홍제천 하상도로로 산책을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걷고들 있네요.
연가교 부근을 적당히 한 바퀴 돕니다.
연가교라.
연희동과 가좌동을 잇는다는 의미이겠죠?
연희동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집이 있는 동네였고 요즘 뭐가 되어 보겠다고 설치는 아저씨 아버지 집도 있었다고.
옛날 있었다는 연희궁에 어울리는 살기 좋은 동네였나 봅니다.
살기 좋은 동네에 좋은 인간들이 사는 건 아니지요.
홍제천의 유래를 보니 홍제원이라는 원이 있어서 거기서 이름이 지어졌군요.
찾는 김에 홍은동도 찾아보니 옛날 은평면 홍제외리가 있어 두 이름에서 홍은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은평면이 은평구가 되었네요.

 

이 정자에는 동네 헌 의자는 모두 출동한 듯.

버리는 것도 아니고 기증한 것도 아니고.

 

다시 센터로 가서 마칠 시간을 기다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니 우는 순순히 집에 들어가는데 호는 계속 떼를 씁니다.
억지로 데리고 들어 왔더니 신발과 옷도 안 벗고 계속 항의.
할 수 없이 데리고 나가 한 바퀴 돌려는데 바람이 차서 그럴 게재가 아닙니다.
꾀를 내어 가까운 슈퍼에 가서 사만코를 골라서 주어 보니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내던질 정도로 호응이 좋네요.
되었네.
사만코를 들려주고 집으로 오니 그다음은 자동입니다.
신도 벗고 옷도 벗고.
혼자 먹기엔 너무 큰지라 들로 나눠 반 쪽씩 주니 우는 속만 파먹고 호는 겉과 같이 잘 먹고.
잘 들 먹어 치웠습니다.
손과 주변이 요란하긴 했지만.

 

책도 읽고 딩굴딩굴 놀다가 호가 먼저 잠이 드니 우는 호가 깨어있을 땐 마음대로 가지고 못 놀던 인형을 가지고 재미있게 노네요.
몇 분차로 언니가 된 호는 우를 아랫사람 다루 듯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가끔씩 꼬집기도 하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계집애라고 꼬집는 걸 보면 성악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고 했던가라던.
그러던 중 캐나다에 사는 아들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요즘 화장실 변기가 막혀 물이 역류해 고전 중이라고.
어느 철딱머리 없는 사람이 생리대를 변기에 넣어설라무네.

날도 추운데 아들 고생이 많네.

나는 화장실 청소하느냐 바쁘고 아들은 화장실 뒤처리에 정신이 없고.


남는 시간은 나보다 연장자이지만 세계 여러 곳을 잔차 여행한 희욱님 블로그(blog.daum.net/heeouks)를 보며 나도 언젠가 해보자는 희망을 갖습니다.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


오후 6시가 좀 넘어 애들 아빠가 돌아와 우리도 집에 오려고 하는데 좀 전에 일어났던 호가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토하기까지.
이거 영 멋쩍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애를 봐주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괜히 미안한데 아들이 낮에 왜 병원에 가질 않았냐고 한 마디 하네요.
그때는 괜찮았다고 하긴 했지만 상황이 이러니 뭔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듯한.
그래서 애 봐준 공은 없다 했나 봅니다.
한참을 그러더니 좀 안정되는 것 같아 우리는 집을 나섭니다.
괜히 우울해졌습니다.
이게 뭐람.
다행히 라디오에서 이런 노래가 나의 마음을 다스려 줍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질을 내어서 무엇하나.
그렇죠.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겠습니까?

또 성질을 내어서 무었하겠습니까?


늘 막히던 도로 그리고 잘 뚫린 고속도로를 거쳐 집에 오니 오후 9시 30분.


아침에는 괜찮던 우가 많이 아프다는 연락이.
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라고 부모들은 그걸 겪으며 한층 더 부모다워지는 거 아닌가?
지금은 잊었지만 나도 다 해 본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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