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2022 살이

야망 패자

정안군 2022. 1. 18. 12:33

누구나 야망을 품지만 최후의 승자는 하늘이 결정한다.

일본 전국시대.
쌈박질로 시작해 쌈박질로 날이 저물던 시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당연한 듯 먹어 치우고, 상전이라고 해도 틈을 보이면 곧 뒤집어 자신이 상전의 자리를 차지하는 하극상의 시절이었다.
하극상이라.

하극상하니 잠깐 곁다리로 나가서 젊을 적 추억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현직 병아리 교사이던 시절.
수업을 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교감이 불렀다.
교감 옆자리에는 팔짱을 낀 남자가 앉아 있었고.
가자마자 교감의 호통이 터졌다.
아무개 선생, 그 반에 누구 있지?
네, 그렇습니다만.
그 아이가 누군 줄 알아, 내 조카여.
그런데 그 반 어떤 놈이 그 아이를 괴롭힌다는 거야.
담임이 되어 가지고 그런 것도 몰라.
엉겁결에 당해서 별소리도 못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뭐 혼날 수도 있겠지만 누군지로 모르는 어떤 남자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기분은 몹시 나빴다.
그리고 수업에 들어갔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옆 자리 선생님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차근차근 말해 주었는데.
교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교감 동네 후배란다.
그 사람이 교감에게 자기 아들이 괴롭힘을 당한다고 하니 나를 불러 그 사람 앞에서 나를 다그친 것.

그때는 피가 끓던 젊은 시절.
교감에게 가서
학부형 앞에서 그렇게 나를 닦달하면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항의를 하니 그때 교감 입에서 나온 말이 하극상이라는 말이었다.
하극상이라는 말에 뚜껑이 열렸고 그 뒤가 한참 요란했었다.
그래도 내 장점이 욕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욕을 하면 그때부터는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젊은 놈이 네 가지가 없다로 변하니.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고 앞선 해에 이런 일이 있었다.

겨울 방학을 앞둔 어느 날.

교감이 나를 불러서 하는 말이 방학 중에 두 주간 보충수업이 있는데 영어를 맡아 달라는.

그때는 총각 시절이라서 하숙을 했는데 하루에 두 시간 보충수업을 하느냐 일 없이 충주에 남아 있는 것도 그렇고 비싼 하숙비도 되지 않아서 이래저래 할 이유가 없었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영어 교사도 아닌데.

그래서 못한다고 했다.

못 한다고 내가 이렇게 인정하는데?

그래도 못 합니다.

그래 알았어.

아마도 교감은 보충수업이 벌어지면 얼마 떨어지는 관리비를 벌려고 했던 모양.

그간 보여준 교감의 모습은 참 여러 가지로 비참했다.

단벌 신사인 것 물론이고 일 년 열두 달 점심은 학교에서 반찬도 없는 라면을 먹었으니.

아무튼 그다음 해 신학기에 나는 보복 아닌 보복을 당한다.

그때 2학년 담임이었는데 같은 학년 담임들은 다 3학년 담임으로 올라갔지만 나는 1학년 담임이 되었다.

그리고 사무 배치도 청소 담당.

별 생각이 없었다.

놀려 주면 몰라도 이래저래 일하는 건 마찬가지이니.

그런데 회식 때 지나가는 소리로 교감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고.

그냥 흘려 들었다.

아무튼 그런 전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그 본보기가 다음 해로 이어진 것.

 

결론은 나에게 그 교감은 되게 당했다.

재미있는 일이 그다음에 또 있었다.

그 해 가을 내가 지도하던 학생들이 경진대회에 참여했는데 하필 그 친구들이 1등을 해 버렸다.

1등을 한 학생 담당교사는 교육감 상을 무조건 받게 되어 있는데 그때 교감이 나에게 상을 안 주려고 꽤 노력을 했다.

그런데 방법이 없으니 그냥 상을 받았고 그 상 때문에 다른 학교로 보낼 수도 없게 되었다.

왜냐고 모범교사였으니.

 

그 교감이 다른 학교로 간 다음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어느 학교에서 교장으로 승진한 다음 퇴직해서는 얼마 살지 못했다고 전해 들었다.


다시 왜 나라로.
이런 전국시대 기간이 제법 오래갔고.

재미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남의 집 불구경과 쌈 구경이라 했던가?
그래서 일본의 역사는 외적이 쳐들어 올 때를 빼놓고는 내전은 거의 없던 우리보다 이야깃거리가 푸짐하고 더한 흥미가 있다.

소개하는 책 '야망 패자'는 그 당시 비록 천하의 패자는 되지 못했지만 강자로 이름을 날린 다케다 신겐의 이야기이다.
신겐은 살아생전 그 이름을 날렸지만 역시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사는 부질없는 것.
신겐도 인간인지라 그 수가 있어 어느 순간 세상을 이별했다.
신겐 사후 그의 아들 가쓰요리가 가계를 이었지만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벌어진 나가시노 전투에서 패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이 폭망 한다.
결국 승자는 다케다 집안을 멸망시킨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그다음은 도요토미 그리고 도쿠가와로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가 다케다를 중심으로 1부 3권, 2부 3권, 전 6권에 펼쳐진다.
죽이고 죽고 심지어 야망을 위해 자기 자식까지 죽여야 했지만 결론은 전도서 초장에 나오는 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무리 모든 것이 헛되다 해도 정치 경험이 없는 것이 내 장점이라는 사람이 푸른 집 대장님이 되겠다고 이번에 나섰다.

웃자니 슬프고 슬프다고 하기에는 웃긴다.

이런 경우가 웃픈 현실이라던가?

 

언젠가 올림픽 경기 해설로 나선 이영표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올림픽은 시험하러 나오는 장이 아니고 증명하러 나오는 장이라고.

 

큰 배를 운행해야 하는 선장이 내 장점은 배 운전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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