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2022 살이

무당의 나라

정안군 2022. 2. 8. 16:15

무당과 점쟁이는 다르다.

무당은 푸닥거리가 전문이고 점쟁이는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전문이다.

무당은 신내림의 과정이 있어야 하고 점쟁이는 그런 거창한 절차는 없어도 된다.

그러나 이런 두 기능을 한 몸에 지닌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중 한 사람이 진령군이라 불렸던 무당 박 씨 박창렬.

 

1882년 임오군란 때였다.

몇 달째 급료를 받지 못했던 성난 군사들이 민비(閔妃)를 죽이려 했다.

놀란 민비가 잽싸게 충청북도 충주 노은 국망산 자락까지 도망갔다.

이때 근처에 살던 무당 박 씨가 민비에게 "걱정 마시라. 얼마 있으면 한양으로 가시게 된다"라고 예언을 했다.

예언한 날과는 좀 달랐지만 어쨌든 50여 일 후 민비는 한양으로 환궁했다.

당연히 무당 박 씨도 함께였다.

이때부터 무당 박 씨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진령군(眞靈君), 즉 ‘진실로 영험한 사람’이라는 뜻의 작호가 내려졌다.
조선시대에서 무당은 7종 천민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무당이 당호(堂號)가 아니라 군호(君號)를 받았다.

이런 경우는 조선 역사상 진령군이 유일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黃玹)도 진령군에 대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오하기문(梧下記聞)’이라는 글에서다.
‘당초 임오년의 변 때 중궁(중전)이 충주에 있으면서 요사스러운 무당과 왕래한 적이 있었다.

무당은 화복을 말하였는데 기이하게 적중하였으며 복위할 달과 날짜를 정하는데 어긋난 게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크게 현혹되어 서울로 불러들여 관제묘(關帝廟)의 북쪽에 살게 하면서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매번 중궁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머리를 쓰다듬고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를 쓰다듬었는데 손이 따를 때마다 통증이 감소하였다.

때문에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로써 그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며 혹은 진령군이라 칭하기도 하고 혹은 북묘 부인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겨우 1년이 되었는데 위세는 날로 늘어나니 윤영신, 조병식, 이용직 등이 의를 맺고 누이라고 칭하였다.’

황현이 기록한 것처럼 진령군이 파격적인 출세를 한 것은 민비가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점을 쳐주었고 그게 신통하게도 적중했기 때문이다.

이 진령군을 민비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민 씨 일족 민응식이었다.

진령군은 처음부터 스스로를 ‘관우의 딸’이라고 자처하며 민비의 넋을 빼놓았다고 한다.

진령군은 대궐을 굿판으로 만들었다.

날마다 왕실을 위한 산천 기도를 했고 굿판을 열었으며 제사를 지냈다.

진령군의 위세가 높아지자 김창렬이라는 아들 역시 호가호위했다.

당상관의 관복을 입고 다니며 실세 노릇을 하자 고위 관료들은 진령군과 의남매를 맺거나 의자(義子)가 되려 부산을 떨었다.

진령군의 굿판은 가뜩이나 허약한 조선을 멸망의 궁지로 몰아넣었다.

진령군은 허약한 세자, 즉 훗날 순종의 병을 고친다며 금강산에서 굿을 열었는데 1만 2000 봉우리에 쌀 한 섬과 돈 천 냥과 무명 한 필씩을 얹었다고 한다.

백성들은 가난에 시달리는데 국고는 이렇게 허망하게 탕진되고 말았다.

유일하게 진령군의 세도에 저항한 선비가 있긴 했다.

사간원 정언 안효제는 진령군을 통렬히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고종은 크게 화를 내며 그를 전라도의 먼 섬으로 귀양 보냈다.

3년 귀양이 풀리고 임금이 그에게 다시 벼슬을 내렸지만 안효제는 이를 사양하고 고향으로 낙향해 버렸다.

열흘 붉은 꽃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1894년 청일전쟁 뒤 들어선 친일내각은 진령군을 옥에 가두었다가 진령군이 모은 억만금을 몰수한 뒤 풀어주었다.

진령군은 관우 사당에서도 쫓겨나 삼청동 골짜기 오두막에서 숨죽이며 살다 1895년 을미사변 때 민비가 죽고 얼마 뒤 백성들에게 몰매를 맞을 지경에 이르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도 무당과 부적으로 무장한 점쟁이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는가?

동네방네 사주에 점집이 풍성하다.

우리나라 귀신도 부족해 서양 귀신을 등 엎은 타로도 신이 났다.

 

거기에 한 술 떠서 박 창령 최순실의 후계자가 될 썽 싶은 건진인지 안건진인지 자칭 법사라는 사람의 진두지휘 아래 푸른 집도 점령할 기세이다.

그런데도 이런 현상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정신에 병이 든 사람들이 참 많고도 많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 역사가 반복되는 법.

그 역사가 과연 반복될까?

 

뱀발) 신천지에는 그 난리를 떠는 교회들은 이 무당들의 득세에는 왜 잠잠할까?

        무당은 내 밥그릇을 안 건드려서 그런건희?

        신천지는 교회를 좀 먹지만 무당들은 나라를 좀 먹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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