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타히아에서 3박 4일을 지내고 '파묵칼레 익스프레스'라는 기차로 멀리 데니즐리로 왔다.
25분 정도 조금 늦게 도착한 기차는 그 뒤로 7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거의 저녁 8시에 종점인 데니즐리에 도착을 했다.
지겨울 만도 하지만 전혀 지겨움은 없었고 기차 여행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지 않았나 싶다.
대부분 이런 풍경이었지만 녹음이 우거진 지역도 있었고 해발 1200m대를 지날 때에는 새롭게 봄을 시작되는 것도 보았으며 데니즐리 근처에 오니 석회석으로 인해 산 머리가 하얀 백두 설산(?)의 모습도 보이고 밀밭은 누렇게 수확을 기다리는 곳도 있었다.
데니즐리는 해발 200m대이니 한참을 내려온 셈이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데니즐리 역.
좁은 역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차들까지 엉켜 첫인상이 그다지 좋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건 오늘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도시 규모에 비해 역은 참 초라하더라.
숙소 식당에서 보이는 설산(?)
머리가 허연 백두산이지만 눈은 아니고 석회로 인해서 저렇단다.
데니즐리에 가까이 오니 이런 산이 널렸더라.
남들이 데니즐리에 오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파묵칼레라는 관광지를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것 이상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곳에 왔다(라고 하고 싶다)
어제 기차 타고 올 때 잠깐 이 동네 유명 인사인 파묵칼레는 보았으니 이제 그렇게 그 친구를 보려고 매달리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 듯싶다만.
요한계시록에 초대 교회 일곱이 나온다.
물론 이 교회는 예배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의미의 교회 그러니까 믿음 공동체를 뜻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던 사람들은 벌써 하늘나라고 가신 지가 오래이니 사람들은 뭔가 눈에 들어오는 상징을 찾으려 했고 그러다 보니 그 후에 세워진 교회의 유적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초대 교회와 연관을 지으려 했다.
의미가 있자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인데 그들이 살던 때의 산천은 지금과 별 변화가 없었을 테니 후대의 유적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데니즐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초대 교회는 라오디게아와 빌라델비아 교회이다.
라오디게아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가 있던 현재의 이즈미르와 이곳 중간쯤 되는데 터미널까지 접근을 생각하면 여기서 가는 것이 편할 수가 있다.
해서 우선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가는 것으로 데니즐리 일정을 시작한다.
빌라델비아 현재 말로 하면 필라델피아이고 터키의 현재 지명은 알라셰히르가 되겠다.
셰히르는 동네를 뜻하는 말이니 알라의 마을?
설마.
그 귀한 알라를 동네 이름에 쓸 리가.
알라는 붉다는 뜻으로 황토흙이 많아 알라셰히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사실 어제 긴 여행을 하기도 했고 알라셰히르에 가도 기둥 몇 개만 남아 있다고 하여 갈까 말까 망설임이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오늘 김하성이 오늘 날렸고 또 어제부터 LA와 붙은 팀이 필라델피아인데 어제도 오늘도 어렵게 이기는 것을 보니 뭔가 뜻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필라델피아 필리스 이름의 원조인 빌라델비아니 가라는 계시가 아니면 뭐겠는가?
그래 가보자고.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터이니.
초라한 기차역에 비해 버스 터미널은 잘 지어 놓았다.
이제까지 본 터미널 중 최고다.
내 사랑 카밀 콕 버스 회사.
상징 색이 코발트블루라서 더 사랑스럽다.
이 회사 버스를 타고 알라셰히르로.
알라셰히르 부근은 온통 포도밭이었다.
빌라델비아 시절도 포도가 유명해서 부근의 모든 교회 성찬식에 쓰이는 포도주는 몽땅 담당했다더니 그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는 듯.
도시가 자리 잡은 곳은 마치 마사이마라를 연상시켰는데 주변의 널따란 평원이 여유 있는 생활로 이어졌을 것이다.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구글맵에서는 터미널이 유적 근처에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는데 실제로는 한참 변두리에 있었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시내 중심가와는 대충 3 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어쩌나 하다가 처자들 여럿이 보여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모두 통일된 소리로 노.
하지만 지도를 보여 주면서 이곳을 가려고 한다 하니 한 처자가 잘 알려 주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한 곳을 지정해 주며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시내버스가 올 것이라고.
정말 왔다.
운전수에게 알려 주니 타맘.
그리고 시내를 한참 돌다 부근에서 내려 주면서 승객 한 사람은 우리에게 들어갈 골목까지 내려서 가르쳐 주었다.
필라델피아는 필리아(사랑)과 델피아(형제)의 합성어로 형제애를 뜻한다고 한다던데 그 동네 후손이라서인지 정말 사랑이 모두 철철 넘치는 경험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사진이 넘쳐 그 유적지는 다음에 따로 소개를 하겠다.
유적 탐방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위해 거리에 나섰다.
여기 어디쯤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배를 드리던 주택이 있었을 테지.
거리 풍경은 다른 곳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렇게 생각을 하니 다른 감회를 느꼈다.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사시던 곳.
그러다 만난 동네 맛집.
손님의 숫자가 증명을 했다.
URFA는 원래 방문지로 계획했던 한 곳인 산리우르파를 뜻하는데 그 동네 음식이 잘하기로 유명하다고.
이 친구가 만들어 내놓는 빵은 공간 빵이다.
속이 비어 있는.
기술이 훌륭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타맘이다.
그리고 이렇게 포즈까지.
터키는 참 유쾌한 곳이다.
이 친구는 꽤 쑥스러워했는데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니 저런 모습.
밀가루 밀기 담당.
이런 음식이 나왔다.
양고기에 빵을 넣고 소스를 섞어 질퍽하게 만든 요리.
케밥 하면 질리지 않았나 싶어도 막상 먹어 보면 맛이 있다.
그래도 또 먹으라고 하면 썩 내키지는 않을 텐데 우리 둥이들에게 주면 한 없이도 먹을 음식이 아닐까 싶다.
평점 95점.
값은 A**
밥을 먹었으니 커피 한 잔이 그립다는 아내를 위해 도시 탐색에 나섰는데 의외로 이런 거리가 있었다.
생각보다 꽤 큰 도시였네.
터키 도시들은 부도심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북적댄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고.
호이.
여기에 별 셋 제품을 파는 곳이 있네.
딱 보니 무슨 간판인지 알겠더라.
우리 며느리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Av는 Avukat의 약자로 변호사란다.
그러다 만난 공원의 찻집.
동네 사랑방이었다.
그런데.
으잉?
태극기가 있었다.
딱 보고 알았다.
우리나라 파월장병회 같은 파한 장병회 사무실이라는 것을.
이런 곳은 반드시 찾아 들어가 봐야지.
열렬히 환영해 주신 분들과 사진을 찰칵.
가운데 하얀 옷을 입으신 분이 이곳 회장님.
사진을 찍으라 신다.
아마도 참전하셨던 분들이 아닌가 싶다.
이 사진은 빼놓았더니 이것도 꼭 찍으라 신다.
앙카라가 들어간 말을 하시는 걸 보니 수도에서 행사가 있어서 참석하셨고 회장님은 우리나라 대사관 무관에게 감사장을 받은 듯하다.
회장님이 사진에 있는 사람이 자기라고 해서 내가 거수경례를 해 드렸다.
필승.
감사합니다.
차 없는 거리에서 놀다가 보니 버스 시간이 다 되었는데 시내버스를 어디서 타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헤매다가 한 사람을 불러 물어보니 그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고 또 부르고 해서 대여섯 사람이 반상회를 하게 되었다.
사실 충주 사는 나도 외국인 누군가가 차 없는 거리에서 터미널 가려면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물으면 잘 알려 줄 수 있을지 그러면 뭐라고 대답을 해 줄까?
아무튼 한참을 의논하다가 영어를 좀 하는 친구가 종합을 하여 가르쳐 주는데 영어책에 나오는 문장 같았다.
고우 스트레이트 턴 레프트.
그런데 그때 몇 백 m 앞에 택시가 한 대 서 있었고 저걸 타고 가면 되겠다 싶었지만 설명 중이라서 고개를 끄덕.
그래 충분히 알았네 자네 설명을 잘 듣고 내 마음대로 하겠네.
잠시 후 택시를 타고 날랐다.
물론 그 친구들은 그걸 모른다.
빌레직에서 경험했던 황당 터미널 체험.
여기는 더 했다.
엄청난 공간에 사람은 거의 없다.
돌아올 때는 그 시간대에 이 Alasehir라는 동네 회사 버스 밖에 없어서 그걸 탈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은 45분이 더 걸리고 요금은 10리라가 더 비쌌다.
무슨 이유일까?
거기에 인터넷이 먹통이라고 그냥 버스를 타서 돈을 지불하라고.
그랬는데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직통이 아니라 직행급이라 시골 동네를 다 들리나 했더니 완행 흉내도 내어 길에서 손님을 태우기도 하고 내려 주기도 하더라.
10리라 더 비싼 것은 동네 구경시켜 주는 값이었고 그러니 시간이 더 걸린 셈.
앞으로 될 수 있으면 동네 버스는 사절하는 걸로.
오는 도중 파묵칼레가 버스 창 밖으로 제대로 보였다.
저렇게 미리 봐 놓았으니 김이 새서 볼 맘이 날까 어떨까?
버스는 시간이 더 걸리고 돈도 더 비쌌지만 130리라짜리 파묵칼레 비싼 구경을 공짜로 했으니 손해는 아닌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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